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부장검사가 조만간 사표를 낸다고 한다. 검찰 안에선 그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더 많은 듯하다. “굳이 저런 사건 가지고 자신의 직을 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저런 사건’은 문화방송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사건이고, ‘직을 건’ 사람은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다. 〈PD수첩〉 사건 주임검사인 그는 검찰 정기인사를 앞두고 1월15일까지 주어지는 명예퇴직 기간에 사표를 낼 예정이다. “〈PD수첩〉 제작진이 일부 사실을 왜곡한 점은 맞지만 수사의 초점인 농림수산식품부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하기 어렵다.” 이런 무혐의 소신이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런 배짱 없이 못 버티지. 차장검사와 갈라선 건데….”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임 부장검사의 사표 결정을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검장(검사장) 아래 1·2·3차장을 두고 있다. 1차장검사는 8개 형사부와 조사부를 관장한다.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이 1차장을 맡는다. 형사2부는 식품·환경·의약 관련 사건을 주로 담당한다. 〈PD수첩〉 관련 특별전담수사팀을 꾸리며 팀장에 형사2부장인 임 부장검사가 임명된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의 직속 상관인 차장검사와 ‘갈라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검 관계자는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을 떠올리면 분명해진다. 이번 한 번만 다른 의견을 낼 테니 봐달라는 말이 통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청법은 검사의 상명하복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상사의 지휘·감독권이 보장되는 것이다. 조직문화가 유별난 탓도 있지만 원래 법이 그렇다. 검찰총장이나 검사장의 지시에 토를 달 수 없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전국 1600여 명의 검사가 한 몸, 거대한 ‘리바이어던’(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지상 최강의 괴이한 동물)을 이룬다. 그게 바로 검사동일체다. 그러니 임 부장검사가 차장검사와 갈라섰다는 말은 ‘사표를 던졌다’는 말과 얼추 동의어가 된다.
임 부장검사의 사표 결정을 두고 그와 친분이 있는 검사들도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임 부장검사가 원래 ‘반골’은 아니라는 거다. 검찰 관계자는 “그 역시 〈PD수첩〉 사건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만 해도 의도적 오역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저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29일 임 부장검사가 이끄는 수사팀은 136쪽에 달하는 ‘자료제출요구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당시 임 부장검사는 제작진이 취재 내용을 번역하며 의도적으로 오역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도 “내가 알기로는 두 달여 전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임 부장검사가 진보니 이런 쪽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임 부장검사 역시 사의를 표명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원래 그런 사람 아닌 거는 알지 않나. 무슨 독립투사인 것처럼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부장검사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이념이나 조직 논리를 떠나 검사로서 자신의 법리적 판단에 더 충실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오역의 문제가 있지만 〈PD수첩〉 수사를 ‘특정 언론사의 문제가 아닌, 검찰 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봤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검찰 조직이나 검찰권보다 헌법적 가치를 위에 둔 것이다.
임 부장검사의 사표 소식에 가장 뜨악해한 것은 아마도 임채진 검찰총장이었을 것이다. ‘검찰 수뇌부와의 갈등설’이 사표 결정 배경이라는 보도에 대해 임 총장은 “도대체 검찰 수뇌부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고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마침 사표 결정 보도가 나간 지난해 12월29일은 임 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2009년도 업무보고를 하는 날이었다. ‘촛불’에 세게 덴 청와대로서는 〈PD수첩〉 수사를 오래 끌고 있는 검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그런 탓인지 여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총장 교체설’이 제기될 때마다 지지부진한 〈PD수첩〉 사건 처리가 양념으로 곁들여졌다. 한 부장급 검사는 “총장이 지휘력이 없으니 부장검사가 사건을 누르고 있다는 말이 돌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니냐”고 풀이했다.
대검 관계자는 “대검이나 검찰총장이 수사팀에 어떤 수사 결론을 지시하거나 주문한 적이 없다. 대검은 관련자들의 소환조사가 필요하고, 수사 결론은 그 이후에 내리는 게 옳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 지휘자인 1차장검사가 수사팀에 관련 자료 확보와 제작진 조사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수사팀에서 실효성 있는 조처를 취하지 않은 채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 대검이 기소 방침을 미리 정하고 이를 수사팀에 전달했는데 수사팀이 불기소 의견을 주장해 수뇌부와의 갈등이나 항명이 있었다는 일부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항변에서 요점은 두 가지다. 임 부장검사가 〈PD수첩〉 제작진을 조사도 안 해보고 무혐의라고 결론지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또 임 부장검사와 지휘부(1차장검사)의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이를 검찰총장(수뇌부) 선까지 끌어들여 총장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지휘력 문제와 연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 부장급 검사는 “검사는 국가권력을 대신해 검찰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 사건은 명백한 무혐의도, 그렇다고 100%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임 부장검사의 판단을 아쉬워했다.
총대 멜 생각은 없는 검찰 수뇌부그러나 〈PD수첩〉 제작진이 검찰 소환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체포를 통한 강제 수사는 애초부터 검찰 지휘부의 선택지에는 없었다. “체포영장을 받아서 방송사 안에서 농성하는 PD들을 데려오려면 수사관 100명은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국면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검찰이 쓰기에는 너무 부담스런 카드다. 자신 있으면 체포해오라고 지시하지 않았겠나.”(서울중앙지검 관계자) 사실상 수뇌부나 지휘부도 조사의 필요성만 강조했을 뿐 자신들이 ‘총대’를 멜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임 부장검사는 나름의 절충안을 찾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로 제작진을 소환하는 방안을 여러 경로를 통해 〈PD수첩〉 쪽에 타진하는 한편, 이상한 논리로 수사 의뢰를 한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를 철회하기를 내심 기대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임 부장검사와 지휘부의 의견이 사실상 ‘소실점’을 상실했다고 보고, 사건 처리를 검찰 정기인사 뒤로 일찌감치 미뤄뒀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아마도 다음번 형사2부장 인사는 특히 심사숙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누가 되든 처리해야 할 사안의 무게는 전혀 줄어들지 않을 테지만.
김남일 한겨레 법조팀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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