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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패킷 감청’, 헌재로 갈까

<한겨레21> 776호 표지이야기 보도 뒤 위헌제청 신청… 국감 이슈로까지 떠올라
등록 2009-11-13 06:59 수정 2020-05-02 19:25

‘패킷 감청’ 논란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9월 ‘국정원의 신무기, 패킷 감청’ 보도( 776호 표지이야기) 이후 국회와 법원, 학계에서 ‘패킷 감청’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 11월3일 범민련공대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법률심판제청 신청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 11월3일 범민련공대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법률심판제청 신청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감청 무제한 연장은 위헌” 주장

패킷 감청은 초고속 통신망을 통한 엿보기 수단이다. 전송을 위해 잘게 쪼개진 데이터 조각인 ‘패킷’(Packet)을 중간에서 가로채 재구성함으로써, 감시 대상이 방문한 인터넷 사이트, 검색 결과, 채팅 및 전자우편 내용 등을 실시간으로 엿볼 수 있다. 수사기관의 경우 법원에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를 발부받아 패킷 감청에 나선다. 이 통신제한조치에 대해 규정한 법률이 통신비밀보호법인데, 최근 이 법률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신청됐다.

지난 11월3일, 국가정보원에 의해 6년에 걸쳐 패킷 감청 등 통신 감시를 당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하 범민련) 사건 관련자들은 “통신비밀보호법 6조 7항 단서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해달라고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윤경)에 신청했다.

통신비밀보호법 6조 7항은 ‘통신제한조치의 기간은 2개월을 초과하지 못하고 그 기간 중 통신제한조치의 목적이 달성되었을 경우에는 즉시 종료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범죄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증거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는 2개월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고 있다. 그런데 이 연장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국정원은 이경원(43) 범민련 사무처장에 대한 통신제한조치를 무려 14차까지 연장했다. 위헌제청을 신청한 조영선 변호사는 “미비한 법조항을 이용해 공안기관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감청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법정에서도 ‘패킷 감청’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지난 9월 변호인단은 “수차례 연장으로 장기간에 행해진 통신제한조치를 기소 후에야 알 수 있고 특히 패킷 감청의 경우 (감청 대상이) 지극히 광범위해 수사 목적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수사”라며 “패킷 감청으로 얻었을 가능성이 있는 증거는 채택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대응해 검찰도 지난 10월14일 의견서를 냈다. “인터넷 회선 감청의 경우 기술적으로 패킷 감청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며 “하지만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적법한 감청이며 설사 인터넷 회선 감청을 하였다 해도 적법하다”는 내용이다. 검찰이 패킷 감청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패킷 감청을 막기 위해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는 논문도 발표됐다. 오길영 배재대 강사(전자상거래법)는 11월에 발간된 41호의 ‘인터넷 감청과 DPI(Deep Packet Inspection)’ 논문에서 “아날로그 감청과 디지털 감청은 그 본질과 내용에 있어 전혀 다르다”며 “감청의 대상이 되는 ‘패킷 데이터’와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는 ‘저장 데이터’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우리의 감청 관련 규제체제가 디지털 매체에 대해서는 너무 무력하다”며 “디지털의 속성에 걸맞는 새로운 전담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패킷 감청 설비 11대, 한 해 100여 건 확인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패킷 감청’은 화두였다. 10월7일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인가를 받아 도입된 인터넷회선 패킷 감청 설비가 총 11대라고 공개했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국내 주요 통신사업자의 패킷 감청 제공 현황’을 통해 2008년 한 해 동안 A사는 50여 건, B사는 50여 건, C사가 10여 건의 패킷 감청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연대 등 70여 개 단체가 ‘범민련 탄압 대응 시민사회공동대책위(범민련공대위)’를 꾸려 공동 대응에 나섰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외국에서는 패킷 감청 기술인 DPI의 허용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패킷 감청에 대해 적극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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