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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이모티콘 어디서 났어?”

등록 2007-10-24 15:00 수정 2020-05-02 19:25

친구 얼굴부터 감자도리·투즈키 캐릭터까지, 이모티콘을 만드는 사람들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웃겨서 더 이상 못하겠어!”

서로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동작을 반복하던 경아와 소윤이는 급기야 바닥에 나뒹굴었다. 구경하던 친구들도, 촬영을 하던 친구도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4월,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만화창작과 2학년 1반은 일주일 동안 시끌벅적했다. 사건의 시작은 친구들의 생생한 표정을 담은 이모티콘을 만들겠노라며 최수지양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부터였다. 카메라라고 해봤자 작은 디지털 카메라에 있는 동영상 기능이 전부였지만 촬영하는 이도, 찍히는 이들도 진지했다.

수지는 친구들의 특징을 드러낸 표정을 잡아내고자 때로는 직접 포즈를 요구하며 ‘설정’을 하고 때로는 ‘도촬’(도둑촬영)을 했다. 일단 영상 소스가 모이자 제일 재밌는 표정을 ‘캡처’(일시정지 화면을 그대로 뜨는 것)해 메신저에 쓰일 이모티콘으로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완성해 적절한 이름을 붙인 뒤 수지는 자신의 블로그에 ‘작품들’을 올렸다.

불쑥 튀어나오는 친구 얼굴에 ‘피식’

발 없는 이모티콘이 반 전체에 퍼지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반 아이들은 자신의 친구들에게도 이모티콘을 퍼뜨렸다. “친구들끼리 채팅을 할 때 ‘경아가 어제~’라고 얘기하면 경아가 뽀뽀를 날리는 이모티콘이 등장해서 피식하고 웃게 돼요. ‘볼살’이라고 치면 소윤이가 볼살을 늘이고 있는 이모티콘이 불쑥 튀어나오죠.” 덕분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수업 시간에는 교실 곳곳에서 메신저 대화를 나누다가 키득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갑자기 친구의 얼굴이 튀어나오니 웃음을 참기가 힘들다고. “작정하고 이모티콘을 만든 덕분에 같은 반 친구들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갖게 됐죠.” 수지의 얘기이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콘이란 뜻의 ‘이모티콘’이 올해로 25살이 됐다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밝혔다. 미국 카네기멜런대학의 스콧 팔먼 교수가 주변 사람들에게 ‘:->’를 제안한 날이 1982년 9월19일이라는 것이다. 온라인에 글을 쓰면 직접 말로 하는 것보다 딱딱해 보이곤 해 상대에게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알릴 방법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가 제안한 이모티콘과 그 응용작들은 온라인에서 간단한 감정표현 방법을 찾던 사람들에 의해 금세 인터넷이 연결된 다른 대학으로 번졌다.

일하기 싫다며 ‘배 째’라는 감자돌이

이모티콘의 사용은 온라인상에서 즉각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인 인스턴트 메신저가 보급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6년 11월 이스라엘 기업 미라빌리스가 최초의 메신저 ‘ICQ’를 내놓은 뒤 1997년엔 AOL, 1998년엔 MS, 야후 등이 메신저를 선보였다. 업체들은 메신저에 기본적인 이모티콘을 내장했고 사용자가 새로운 이모티콘을 등록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모티콘은 누군가 대화 중에 그것을 사용하면 오른쪽 마우스 버튼으로 쉽게 복사와 저장을 할 수 있어 어느 콘텐츠보다 확산이 빨랐다. 인기 있는 이모티콘 캐릭터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캐릭터를 개발하는 사람들도 이모티콘에 신경을 쓰게 됐다.

‘회사 가기 싫어’ 한마디로 직장인의 마음에 단비를 내려준 ‘감자도리’ 이모티콘. 20대 중·후반 직장인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감자도리는 캐릭터 작가 김영주씨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팬시 회사를 다니다가 캐릭터 회사로 옮겼다는 그가 처음 만든 캐릭터는 ‘국진이빵’이었다. 반응이 좋자 그 뒤 그에게 캐릭터 개발 업무가 많이 맡겨졌다. 습작을 위해 이것저것 그리다가 2002년에 그린 것이 감자도리였다. “처음부터 감자를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그리고 보니 ‘감자를 닮았다’는 주변의 평가 덕에 이름을 ‘감자도리’로 짓게 됐어요.” 캐릭터의 이미지에 누가 될지 몰라 작가 자신의 사진 촬영은 절대 안 된다고 하니, 감자도리를 향한 애정이 대단하다.

