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뭐하러 안에서 해. 날씨 좋은 5월이잖아.”
5월6일 서울 여의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조용한 카페를 찾으려고 하자 가수 김창완(54)이 손사래를 친다. 벤치에 앉아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가 말했다.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좋은 날씨를 얼마나 느껴보겠어요. 좋을 때 많이 즐겨야지.”
김창완은 1977년 동생 김창훈, 김창익과 함께 ‘산울림’이란 록그룹으로 데뷔했다. 리더이면서 보컬인 김창완이 기타, 김창훈이 베이스, 김창익이 드럼을 잡았다. 그렇게 30여 년 동안 형제들은 함께 노래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캐나다에서 막내 김창익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내 청춘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동생의 사고 이야기를 꺼내자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캐나다로 갔죠. 사인을 물어보니 ‘포크리프트’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뭔지 알아야지. 지게차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동생은 지게차로 눈을 치우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했다. 동생을 잃은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잠자리에 누웠다가 분한 생각이 들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일어나 가사를 썼다. ‘나는 포크리프트가 싫다. 포크리프트만 보면 쫓아가 발길질을 해대지.’
슬픔을 넘어선 분노를 노랫말에 담았다. 사흘 뒤 그는 가사를 영어로 바꾸고 곡을 붙였다. 동생을 위한 곡 다.
“나도 모르게 영어가 싫어지고, 영어에 분노가 생기더라고요. 극복하고 싶어 일부러 영어로 바꿨어요.”
그는 동생을 잃은 상실감과 분노를 팬들과 함께 달래기 위해 5월16~1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김창완입니다. 3rd〉를 연다.
“홀로서기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 막내를 여의고 처음 하는 공연이니, 저나 팬들 모두 감정을 추스르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회고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산울림을 발전적으로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역대 어느 공연보다 이번 공연에서 신곡을 많이 발표할 계획이다.
김창완은 바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면서 공연 준비, SBS 드라마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다. 수염을 기른 것도 드라마 때문이다. 6월14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오르는 창작뮤지컬 의 음악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더 하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일주일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말이 나왔으니 가야지”라며 드라마 연출부에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전화를 한다. “다음달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토바이 헬멧을 익살스럽게 쓰고는 악수를 건넨다. 5월의 녹음 사이로 그가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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