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총영사 내정자 ‘보은 인사’ 의혹 단독 취재…김경준 귀국 일정에도 개입 의혹, ‘정치 변호사’로 유명
▣ 특별취재팀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외교통상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로 내정한 김재수 미국 변호사가 내정 당시까지 BBK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대통령의 이익과 관련된 특수관계인에게 공직을 맡긴 것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식변호인 선임
김재수 변호사의 총영사 내정은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한나라당이 대선 직전에 설치한 ‘BBK대책팀’에서 그가 핵심으로 일했던 전력 때문에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논란을 빚은 데 이어, 미국 영주권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격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와 미국 재판부에 확인한 결과, 김재수 총영사 내정자는 내정 당일(4월14일)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이사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공식변호인(attorney of record)을 맡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4년 김경준씨를 상대로 본인과 김씨가 공동대표로 있던 LKe뱅크의 투자금과 자본금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미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을 대리해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소송 대리인을 맡았다. 반환청구액은 여섯 차례의 수정을 거쳐 LKe뱅크 투자금 35억원과 자본금 65억원 등 모두 100억원으로 늘어났다.
김경준씨를 상대로 미국 현지에서 제기된 민사소송은 모두 3건이다(표 참조).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LKe뱅크 투자금 반환청구 소송과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가 최대 주주로 있는 다스의 BBK 투자금 반환청구 소송, 그리고 옵셔널벤처스(옛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주들이 낸 자본금 및 공금 반환청구 소송이다.
김 총영사 내정자는 지난해 10월 이명박 대통령 쪽에서 제기한 민사소송의 공식변호인으로 선임돼 내정 시점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실제로 김 내정자가 김경준씨 관련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부터였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이때부터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와 변호인이었던 심원섭 변호사 등에게 “김백준씨로부터 공식적으로 위임장을 받았다”며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현지의 한 한국인 변호사는 “김재수씨가 에리카 김 변호사와 심원섭 변호사, 그리고 옵셔널벤처스가 선임한 변호사 등을 모두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에리카 김 변호사도 지난해 11월 와의 인터뷰 당시 김재수 변호사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와 다스가 선임한 미국 현지 로펌 변호사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위치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내정자가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직함을 가진 것은 대선 직전인 지난해 11월이었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의 해외대책팀장을 맡은 것이다. 클린정치위원회는 BBK 문제를 비롯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쏟아지던 다양한 검증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다. 위원장은 홍준표 의원, 고문에 이 후보 경선캠프 선대위원장을 지낸 박희태 의원, 전략기획팀장에 고승덕 변호사를 임명했다. 실무진은 BBK팀(팀장 은진수), 다스팀(팀장 오세경), 서울시팀(팀장 원세훈), 해외팀(팀장 김재수)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김재수 내정자는 이전부터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을 오가며 BBK와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 문제에 대한 대책 수립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LKe뱅크 소송은 정치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경준씨는 지난해 과의 인터뷰에서 “9월께 한국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가, 실제로는 두 달 이상 늦춰진 11월16일 귀국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대선 직전에 귀국했다”며 김경준씨를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LKe뱅크 재판과 김재수 변호사가 변수로 작용한 측면이 더 커 보인다.
‘김홍걸-이신범’ 소송 변호
서혜석 당시 통합신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김경준씨의 LKe뱅크 소송 관련 증인심문(데포지션·deposition)은 같은 해 8월27일에 하도록 돼 있었다. 김경준씨는 자신이 직접 증언해야 할 마지막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 증인심문은 마치고 한국으로 가겠다는 뜻을 굳힌 상태였다. 그런데 증인심문은 한 달 뒤인 10월1일에나 이뤄졌다. 변호사 교체 때문이었다. 지난해 8월22일에 김경준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와 큰형 상은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와의 민사소송에서 승리하자, 김백준 비서관은 LKe뱅크 관련 민사소송의 변호사를 교체한다.