처음엔 팬시용 캐릭터로 문구 제품에 들어가던 감자도리가 이모티콘으로 재탄생한 것은 ‘작가적 욕심’과 ‘네티즌의 반응’이 합쳐진 결과라고 한다. “카툰이나 출판 쪽 캐릭터로 만들고 싶어서 홈페이지에 감자도리의 카툰 다이어리를 연재하기 시작했죠. 연재한 지 2년쯤 흘렀을까, 인터넷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감자도리 이모티콘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찾아보니 네티즌은 그동안 만들어진 카툰 속 이미지를 다운받아 메신저 이모티콘으로 저장해 사용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만들다 보니 캐릭터가 좀 변형되기에 직접 더 다양하게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이모티콘이 100개가 넘으니 감자도리만으로 100가지 이상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감자도리 이모티콘을 즐겨 사용한다는 직장인 장윤미씨는 “공감 가는 내용의 이모티콘이 많아 메신저 공개 사진까지 감자도리로 해놓을 정도”라며 “가장 즐겨쓰는 이모티콘은 ‘일하기 싫어, 배째’(그림)”라고 말했다. 이런 공감 백배의 이모티콘들은 어떻게 생각해낸 것일까. 김 작가는 “나 역시 직장인이다 보니….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상사에게 뭔가 말하고 싶을 때 등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간단하게 메모해뒀다가 그리죠.”

이모티콘의 인기가 높아지자 회사 쪽에서도 김 작가에게 주기적으로 업로그할 것을 권했다. 또한 일반 기업체에서 자사 홍보용으로 감자도리 이모티콘를 제작해달라는 주문도 들어와 월드컵 시즌에는 ‘월드컵 감자도리’ 시리즈,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쇼핑을 즐기는 감자도리’ 시리즈 등을 따로 제작했다고 한다. 감자도리 이모티콘은 현재 중국과 일본에도 퍼져나가 따로 각국 언어별로 이모티콘을 올려놓기도 했다. 이모티콘계의 ‘욘사마’로 떠오른 셈이다.

거꾸로 외국에서 만든 이모티콘이 한국에서 유행을 하기도 한다. 단순하면서도 깜찍한 동작으로 네티즌을 사로잡은 토끼 캐릭터 투즈키(Tuzki). 이 이모티콘을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는 이는 현재 중국 베이징 광파학원(北京 广播学院) 동화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왕모모(22)씨다. 만화를 좋아한다는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투즈키 캐릭터를 이용해 이모티콘을 올리자 인터넷을 타고 온 한국 네티즌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투즈키 이모티콘을 그의 블로그에서 직접 다운받았다는 한 네티즌은 “하얀 바탕에 검은 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토끼지만 재치 있는 동작과 표정이 압권이다”라고 평가했다. 현재 왕모모는 투즈키 캐릭터로 다양한 작업을 해 꾸준히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중국 ‘왕모모’란 사람 블로그 가봤니?

‘그림’과 관련 없어 보이던 사람들도 이모티콘 제작을 ‘일삼아’ 하고 있다. CJ제일제당 마케팅전략팀의 김정하 과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회사를 위한 이모티콘을 만든다. 온라인 마케팅의 관점에서 회사의 브랜드나 상품을 네티즌들에게 더 친근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이모티콘을 선택했다. “각 상품의 콘셉트에 맞게 구상을 하고 나면 디자인센터에 의뢰해 이모티콘을 만듭니다. 이모티콘으로 홍보를 하면 호감도도 높아지면서 상품 정보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죠.” 이모티콘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는 현재까지 모두 14개. 햇반, 쁘띠첼, 컨디션, CGV, 뚜레쥬르, Mnet, VIPS 등 CJ를 대표하는 제품들과 브랜드들이다. 귀엽고 재밌게 만드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컨디션은 소주병과 컨디션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을, 햇반은 따뜻한 밥을 앙증맞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왜 이모티콘을 좋아하고 즐겨 쓸까. 감자도리의 김영주 작가는 “일단 만드는 사람도 별 부담이 없고 보는 사람도 사용하기 쉽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루 일과 중 짬짬이 하게되는 인스턴트 메시지 교환에서 짧고 간결하게 많은 느낌을 담으려면 이모티콘이 편리하다. 언어의 장벽도 쉽게 넘는다. “표정으로 바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으니까 다른 나라에도 쉽게 전파되죠.”

포털에서 ‘메신저 이모티콘’으로 검색을 해보면 개인이나 기업이 만든 이모티콘은 셀 수 없이 많다. 네이트온 이모티콘 자료실(nateonweb.nate.com/bbs/)에는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이모티콘만 7만 개에 이른다. 여기에 매일같이 수백 개의 이모티콘이 새로 등록되고 있다. 제작자의 손을 떠난 이모티콘들은 네티즌의 공감대를 타고 오늘도 멀리멀리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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