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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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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블루’에서 풍기는 이너서클의 냄새

천신일 회장이 신생기업 인수해 중국 광산 개발 사업 키우는 과정 일사천리
등록 2009-05-13 17:18 수정 2020-05-03 04:25

설립 2개월 만에 중국 지방정부와 수조원대의 개발 가치가 추정되는 광산 채굴권을 독점 계약한 신생기업. 그리고 이 기업의 경영권을 단돈 12억원에 인수한 중견기업. 둘 다 눈이 휘둥그레질 뉴스다. 뉴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알면 눈은 더 커진다. 중견기업의 이름은 세중나모여행사다. 이 회사의 오너는 ‘대통령의 친구’ 천신일 회장. 신생기업의 이름은 ‘이너블루’(enerblue.co.kr)다. 이너블루의 안팎을 보면 ‘살아 있는 권력’의 주인공 또는 그 주변 인물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세중나모 강남 빌딩 1층에 입주한 이너블루 사무실 모습.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세중나모 강남 빌딩 1층에 입주한 이너블루 사무실 모습.

이너블루가 설립된 것은 지난해 4월. 천신일 회장은 그 다음달인 5월16일, 12억원을 투자해 이 회사의 지분 40.1%를 확보한다. 이너블루는 이날로 세중나모그룹의 13번째 계열사로 편입됐다. 11일 뒤인 5월27일 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한 달이 채 안 된 6월25일, 이너블루는 중국 칭하이성 정부와 이 지역의 규석광산을 50년간 독점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다. 지질구조탐사 전문업체인 넥스지오가 지난해 7월부터 두 달간 이 일대의 광산을 탐사한 결과 규석 매장량은 3437만t에 이르고, 순도도 99% 이상인 최고급 규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조 단위 개발이익 예상 기업을 12억원에 인수

규석(SiO₂)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리콘의 원료다. 암석의 형태로 존재하면 규석, 모래 형태면 규사라고 부른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실리콘은 반도체 제조부터 고급 철강 제조까지 첨단산업에 골고루 쓰인다. 최근 들어서는 태양광에너지 물질로 변신하고 있다. 규석의 거래가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직거래로 정해진다. 규석 상태로는 보통 t당 10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이너블루가 확보한 규석광산의 가치는 3조원대에 이른다. 여기에서 실리콘만 빼내 금속 상태로 정련한 것을 메탈실리콘이라고 한다. 거래가는 t당 150만원 안팎. 메탈실리콘을 기체나 액체 상태로 재가공해 순도를 최고도로 높이면 폴리실리콘이 된다. t당 가격은 8천만원대에 이른다. 폴리실리콘을 얇게 썬 것이 웨이퍼다. 이 웨이퍼를 가공해 반도체도 만들고 태양광전지도 만든다. 한국광물자원공사 관계자는 “태양광전지를 만들려면 99.99% 이상의 규석 순도가 필요한데, 국내산 규석은 50~60%의 품위밖에 되지 않아 외국에서 주로 들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규석은 첨단산업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광물이다. 전세계를 상대로 자원외교를 벌이고 있는 중국 정부가 한국 업체에 자원 개발 문호를 개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앞의 한국광물자원공사 관계자도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외국 기업의 자원 개발을 통제하기 때문에 자원 개발이 워낙 어렵다”며 “더구나 규석 원광은 중국에서도 부족해 카자흐스탄에서 들여오고 있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도 중국 정부와 접촉하며 꾸준히 노력했지만 독점적인 광산 개발권은 한 건도 따지 못했다. 중국 양쯔강변에 석회석 광산 1곳을 개발한 것이 유일하다. 대부분 중국 쪽의 희토류·니켈·구리 1차 가공업체에 투자해 광물을 확보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도 “중국 정부는 자원 개발과 관련해서는 외국 업체에 원칙적으로 허가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생업체가 그런 독점개발권을 땄다면 잘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발권 따는 데 한·중 정부 관계자들 도움

이런 어려운 일을 신생업체가 어떻게 이룰 수 있었을까? 천신일 회장은 지난해 6월 인터넷 경제매체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방중(5월27~30일) 기간 중 대외무역경제합작국 국장 등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광산 개발 등에 관해 법적·제도적·인적 자원 등의 협력 및 지원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특히 폴리실리콘의 원료가 되는 석영광산 개발과 관련, 북경에 파견 나와 있는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의 도움으로 북경의 유명 법학박사 및 변호사들을 소개받아 광산 개발과 관련한 자문을 구했다.”

천 회장의 광산사업에 한국과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방중에 동행해 얻은 대가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또한 지난해 8월27일 태양광에너지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2030년까지 총 111조원(정부 예산 3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 발표를 전후해 증시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종목의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너블루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너블루의 최종오 대표이사가 2~3년 전부터 중국 현지에서 광산 탐사와 개발 협상을 진행해온 결과”라며 “천신일 회장과 개발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천신일 회장의 투자도 이너블루를 설립한 이후 자료를 가지고 찾아가 유치하게 된 것”이라며 “이너블루 설립 이전까지 어떠한 관계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너블루 쪽은 최종오 대표이사와 중국 쪽의 인연이나 최 대표이사의 이전 경력에 대해 밝혀달라는 요청에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너블루는 지난 2월11일에는 한국맥쿼리증권을 규석광산 개발을 위한 자본 유치 주관사로 선정했다. 이너블루는 지난 4월까지 모두 4천만달러를 유치해 내년 말까지 중국 현지에 만들 메탈실리콘 가공 공장을 위한 자금 등으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맥쿼리증권이 속한 한국맥쿼리그룹은 지난해 인천공항공사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우선협상 대상자 ‘0순위’로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던 바 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맏아들 이지형씨가 당시 ‘맥쿼리IMM자산운용’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이씨는 지난해 골드만삭스가 맥쿼리자산운용을 인수하면서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대표가 됐다. 한국맥쿼리그룹은 “이지형씨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취임해 현재 한국맥쿼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너블루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한국맥쿼리뿐만 아니라 삼성증권을 비롯한 국내외 금융 업체들과 주관사 협상을 벌였는데, 한국맥쿼리증권이 가장 적극적이라 선정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천신일 회장은 지난해 6월 인터뷰에서 “광산 개발에 관심이 있는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너블루가 시설투자를 유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천 회장이 염두에 뒀던 대기업은 동양제철화학과 포스코인 것으로 보인다. 동양제철화학은 태양광전지 사업을 하고 있고, 포스코 역시 태양광전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고부가가치 특수강 제조 과정에서도 실리콘(페로실리콘)이 쓰인다. 천 회장은 동양제철화학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포스코의 박태준 명예회장은 사석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너블루와 동양제철화학이 제품공급 계약이나 투자 계약을 맺게 되면 천신일 회장은 동양제철화학의 사외이사를 사임해야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 천-박 관계로 수사 선긋기

검찰은 지난 5월7일 서울 성북동의 천 회장 자택과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19층의 세중나모여행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이날 압수수색을 한 이유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구명 로비에 천 회장이 개입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일단 천 회장과 박연차 전 회장의 관계에 대해서만 수사를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선자금 부분은 ‘일단 제외’라는 태도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5월8일 “청와대가 정말 그렇게 당당하다면, 한나라당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면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도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조사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현 정부 집권 이후에 특정 기업이나 인물에게 집중된 ‘특혜’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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