지난 1월19일 오후 2시, 경기도교육청 제1회의실에서 학생인권조례 종합공청회가 열렸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가 조례 초안을 내놓은 뒤( 794호 표지이야기 참조) 찬반 의견의 수렴에 나선 것이다. 이번 공청회는 자문위가 준비한 세 차례의 공청회 중 첫 번째 자리였다.
‘학생=미성숙자’ 논리에 학생들 성숙한 답변
관심은 뜨거웠다. 150석 정원인 회의실에 2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수십 개의 보조 의자가 동원됐다. 토론자로는 조례 제정 찬성 쪽 패널 4명, 반대 쪽 패널 4명, 학생대표 1명이 참석했다. 사회는 곽노현 자문위원장이 맡았다. 자문위는 조례 최종안을 내놓기 전까지 일부 보수 언론이나 학부모, 교원 단체들이 내놓았던 비판을 모두 짚어보고 갈 작정이다. 곽 위원장은 “반대의 뜻을 밝힌 분들을 전부 모셔서 의견을 듣고자 자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에서 핵심 쟁점 사항은 △체벌 금지 △두발 자유화 △휴대전화 소지 허용 △수업시간 외 학내 집회의 자유 등이었다.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이들은 학생이 ‘미성숙한 존재’라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윤완 경기도교총 정책위원장(고현초 교장)은 “학생은 미성숙자로서 ‘교육·훈육 대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대신 뉴라이트학부모연합 공동대표는 “호기심 많고 멋내기 좋아하는 청소년기에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공부보다는 외모에 신경쓰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학생들이 ‘성숙한 답변’으로 맞섰다. 학생대표로 참여한 고등학교 2학년 이재연양은 “학생인 주제에 무슨 사상의 자유냐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오히려 가치관이 성립할 시기이기에 주입받고 세뇌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분당정보산업고 학생회장은 “미성숙의 기준이 뭔가, 나이가 많으면 성숙한 존재인가”라고 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 김도연양은 “학생들은 외모보다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
‘성숙한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이도 있었다. 올해 초등학교 학부모가 될 예정이라는 안병주씨는 “8살짜리 아이가 ‘아빠, 학교 가면 시험 보고 못 보면 선생님한테 혼난대’라고 하더라. 초등학생도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입시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 바로 성숙한 어른들”이라고 지적했다.
학생 인권 신장은 교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노정근 대한민국교원노조(이하 대한교조) 위원장은 “두발·복장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도 없다면 현장 교사들의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며 “교권에 대한 안전장치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교조는 지난해 12월21일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철회·수정하라”는 공동성명을 냈던 경기 지역 3개 교원노조 중 하나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공청회에서 “조례 초안을 만들기 전에 3개 교원단체에 의견을 물어오지 않아 비판했을 뿐 학생 인권을 지켜주는 걸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교직 생활 24년에 학생부 담당만 10년을 했다는 강범식 교사(안양 귀인중)는 “중학생 시절, 인권은 하늘이 준 것이라는 천부인권 사상을 말한 이가 누군지 대답하지 못해 교사에게 매를 맞았다. 이게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라며 “소모적 학교문화를 버리고 아이들에게 권리를 돌려줘야 어른들 권위도 산다. 21세기에 중요한 것은 머리털보다 머릿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현실을 이야기하던 중 울먹여 공청회장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반대 쪽 패널도 “찬반 토론 아닌 토의”이번 공청회에선 좀처럼 날선 반대 의견을 접하기 어려웠다.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반대하는 쪽을 대표해 참석했던 남경희 서울교대 교수조차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한 찬반 논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인권은 찬반이 있을 수 없는 문제”라며 “이건 토론보다 토의로 봐야 맞다”고 말했다. 노정근 대한교조 위원장도 “교사들에 대한 인권 교육이 시급하다. 결국 우리 모두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배경내 자문위원은 “일부 보수 언론이 보수 단체들을 인용하며 학생인권조례를 맹공격해 찬반 논쟁을 기대했는데, 정작 반대하던 이들은 공청회에 보이지 않아 반대 여론에 거품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혜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그동안 여러 공청회에 참석했지만 이번처럼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공청회는 처음 본다”고 했다. 1월24일과 25일에 걸친 2·3차 공청회가 끝나면 자문위는 2월 초에 최종안을 낼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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