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와! 실로 짠 거예요?”
관객들 눈이 커진다. 원폭 버섯구름, 1950년대 미군 제트기들이 황야를 나는 기묘한 그림들이 질감 고운 실로 한 땀씩 짠 자수라니. 이미지도 복잡 미끈하다. 슈퍼맨이 머리 셋 달린 용과 싸우고, 개성 선죽교 풍경도 보인다. 이 산만한 상상력의 현대미술품들은 북한 평양의 집체창작 작가들이 만든 것이다. 물론 이미지의 원본을 짜낸 사람은 국내 작가다. 국내외 비엔날레에서 활동해온 함경아(42)씨다. 디지털 원본 도상을 중국 중개상을 거쳐 북에 주문한 결과물이다. 서울 홍익대 앞 쌈지스페이스의 초대전 ‘그런 게임’(3월9일까지, 02-3142-1695)에 나온 이들 작품은 희한한 남북 공동 창작 미술품이다. 함씨는 그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공동 출품한 격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주문한 작품들이 지난달 들어왔을 때 감동했어요. 버섯구름 이미지를 더 정밀하게, 인터넷에서 베껴 합성하고, 포토숍에서 실수한 이미지들까지 한땀한땀 재현했더라고요. 그 성실함이 존경스러울 정도였어요. 작업에 대한 겸손함이 생기더라고요.”
해학적인 도자기 총 등과 함께 나온 자수그림들은 지구촌의 폭력과 전쟁에 대한 냉소, 자본의 질서에 끌려가는 개인적 상실감 등을 묻혀놓았다. “서구 디지털 이미지들이 서구와 단절된 북한에서 아날로그로 재탄생되는 과정이 콘셉트”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북녘 작가들이 원본을 보고 느낀 생각들이 자수에 반영되면서 일어나는 제한된 소통이 흥미롭지 않느냐”고 묻는다. 구상은 지난해 집 마당에 북한 선전 ‘삐라’가 들어온 것을 뜻밖에 발견하면서 나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남한에도 기구에 ‘고추장’과 ‘마른 멸치’를 함께 넣은 삐라 주머니를 달아 북한에 보내는 비밀모임이 있었다. “삐라 보내듯 작업하려 한 거죠. 중국 내 중개업자를 통해 인터넷에서 채집한 폭력, 전쟁, 핵 등의 삐딱한 이미지들을 그린 원본을 보냈지요.”
북 당국의 검열이 작동했는지, 작품들은 보름 늦게 들어왔고, ‘스타벅스’ ‘9·11 테러’ 등을 다룬 외신들을 옛 신문 글투로 바꿔 글자 병풍으로 주문한 원본은 압수됐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미 공군기와 헬기, 폭탄 떨어지는 모습을 그린 또 다른 원본은 행방불명돼 다시 작업을 요청하기도 했다. 함씨는 “북한 작가들이 나의 원본 이미지를 자수로 뜰 때 어떤 일화가 있었는지를 전해듣고 정리하는 작업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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