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10개 지역 성매매 업소 고발했더니 8곳 ‘각하’ 혹은 ‘무혐의’, 검·경의 직무유기</font>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어디 가세요? 이쪽으로 와요.” “어? 오늘은 우리 집 들른다고 약속했잖아. 잘해준다니까.”
4월 중순, 50여 개의 성매매 업소가 밀집해 있는 전북 전주 선미촌. 업주들과 ‘언니’들이 가게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인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 남성이 한 업소 앞에 있는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뽑아 곧장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캐주얼한 복장의 젊은 남성도 몇 가게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한 곳으로 쓱 들어갔다. 우정희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팀장은 “지켜본 결과, 밤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 1시간 동안 55명이 성매매 업소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불기소 이유 “범죄사실 입증 증거 없음”
2004년 9월28일 통과된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성매매 행위자는 물론 알선자·직업소개자·건물 및 토지 소유주 등도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단, 성매매 종사 여성 중 피해자로 인정되는 여성은 처벌하지 않는다. 강력한 성매매특별법이 통과된 지 4년이 지났다. 그러나 전주 선미촌처럼 여전히 전국 각 지역 성매매 집결지는 포주, 건물주, 손님, 성매매 여성 등이 뒤엉켜 성업 중이다. 이에 성매매특별법 시행 3년째를 맞던 지난해 9월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이 집결지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하고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미아리텍사스), 인천 남구 숭의동(옐로하우스), 대전 유천동, 대구 도원동(자갈마당), 전주 서노송동(선미촌), 전주 전동·다가동(선화촌), 광주 대인동, 전남 여수 공화동, 부산 완월동, 제주 신천리 등 10개 지역 성매매 업소 업주와 건물주 등을 단체로 고발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6개 지역(대전·대구·부산·여수·전주 2곳) 각하, 1개 지역(광주) 무혐의, 1개 지역(서울) 진정 종결. 인천과 제주를 제외한 8개 지역에서 모두 각하 또는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에 공대위는 4월30일 서울 중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경찰의 무성의한 대처’ ‘성매매특별법의 구멍’ 등을 성토했다. 공동고발에 참여한 여수지역 활동가는 고발 뒤 조사받으러 간 경찰서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경찰서에 갔는데 고작 물어보는 게 ‘다른 지역은 어느 경찰서에서 수사하는지 혹시 아느냐’ 등이었다. 수사를 하겠다는 건지, 눈치를 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수 경찰서는 고발인을 불러 몇 번 조사한 뒤 ‘각하’ 의견을 내 검찰로 송치했고 검찰 또한 4월8일 경찰 의견과 동일하게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 지방검찰청이 불기소 이유로 드는 것은 한결같이 △고발 내용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이 없음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자료가 없음 등이다. 증거를 확보하기엔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수사기관 쪽의 주장이다. 정박은자 대구여성회 부설 성매매여성인권센터 상담소장은 “대구 중부경찰서 담당형사가 ‘우리가 이 많은 업소를 어떻게 다 단속하란 말이냐’며 ‘실제로 매번 현장을 덮쳐서 증거를 잡아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거리의 가격 흥정·호객 행위 안보이나
이에 대해 정미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는 “고발한 지역에 성매매만 하는 영업장들이 들어서 있는 사실은 경찰은 물론 그곳에 사는 주민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성매매 영업장에 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건물주가 버젓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범죄사실 특정’이 필요하냐”며 “이는 현장이 있는데도 수사를 하지 않는 경찰·검찰의 직무유기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다른 활동가는 “우리도 정기적으로 조사를 나가는데, 갈 때마다 택시에 탄 손님이 택시에서 내리지 않고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이라거나, 어디로 갈 지 어슬렁대다 한 가게로 쏙 들어가는 남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며 “도대체 경찰은 왜 이걸 못보고 ‘범죄사실 입증이 어렵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들의 ‘성 감수성’ 부족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산 서부경찰서의 한 형사는 “성매매 여성도 범죄자다. 성매매 여성도 입건해야 하는데, 고발자들이 여성은 조사조차 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다”라고 말했다. 성매매특별법은 선납금이나 감금, 폭력 등으로 강요된 행위였음이 입증되는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이들은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강요’와 ‘자발’ 사이에서 여성단체와 수사기관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 정박은자 시설장은 “기본적으로 성매매 종사 여성은 성을 사고파는 사회적 구조의 ‘피해자’로 본다. 그러나 이런 담론을 떠나서 성 구매 행위를 한 남성을 고발한 것이 아니라 성매매 장소를 제공하는 토지·건물 주인 및 영업주를 고발한 것”이라며 “따라서 굳이 여성을 조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업주 처벌이 가능하다는 공대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경찰과 검찰이다. 인천 남부경찰서는 이번 고발 뒤 여성청소년계, 강력계 6팀, 폭력계 4팀 등 총 11개 팀이 인천 성매매 집결지를 자체적으로 수사했고, 인천지방검찰청은 경찰에 적발된 업주 23명을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큰 범죄가 아닐 때 공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과료 또는 몰수형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원민경 변호사는 “약식기소는 정식 기소가 아니어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라는 고발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 처분은 아니지만, 단속 수사를 통해 업주들을 적발해 처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다른 경찰서들은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고 각하 의견을 낸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제주지방검찰청도 단속을 통해 업주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각하 처분에 항고·재고발로 맞설 것”
법은 만들어졌지만 법이 제대로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채찍질이 필요하다. 공대위의 고발은 엄연한 불법 행위인 성매매를 버젓이 계속하고 있는 성매매 영업장을 궁극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하나의 촉구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지난 4월10일 군산 성매매집결지 화재 사건으로 숨진 성매매 여성들의 유족 23명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윤락행위 단속을 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은 물론 소방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지자체의 책임까지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을 이끌어낸 이정희 변호사(18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는 “이번에 승소 판결을 받은 것도 결국 2년 전 화재 사건에서 군산경찰서가 형식적으로나마 단속 노력을 했기 때문에 증거자료가 축적돼있었기 때문이고 그 힘이 컸다”며 “성매매 행위를 방지하는 법안이 있는 이상, 국가는 책임지고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단속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이번에 각하 처분을 받은 6개 지역에 대해 모두 항고했으며, 나머지 지역도 항고 또는 재고발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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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