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임한 뒤 지역에 뿌리 둔 ‘풀뿌리사회학교’ 운동 펼치는 이신행 교수
▣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운동의 싹은 지리산 왕시루봉(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트기 시작했다.
이신행(66) 교수는 “15년 전쯤이었을 것”으로 기억했다. 지난해 정년 퇴임해 이제 명예교수로 물러앉은 그가 연세대에서 정치학도들을 가르치던 1990년대 초반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지리산 언저리에 있는 함양, 구례 같은 지역사회를 많이 다녔다. 지역의 새로운 운동, 또 운동체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왕시루봉에 있는 산장에서 토론을 벌이곤 했다.”
한 학기는 인문·사회학, 한 학기는 프로젝트
토론 수업의 연장이던 지리산 훈련 프로그램은 지역에 뿌리를 둔 일종의 ‘대안 대학’인 ‘풀뿌리사회학교’ 운동으로 이어졌다. “지역사회가 활기를 띠려면 무엇보다 지역에 교육 공동체가 생겨나야 한다. 수는 많지 않아도 지역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을 한데 모아 서로에게 ‘가르칠 이’ ‘배울 이’가 되는 풀뿌리사회학교가 중요하다고 봤다.” 서울 신촌동 이 교수의 자택에 근거지를 둔 풀뿌리사회학교(www.pulschool.net)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 학교는 2005년 1기 학생들을 맞아 교육을 시작했으며 3월22일 7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 커리큘럼 개편에 따라 올봄부터는 1년 2학기를 기본 단위로 삼아 한 학기는 인문·사회학을 가르치고, 한 학기는 각자 자신의 꿈과 직업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교육과정을 밟게 한다.
“본래는 상주나 안동, 남해 같은 데서 먼저 시작해보려고 했다. 가르칠 이, 또 배울 이들은 제법 있었는데, 지방이라 행정적으로 꾸려갈 사람을 찾기 어려워 신촌에서 먼저 시작하게 됐다.”
풀뿌리사회학교에는 한 학기에 많게는 20~30명, 적을 땐 10명 안팎의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있다. 구성은 다양해 작가로 데뷔하고 싶어하는 30대 직장인, 중학교만 졸업한 뒤 미술을 공부하는 탈학생, 또 대학생도 있다. 이 ‘배울 이’들을 상대하는 ‘가르칠 이’들은 각계 전문가다. 이 교수와 더불어 김진욱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이기호 성공회대 연구교수 등이 가르칠 이로 참여하고 있다. 신철호 (주)포스닥 대표는 전자민주주의 분야를 맡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는 “풀뿌리사회학교는 캠퍼스이기보다 ‘길’이고자 한다”고 말한다. “철학을 생각하며 살길을 생각하는 길, 출세할 사람의 길이 아니라 자기와 사회를 만드는 길….”
이신행 교수는 풀뿌리사회학교는 서로에게 가르칠 이, 배울 이가 되면서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는 교육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연세대 어학당에 재학 중인 외국인은 영어를 가르쳐주고, 대신 한국어를 배우는 품앗이 방식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역사회의 ‘배울 이’와 ‘가르칠 이’가 새로운 세력이 돼 지역사회의 미래 대안을 제시할 때 중앙집권화의 폐해를 줄여 지역이 살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1억원 기부금 바탕으로 재단으로
지난해 3월 풀뿌리사회학교에 등록한 김온누리(17)군은 “어머니나 저나 틀에 박힌 교육을 원치 않아 들어오게 됐다”며 “평소 어려워서 기피했던 책들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다만, 직장 또는 대학 공부를 병행하는 이들과 함께 교육받다 보니 시간대를 잘 맞추기 어려운 건 단점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 뜻을 두고 있다는 김군은 풀뿌리사회학교에 다니며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풀뿌리사회학교는 경칩이던 3월5일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이 교수의 제자인 신철호 대표 등이 내놓은 1억원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재단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에 힘입어 풀뿌리사회학교는 전국 곳곳에 풀뿌리사회학교 운동을 퍼뜨릴 것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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