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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심고, 셋이 보러 올게요”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 금강산=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둘이서 심은 나무, 나중엔 셋이 보러 올 거예요.”

신혼부부들의 삽질이 매서웠다. 대부분 신랑이 구덩이를 파면 신부가 묘목을 넣고 함께 흙을 덮는 식이었다. 남쪽 씨앗이 북으로 와 3년간 자랐다는 금강소나무(미인송) 묘목은 무릎 높이밖에 안 됐다. 손으로 흙을 꼭꼭 눌러주며 “잘 자라라”라고 말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데리고 와서 보여주려고요. 엄마 아빠가 심었노라고.”

신혼부부 100쌍이 지난 3월30일 금강산을 찾았다. 유한킴벌리와 숲보호단체 평화의숲이 결혼한 지 2년이 안 된 신혼부부 100쌍을 선발해 나무심기 행사를 열었다. 이들이 찾은 곳은 금강산의 4대 사찰 중 하나인 신계사 주변 지역. 주최 쪽은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이곳에 앞으로 3년간 200ha의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유명했던 이 지역은 2000년 솔잎혹파리 발병으로 60% 이상이 고사한 상태였다.

“그동안 다양한 분들과 나무를 심어왔는데, 공교롭게도 신혼부부들이 심은 나무가 더 잘 자라더군요.” 25년간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이끌어온 유한킴벌리 이은욱 부사장은 “아마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그런가 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대아산 쪽에서 안내를 맡은 이진미 조장은 “나 역시 나무심기에 동참했는데, 주변에서 신혼부부들이 어찌나 정답게 나무를 심는지 질투가 나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날 신혼부부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1인당 15그루씩 총 4050여 그루의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 더 많이 심은 부부도 있고 경사진 곳만 찾아다닌 부부도 있었다. 부부싸움을 해 부인을 달래느라 삽질에 집중하지 못하는 남편의 경우 ‘긴급상황’임을 감안해 주변의 부부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그리하며 평균 15그루는 조화롭게 맞춰졌다.

현재 귀농을 준비 중이라는 기정호(32)씨는 “아내와 함께 나무를 심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며 “나중에 귀농을 하게되면 내 아이도 자연과 가깝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 시각, 남북 관계에 냉기류가 형성됐다는 뉴스가 계속됐는데, 금강산엔 더없이 따뜻한 봄바람만 살랑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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