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9일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9 남북 교류협력과 신변보호 심포지엄’이 열렸다. 인권위와 북한법연구회가 공동 주최한 이 심포지엄은 지난해 7월에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4개월째 북쪽에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아무개씨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심포지엄 다음날인 7월30일에는 동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우리 어선이 북쪽에 예인됐다. 남북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 7월2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2009 남북 교류협력과 신변보호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대북강경론이 주를 이뤘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현대아산 근로자 억류 문제는 북한 핵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며 “그동안의 남북관계는 사상누각이었고 지금이라도 협력 없인 교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은 “북한은 우리 수준으로 봤을 때 법치주의 국가가 아니며 이런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해 북한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호 통일교육원 교수는 “우리 국민들의 신변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민족의 복리라는 게 뭘까 싶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개성공업지구의 사건·사고가 2005년 4건에서 2007년 13건으로 늘었다며 신변 보호를 위한 남북합의서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인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에는 심포지엄 참가자들이 대체로 동의했지만, 이번과 같은 억류 사태를 법·제도 정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는 의견이 갈렸다. 한명섭 변호사는 “미국 여기자 사건처럼 억류자 유씨 문제도 어서 재판을 받게 하라는 사설을 읽었는데, 이건 뭘 모르는 소리”라며 “북한 형법에 따르면 미국 여기자처럼 12년형을 언도받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관광객 피격, 억류자 문제가 발생한 것은 남북 당국 간 신뢰가 그만큼 붕괴 상태에 있다는 증거”라며 “이런 상황에서 억류자 문제만을 내세워 협상에 임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권활동가들은 법 개정만이 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백기 천주교인권위 활동가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은 남북의 상호 이해와 협력이 전제조건인데, 그것이 지난 1년6개월 동안 무너졌다”며 “전제조건이 무너진 상태에서 남쪽이 일방적으로 법 개정을 이야기하거나, 어렵게 마련한 당국자 간 협상에서도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를 회복하고 당국자 간 협상에서부터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위에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진보와 보수의 시각 차이가 커서 늘 날카롭게 대립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위가 입장을 내놓을 때마다 양쪽에서 모두 매섭게 항의할 정도로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인권위는 2006년 12월 ‘북한 인권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 표명’(이하 입장 표명)을 내놓고 이를 ‘북한 인권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한데 인권위의 최근 행보는 이 가이드라인마저 벗어난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오는 10월 발표를 목표로 북한 인권과 관련한 두 가지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 인권 실태 조사’와 ‘탈북 여성 인권 실태 조사’다. 후자의 경우 북한 거주 당시부터 탈북, 남한 정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조사는 모두 북한 주민의 인권 실태를 조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권위의 ‘입장 표명’과 배치되는 셈이다. ‘입장 표명’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에서의 인권침해 행위는 위원회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관련 예산 3억여원으로 두 배 증가
인권위의 한 관계자 “그동안 조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던 북한 주민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봐도 된다. 지금은 우리가 대원칙으로 한계 그었던 것을 넘어가려고 하는 상황”이라며 “일단은 북한 인권을 다루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예산도 많이 준다고 하니 어쩔수 없는 면이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털어놨다.
조사 방식의 문제도 제기된다. 인권위는 “현지 조사를 하기 힘든 만큼 새터민들을 통한 조사나 앰네스티 등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가 내놓은 보고서 등을 기반으로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새터민 대상 조사가 얼마나 공신력 있는 조사가 될지 의심된다”며 “공신력 없는 발표는 안 하는 게 나을 텐데, 인권위가 정권과 보수 성향의 북한 인권단체들에 휘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의 ‘입장 표명’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는 자칫 불확실한 정보로 인해 왜곡될 우려도 없지 않으므로 정부는 객관적이고 철저한 정보 수집, 조사 및 평가 등을 통해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 인권 실태 조사와 연구에 투입되는 예산은 1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1억4200만~1억5천만원이었던 예산이 2009년 3억3100만원으로 증액됐다. 차별예방 및 인권문화 조성 예산이 2005년 9억2600만원에서 2008년 3억400만원, 2009년 2억4400만원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먼저 북한 인권 예산을 챙겨줬다”고 말했다. 지난 7월20일 이명박 대통령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특히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 인권 드라이브’는 점점 속도를 낼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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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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