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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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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공동체 15년

국내 최초 안성의료생협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 “젊은 의사들 함께했으면”
등록 2009-04-30 16:43 수정 2020-05-02 04:25

시작은 작았다. 1986년 연세대 의대 기독학생회에 소속된 4~5명의 학생이 경기 안성시를 찾았다. 농촌 지역 의료봉사였다. 비슷한 시기, 안성시 고삼면에 젊은 농민을 중심으로 한 청년회가 조직됐다. 청년회와 학생 의사들은 밤늦도록 어울렸다. 청년회는 곧 농민회로 커졌다. 의대 학생들도 곧 의사가 됐다. 1994년 4월24일, 안성농민의원·한의원이 문을 열였다. 국내 최초 의료생협인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의 1호 병원이었다.

국내 최초의 의료생협으로 15주년을 맞은 안성의료생협 식구들이 병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이들이 이인동·권성실 원장 부부.

국내 최초의 의료생협으로 15주년을 맞은 안성의료생협 식구들이 병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이들이 이인동·권성실 원장 부부.

안성의료생협의 15년을 온전히 함께한 이가 안성농민병원의 이인동(49) 원장이다. 그는 1986년에 졸업을 하고도 의대 후배들과 진료봉사를 함께했던, 당시 봉사단 중 유일한 ‘진짜’ 의사였다. 15주년 소감을 묻자 그는 웃으며 “저분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우리생협의원 권성실(47) 원장이다. 두 사람은 연세대 의대 ‘캠퍼스 커플’로 함께 안성 진료봉사를 하다가 1989년 결혼했다. 안성의료생협을 일구는 과정은 그들이 사랑을 키워간 시간이기도 했다.

조합원도 출자금도 쑥쑥

“농민이 주인인 병원을 만들어보자고 했죠. 1994년만 해도 농민들이 건강검진을 받는다는 건 정말 ‘큰일’이었어요. 안성에 이런 의료기관도 없는데다 농민들이 큰 병원에 가면 천대받기 일쑤였죠.” 농민회가 나서 출자금을 모았다. 뜻을 같이한 서울의 동료 의사들도 선뜻 돈을 모아 내놨다. 10개월간 모은 돈이 1억원을 웃돌았다. 기존에 지역에 있던 한의원과 이인동 원장이 의기투합해 만든 게 안성농민의원·한의원이었다.

농민이 주인인 병원인 만큼 병원 운영에 조합원들이 깊이 참여한다. 조합원들의 무료 검진 뒤 병원은 그들의 ‘주치의’로서 흡연을 하거나 비만인 경우 6개월에 한 번, 골다공증인 경우 3개월에 한 번씩 전화를 한다. 조합원들이 원하는 주제로 건강 모임을 만들고 만성질환자는 따로 관리한다. ‘친한 사람을 자주 만나면 건강해진다’는 철학으로 지역 소모임도 11개를 운영 중이다. 월평균 183회 간호사와 복지사가 가정간호를 나가고 매주 금요일 의사가 방문진료를 한다. 노인정에 건강체크를 나가고 ‘건강 학교’도 연 3회 연다.

15년 만에 안성의료생협의 조합원은 410명에서 3060명으로 불어났다. 권 원장은 “의료생협이 만들어진 당시엔 조합원은 ‘빨갱이’만 하는 것이란 인식이 있어 조합 가입을 권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제는 안성 내 120명의 선출직 대의원을 중심으로 동 단위의 ‘건강모임’을 열어 의료생협을 알린다. 2001년 치과 개원과 2006년 건강증진센터 개소로 지역주민의 호응도 커졌다. 항생제를 적게 쓰는 등 ‘적정 진료’를 한다는 소문도 났다.

운영하는 돈의 크기도 커졌다. 1억여원이던 출자금은 2008년 현재 6억8600만원으로 불어났다. 조합원들은 의료생협에 가입할 때 출자금을 내며 이후에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다. 10만원 이상을 출자한 조합원에게는 매년 건강검진이 무료고, 치과 치료나 한약 조제와 같이 비보험 진료에서도 할인을 해준다. 출자금은 언제든 되찾아갈 수 있다. 조합원이 아닌 이들에게도 병원 문은 열려 있다. “병원이 환자를 거부할 수 없고, 의료생협은 조합원만이 아니라 지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고용 창출로도 지역에 공헌한다. 현재 한성의료생협에 소속된 의료기관만 안성농민의원, 우리생협의원, 안성농민한의원, 생협치과의원, 가정간호사업소 등 5개다. 이곳에서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67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엔 지역의 취약계층도 16명 포함돼 있다. 안성의료생협은 노동부가 인증한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각종 지원금으로 1억5천만원가량이 들어왔다. 모든 자본의 흐름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수입과 지출 합계는 ‘0’이 되도록 한다. 조합에 돈이 많아지면 지역사회에 의료·보건 투자를 늘린다.

