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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이 사실상의 사용자”

등록 2008-01-04 00:00 수정 2020-05-03 04:25

서울중앙지법 민세원 KTX 열차승무지부장에게 벌금선고하면서… ‘불법 파견’ 가리는 기준점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판결이 언론에 공개되던 12월27일 저녁 민세원(35)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었다. 이튿날 그가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을 서울역 앞 광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김상현 철도노조 정책교육국장은 “지난여름에 이어진 단식 농성으로 민 지부장이 건강을 크게 해쳤다”고 말했다. 농성장에 둘러앉아 빵과 커피로 끼니를 때우던 KTX 여승무원들은 “세원 언니가 아파 현장에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철도유통과의 근로계약은 형식적”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철도공사)이 직접 고용하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2005년 10월께부터다. 여승무원들은 “머잖아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코레일 쪽에서 약속했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을 상대로 ‘사복 투쟁’을 벌였고, 파업을 시작했으며, 코레일 서울지역본부 사무실로 몰려가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2년에 걸친 오랜 투쟁에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코레일은 단체행동을 주도한 민 지부장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그를 기소했으며, 정부는 한 차례 현장 재조사까지 벌이는 소동 끝에 코레일과 KTX 여승무원들의 고용관계가 ‘적법 도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2월27일 법원은 오랜 심리 끝에 민 지부장에 대한 판결문을 공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구희근 판사는 민 지부장의 행동을 “적법한 쟁의 행위로 볼 수 없다”며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민 지부장은 항소하지 않았다.

법원은 민 지부장의 혐의는 인정했지만, 코레일 쪽이 사실상의 ‘사용자’ 위치에 있었다는 것과 여승무원들과의 교섭에 전혀 응하지 않아 단체 행동을 유발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여승무원들이 한국철도유통(현 코레일투어서비스)과 맺은 근로계약은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다. 여승무원들은 사실상 공사와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며 임금이나 수당 등을 받아 공사는 실질적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사용자’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승무원들의 사용자가 한국철도유통이 아닌 코레일이라는 것은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인 ‘불법 파견’ 여부를 가리는 데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지난 2년 동안의 투쟁 가운데 국가기관이 나서 여승무원들의 편을 들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판결이 여승무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다. 법원의 판단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다 당사자인 코레일 쪽의 태도가 강경하기 때문이다.

오랜 싸움, 언니들은 아프다

여승무원들의 앞날은 안개 속이다. 애초 협상을 통해 여승무원 문제를 해결할 조짐을 보이던 코레일은 막판에 합의안을 파기했다. 코레일은 12월21일 오후 3시15분 대전 본사에서 여승무원 80명을 역무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조건으로 합의안을 도출하려 했다.

김상현 국장은 “차를 잡아타고 대전으로 향하던 그날 아침 합의를 파기한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철 코레일 사장은 합의안 파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실무선의 협의였고,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낙담한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 70여 명은 다시 서울역 광장으로 몰려가 농성을 재개했다. 2년 동안 벌써 네 번째 농성이다. 농성장에서 민 지부장을 대신해 투쟁을 이끌어오던 정혜인 부산 지부장도 만날 수 없었다. 여승무원들은 “혜인 언니도 아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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