김재수 변호사가 이때 공식적으로 등장한다. 새로 선임된 김 변호사는 9월3일에 “본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니, 증인심문을 3주간 연장해달라”고 요청한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심문이 한 달 이상 늦춰진 것이다.
그러나 김백준 비서관의 당시 결정이 의문스러운 것은, 패소한 다스 재판의 변호를 맡고 있던 로펌 ‘림, 루거 앤드 킴’은 그대로 두고, 엉뚱한 LKe뱅크 재판의 담당 변호사를 바꿨기 때문이다. 당시 통합신당에서는 이를 두고 “의도적으로 김경준씨 귀국 지연 작전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증인심문 연기 신청은 미국 현지의 재판 절차를 제대로 알고 있고 재판 진행 상황도 꿰뚫고 있던 김재수 내정자의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재수 내정자는 이전부터 ‘정치 변호사’로 유명했다고 현지 교민들은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김홍걸-이신범’ 소송이다.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아들 홍걸씨가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신범 전 의원은 일련의 폭로 과정에서 홍걸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급주택 지역인 팔로스버디스에 당시 시가 97만5천달러 상당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집의 실제 소유주를 찾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 김재수 내정자였다. 당시 김 내정자가 이신범 전 의원의 변호를 맡았다.
김 내정자는 2000년 10월 재미동포인 차아무개씨와 김아무개 당시 민주당 의원과의 사이에 벌어진 성추문 관련 소송에서도 차씨의 변호사를 맡았다. 차씨는 당시 김 의원을 상대로 1천만달러(한국돈 90억원 상당)의 징벌적 피해보상을 청구했지만,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의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김재수 내정자는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의 친족과 여당 의원을 상대로 미국에서 벌어진 소송에 모두 개입한 변호사였던 것이다.
김 내정자는 지난 2005년 4월에는 재외동포들의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재외국민참정권연대’의 공동대표 명의로 낸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이 소원을 받아들여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김 내정자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김 내정자에게 총영사의 자격이 있다고 하는 이들은 “국외 동포들의 권익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꼽는다.
외교통상부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김재수 내정자 본인에게 확인해달라”고 말했다. 은 김재수 내정자 쪽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김경준씨를 상대로 낸 LKe뱅크 투자금 반환 소송은 4월21일부로 공식 취하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4월16일 낸 취하 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를 통해 김경준씨가 LKe뱅크의 자본금과 계좌를 이용해 BBK 주가조작 사건을 저질렀다는 결론이 난 상황에서, 이 대통령 쪽이 100억원대의 민사소송을 먼저 취하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대리인인 김백준 비서관은 취하 직전까지 다양한 법적 대응을 시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은 올해 2월 김백준 비서관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4월23일까지 증인심문을 받도록 했다. 증인심문을 받으려면 김 비서관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야 한다. 김백준 비서관 쪽에서는 ‘한국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는 그럴 경우 모든 비용을 김 비서관 쪽에서 지불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양쪽의 변호사와 기록을 담당한 서기 등 증인심문단 전체의 비행기 삯과 체재비를 부담하는 것은 만만찮은 비용이다.
청와대 “지금은 대통령과 무관”
김백준 비서관은 이 때문에 민사소송의 원고(소송 대리인)를 자신이 아닌 미국의 ‘KN어소시에이츠’란 법인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는 신청(motion)을 재판부에 내기도 했다. 미국 법인이 LKe뱅크의 채권을 넘겨받는 형식이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김 비서관은 미국을 오갈 필요가 없었는데,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 대통령 쪽은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무산되면서 ‘패소’라는 타격을 막기 위해 취하 신청을 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LKe뱅크는 다스와 옵셔널벤처스 등 김경준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과 공동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협약을 맺은 바 있다”며 “이 협약에 따라 LKe뱅크가 받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LKe뱅크와 관련된 소송을 취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김재수 내정자의 경우는 이 재판의 공식변호사를 그만 뒀으며, 현재는 이명박 대통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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