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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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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아플 때 정부 제대로 하라”

‘국민건강보험과 개인의료보험의 역할’ 설문…
일반인 62.6%, 암환자 84.5% “정부 지출 늘려야”
등록 2009-01-08 14:12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08년은 유난히 건강보험과 관련된 논란이 많았다. 대통령직인수위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추진하는 사실이 알려져 인터넷 등에서 논란이 뜨겁게 벌어졌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병·의원을 열면 건강보험에 가입된 환자의 진료를 합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온 제도다. 이와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강공단)을 민영화하고 민간보험을 확대하는 안이 추진되는 것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졌다. 건강공단에 모인 개인의 질병 정보를 민간보험사가 열람하는 방안 역시 의료 민영화 논란을 부추겼다.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건강연대 회원들이 2008년 10월27일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건강보험 누적흑자를 중증질환자 등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건강연대 회원들이 2008년 10월27일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건강보험 누적흑자를 중증질환자 등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결국 의료 민영화는 2008년 늦봄부터 여름까지 밤을 환하게 밝혔던 ‘촛불시위’의 주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했다. 현재 60% 초반인 건강보험의 적용 범위를 더 넓혀 건강보험이 제대로 구실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선언하면서 건강보험보다는 민간보험사의 영역을 늘리기 위해 여러 방안을 추진하던 새 정부의 정책에 국민들이 전면 대응하는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일반인 2천명, 암환자 336명 대상

이런 과정을 거친 터라 전국 19살 이상 2천 명과 암환자 336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민건강보험과 개인의료보험의 역할’ 설문조사 결과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 조사는 건강공단의 의뢰를 받아 김태일 고려대 교수팀이 2008년 10~11월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진행했다.

주요 결과를 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전체의 87.8%가 ‘아픈 사람이 치료를 받도록 보장하는 일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데 거의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며 “그만큼 건강보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된다”고 말했다. 고액의 진료비가 드는 중증질환의 경우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현재보다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3%에 이르렀다.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37%가 ‘건강보험이 대부분의 의료비를 보장해 민간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건강보험이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민간보험이 보완해야 한다’는 응답이 40%로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 10가구 가운데 7가구 이상이 민간보험에 가입해 있는 상황인데,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도 상당수가 건강보험의 역할을 더 늘리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중병을 겪어본 환자들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요구가 일반인들보다 더욱 강했다. 암환자들은 ‘건강보험 및 의료 분야에 대해 정부가 앞으로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데 84.5%가 찬성했다. 일반 국민의 62.6%가 같은 답변을 한 것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게 나온 것이다. 암환자들은 특히 ‘정부 지출을 훨씬 늘려야 한다’는 답변(48.4%)이 일반 국민(21.6%)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2조원 건보 흑자 쌓아두고도…”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는 2조원가량의 건강보험 흑자분을 쌓아두고도 2009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는 2700억원 정도만 쓰겠다고 밝힐 정도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인색하다”며 “아파도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을 위해 건강보험 흑자분과 국가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한겨레 사회정책팀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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