4월23일 안성시 사곡동 마을회관에서 열린 ‘건강모임’에서 임승현 한의사가 척추 모형을 들고 “허리 아프신 분 손 들어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4월23일 안성시 사곡동 마을회관에서 열린 ‘건강모임’에서 임승현 한의사가 척추 모형을 들고 “허리 아프신 분 손 들어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안성의료생협의 성공은 다른 지역을 자극했다. 1996년 인천평화의료생협이 문을 열였고, 1998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제정된 이후 2002년 원주·서울·대전에서 의료생협이 탄생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84개 조합에서 4만2천여 명의 조합원이 1354억원의 출자금을 운영하는 커다란 사회적 흐름이 됐다.

그럼에도 의료생협은 ‘지역 병원’으로서 늘 재정 문제와 맞닥뜨린다. 지난 2006년 건강증진센터 등을 확충하면서 이듬해 적자가 났다. 지난해 결국 전 직원의 월급을 5%씩 삭감했다. 4명의 직원이 떠났다. 이후 의사·한의사·치과의사 12명이 자발적으로 월10만원 수준인 자신들의 활동비를 내놨다. 다행히 한 해가 지난 뒤 흑자로 돌아서 직원들에게 5% 삭감액을 웃도는 금액을 인센티브로 제공했다. 직원들은 인센티브 중 일부를 떼어 의사들이 내놓은 활동비를 채워주려 했다. 의사들은 그 돈을 다시 모아 조합 기금으로 내놓았다. 돈 문제가 생겨도 삭막해지지 않는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요즘은 젊은 의사를 구하기가 힘들다. 이 원장은 “치과의사와 한의사는 그래도 어떻게 뽑았는데 양방의사를 뽑기가 쉽지 않다. 3명의 양방의사는 모두 ‘원조 멤버’다. 젊은 의사들이 ‘의료생협’이란 이름에 지레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조금 적게 받긴 하지만 지역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보람차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일단 합류한 ‘젊은 피’는 “의료생협이 고맙다”고 했다. 97학번으로 한의대를 졸업한 임승현(32) 한의사는 1년 전 안성의료생협에 들어왔다. “졸업 뒤 일반 한의원에서 일하면서 환자와 소통도 안 되고 원칙을 지키며 진료하기도 어려운 현실에 한의사를 그만둘까도 했다. 우연히 의료생협을 알게 돼 합류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급은 줄고 업무 시간은 늘었지만 즐겁단다.

도농복합지역 변모로 할 일 더 많아져

4월23일 저녁 7시30분, 임승현 한의사는 주민들에게 ‘허리 건강법’을 알리려고 안성시 사곡동 마을회관을 찾았다. 안성의료생협이 매달 12개 지역에서 여는 ‘건강 모임’이다. 병원 업무를 끝내고 달려가야 하고 추가 수당도 없지만 의사들의 열의는 뜨겁다. 임 한의사가 척추뼈 모형을 들고 “허리 아픈 분들 손 들어보세요”라고 말하자 동네 주민 30여 명이 번쩍번쩍 손을 든다. 모임을 준비한 박희수 대의원은 “우리 동네에 이런 병원이 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건강모임’에 함께 참석한 권성실 원장은 떡과 과일을 주민들과 나누느라 바빴다. 그는 “15살이면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다. 이제는 도농 복합지가 된 안성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농촌에 병원을 짓는 것만으로 의미있었던 15년 전과 달리 이제는 주변에 병원이 여럿 들어서 의료 서비스부터 직원 임금까지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과 결속력을 유지하며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권 원장이 ‘건강모임’에 참석한 시간, 이인동 원장은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회의에 갔다. 부부는 “어른들은 지역을 위해 일하고 아이들은 지역이 키워내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성의료생협의 ‘열다섯 살 도전’은 계속된다.

안성=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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