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372명 대상 사회의식 조사… 80%가 차별금지법 요구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국 최초로 성소수자 사회의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모임 연분홍치마,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으로 구성된 성소수자 사회의식 조사 기획단은 레즈비언(133명), 게이(150명), 양성애자(52명), 성전환자(37명) 등 3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6월10일부터 7월15일까지, 8월25일부터 9월8일까지 두차례 온·오프 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사회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는 “이제 추상적이고 막연한 인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소수자) 인권의 현실이 드러나야 한다”며 “이번 조사에서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사회정치 의식’을 알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성정체성 인식 후 71.4% 두려움 느껴
먼저 가장 흔한 질문 하나, 당신은 언제 성소수자가 되었는가? 물론 이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질문이다. 당신이 언제 이성애자가 되었느냐를 답할 수 없듯이 누군가 언제 동성애자(성소수자)가 되었는지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언제 성정체성을 인식했는지로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이 성정체성을 인식한 시기는 10~20대로 밝혀졌다. 성정체성을 인식한 시기로 ‘10대’를 꼽은 응답자가 61.8%(235명)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20대’ 27.1%(103명), ‘10살 이전’ 7.4%(28명) 등의 순서였다. 3.7%(14명)는 ‘30대 이후’에 성정체성을 인식했다고 응답해 뒤늦게 성정체성을 깨닫는 경우도 있음을 증명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커밍아웃의 상대는 ‘나와 가까운 몇몇의 이성애자 친구’가 51.2%(198명)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여자·남자 형제’ 20.4%(79명), ‘부모님’ 18.9%(73명)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응답자의 56.8%(220명)가 ‘가족에게 성정체성을 말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가족에게 성정체성을 알린 경우에 가족 중 누가 지지하느냐를 물었는데, 남자 형제(6.5%) 보다는 여자 형제(15.2%), 아버지(4.7%)보다는 어머니(11.1%)라는 응답이 많았다. 가족 중에 여성의 지지가 높은 것이다. 한편으로 ‘가족들이 알고 있느나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11.4%(44명)에 이르렀다. 커밍아웃 이후에 고립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성정체성을 인식한 이후에 느끼는 두려움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에 대한 죄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1.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는 가운데도 성정체성을 알리는 커밍아웃에는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85.5%의 응답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주변의 누군가에게 밝혔다’고 응답했다. 반면 14.5%는 ‘누군가에게도 밝히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커밍아웃은 ‘벽장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자신만의 벽장에 갇힌 성소수자가 적지 않음이 확인된 셈이다. 상당수 응답자는 아우팅을 경험했다. 응답자의 24.7%가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타인에 의해 커밍아웃당하는 ‘아우팅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성정체성으로 위기에 처할 확률이 상당한 것이다. 차별 경험에 대해서도 58.0%가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해 과반수가 차별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의 종류로는 직·간접적 비난이나 욕설(39.4%), 시선의 폭력(37.2%), 따돌림(18.6%) 등을 꼽았다. 가족·친구와의 의절 또는 이혼(14.4%), 구타나 신체적 폭력(11.7%), 성희롱·성폭행(8.5%) 등 심각한 폭력을 경험한 사람도 많았다.
아우팅·차별 경험… 정치 상황엔 비관적
그래서 성소수자를 둘러싼 사회환경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우세했다.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5점 척도로 환산하면 평균 4.36점을 기록해, 질문에 대한 강한 긍정을 보였다(3점 이상이면 질문에 대한 긍정).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으로는 ‘제도적·법률적 보호를 받지 못함’(38.2%), ‘가족으로부터의 소외와 차별’(30.0%),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의 혼란과 갈등’(23.0%) 등을 꼽았다. 이처럼 가족, 직장, 사회 등 다양한 집단에서 어려움에 처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도적·법률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별도의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5점 척도 평균 4.36)는 질문에 대해서 53.3%가 ‘매우 그렇다’, 27.4%가 ‘그런 편이다’라고 응답해 압도적 다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법안 제정’(4.27),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의 입양을 위한 법제화’(4.20)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성소수자들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5점 척도 2.26)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35.5%), ‘전혀 그렇지 않다’(25.6%) 등 부정적 의견이 우세했다. 반면에 ‘성소수자 관련 공약을 제시한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3.67), ‘커밍아웃한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3.47)에 대해선 긍정적 응답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수면 아래 잠재해 있지만, 지구촌의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결혼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동성 간 결혼제도가 없어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예’(83.6%)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성결혼 합법화 제도를 찬성하는가’에 대해선 95.0%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동성결혼을 할 생각인가’에 대해선 56.8%가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동성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므로’(60.2%), ‘안정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서’(15.7%), ‘법적·경제적 혜택을 얻기 위해서’(11.1%) 등을 꼽았다. 반면에 ‘동성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12.6%였는데, 동성결혼을 반대하거나 망설이는 이유로 ‘결혼제도는 이성애제도의 산물이므로 결혼제도에 응할 생각이 없다’(17.8%)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한편 이성 간 법률혼 여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1%가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설문 참여도 못한 이들은 더 힘들 것
성소수자 대상의 설문조사에는 딜레마가 있다.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밝히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나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벽장에 갇혀서 커뮤니티에조차 나오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소수자’는 만날 방법이 없다. 조사 기획단 관계자는 “커뮤니티와 관계를 갖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나 불이익, 불안감 등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들을 포함한다면 더욱 심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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