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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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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이상 가짜 옛집, 누구 탓?’을 읽고

등록 2008-07-03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원 건축가

713호 노형석의 아트파일 ‘이상 가짜 옛집, 누구 탓?’은 이상의 옛집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가 말소된 것과 관련해 문화재청, 건축가, 문화재단을 싸잡아 비판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에 나왔던 ‘스캔들’이 정말이냐고 묻는데, 차제에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되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2003년 어느 신문에 이상의 집이 헐릴 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위치가 좋아서 다세대 집장수들이 사겠다고 줄을 서 있었다. 우선 주인에게 며칠만 여유를 달라고 해서 시간을 벌어놓고 여러 군데 연락을 해보았으나 아무도 관심이 없고 시간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사무국장으로 있던 김수근문화재단의 이사회를 소집해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은 일단 막아보자는 데 동의를 받았다. 계약을 하고 지적도와 이상의 학적부에 나타난 주소를 확인하고 잔금을 치른 뒤 연말에 등기를 마쳤다. 그 집을 수리해 ‘제비’ 다방이라도 차려놓고 유지비라도 벌면서 이상문학관을 지을 기금을 마련해야 했다. 마침 문화유산 보존모임인 ‘아름지기’와 손이 닿아 김수근문화재단과 매칭펀드 방식으로 공사비를 부담하기로 약속이 됐다.
물론 당시에는 그 집이 이상이 살았던 큰 주택의 일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번이 쪼개져 있었고 땅은 20평, 집은 10평밖에 안 되었으니 원래의 땅을 모두 확보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러던 중 이상이 살던 집터는 맞지만 집은 이상이 세상을 떠난 뒤 새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획을 수정해 크게 기념관을 지어 그 터의 의미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때쯤 이 집이 문화재로 지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거나 로비를 한 일이 없다. 오히려 아름지기에서는 문학관을 새로 지을 설계를 의뢰하면서 문화재 지정의 해제를 신청했다. 문화사적 가치가 있는 곳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선의에 대해 “스캔들” “코미디” “명분과 욕망에 도취” “미담으로 포장” “여론몰이” “이상의 발자취에 불필요한 흠집” 운운한 것은 문화에 애정을 가진 기자라면 결코 쓸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번 일을 기회로 이상이 살던 공간에 세우고자 했던 기념관 사업이 독지가들의 이해와 도움으로 더욱 박차가 가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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