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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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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조심하라는 세상에 하이킥!

등록 2007-10-18 00:00 수정 2020-05-03 04:25

여성‘운동’하다가 몸 쓰는 ‘운동’에 나선 여자들의 몸 훈련 프로젝트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얍!”

네 명이 내뱉는 기합 소리가 밤거리에 울려퍼진다. “이번엔 무릎차기를 해볼까? 몸이 덜 풀려서 그런지 다리가 좀 당기네.” 아이셔(21), 송선영(35), 자비(25), 송이송(20)씨는 짬짬이 스트레칭을 해가면서 거침없이 발을 날렸다. 이들은 얼마 전부터 ‘밤길’에 움츠러드는 자신을 박차고 나가겠다며 주말마다 모여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2007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날자!’. 기초 체력 운동부터 ‘신체의 무기’ 습득, 축구·핸드볼 경기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지난 9월, 10주간의 첫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1월부터 두 번째 시즌에 돌입한다.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여성‘운동’을 하고 있던 이들이 몸을 써서 ‘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치한과 ‘쩍벌남’ 앞에 왜 작아지나

‘아이셔’란 아이디로 활동 중인 류김지영씨는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이던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여성들의 밤길 되찾기 운동인 ‘달빛시위’의 기획에 참여해 새벽 2시에 종로 거리를 걸으며 “이제 진짜 밤을 되찾은 거지!”라고 외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친구들과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버스 막차를 탔다. 반쯤 왔을까. 한 남자가 나를 계속 힐끔거렸다. 얼굴 한 번, 다리 한 번….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학습된 공포는 나에게 그냥 무시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릴 곳에 도착해 일어섰더니 그 사람도 따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정류장에 택시가 한 대 서 있기에 재빨리 달려가 탔다. 택시 기사는 “아가씨, 밤길 조심해야 한다”라고 했다. (중략) 왜 나는 도망치듯 택시를 타야만 했던 것일까.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날 그는 ‘아무리 학교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고, 여기저기 목소리 내고 다녀도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면, 나는 너무나 무기력한 작고 힘없는 여자아이로구나’라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때 어렴풋이 든 생각이 ‘운동(movement)도 좋지만 일단 운동(exercise)도 좀 해야겠다’였다. 그 뒤에도 그는 학교 근처에서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새벽 2시에 귀가하면서 자리 양보를 안 한다며 욕하는 사람, 몸을 슬쩍 건드리는 사람, 뒤쫓아오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을 만났다. 한번은 파출소 근처에서 한 남자가 그의 가슴을 만지고 달아나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결국 범인은 못 잡고 경찰들에게 “그러게 왜 밤늦게 다니냐” “우리 마누라는 밤에 못 돌아다니게 해야겠다” 는 등의 말만 들었다. 그길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개설된 10주 과정의 성인 대상 ‘주말 도장’에 등록해 운동을 시작했다. “내 몸도 공격하는 상대에 맞서 싸워볼 순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됐죠. 몸의 변화보다도 마음의 변화가 컸습니다.” 이후 성인 대상 프로그램이 없어지자 류김지영씨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날자!’를 기획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여름, 이들은 매주 일요일 3시간씩 용산에 있는 한 태권도장에 모여 태권도 사범 송선영씨의 지도를 받았다. 지하철의 ‘쩍벌남’을 볼 때마다 불쾌했지만 막상 눈이 마주치면 피한 채 다리를 오므려 앉아왔다는 자비씨도 참여했다. ‘날자!’를 시작한 뒤로 ‘아저씨들과의 눈싸움’이 더는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그는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있고 학부에서도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지만 ‘몸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늘 ‘말만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토론회다 집회다 말을 하고 글도 썼지만 그걸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금처럼 강하게 든 적이 없었어요. 내 몸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고 그동안 활동하며 이야기해왔던 내용을 일상으로 가져와 확장했다고 할 수 있죠. 누가 날 건드릴까 무서워하며 호루라기나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건드리기만 해봐라’ 하고 눈을 치켜뜨는 거예요.”

‘쌈닭’과 ‘운동하는 언니들’의 만남

일주일에 한 번으론 부족하니 여러 운동을 남자들과 함께 해보라는 송 사범의 조언에 따라 류김지영씨는 학교에서 교양강좌로 개설된 호신술 수업도 듣고 있다. 하지만 수업 때마다 “여자는 이런 건 어려우니까 하지 말고…” “여자가 있으니까 기본부터…”라는 식의 끊임없는 ‘여자 타령’을 듣는다. “같은 성이라면 몸이 다르고 힘의 크기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지는 않는데 여자는 단순히 여자라는 것만으로 ‘몸의 능력’이 규정지어져요.” 그런 면에서 그는 기존의 호신술과 자기방어 훈련은 개념부터 다르다고 주장한다. “호신술이 몸을 지킨다는 수동적 개념에 갇혀 있다면 자기방어 훈련은 여성이 주체가 되어서 외부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활동입니다. 함께 모여 경험과 생각을 나누면서 ‘운동’을 통해 ‘운동’을 하는 거죠.”

운동이 너무 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었다는 송이송씨는 ‘날자!’ 안팎에서 두루 “쟤는 완전 쌈닭이야”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세대 사회과학 계열에 재학 중인 그는 농구를 가르쳐준다는 말에 학교 아마추어 농구부의 매니저로 들어갔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다. 그러나 남자 선수들 속에서 “우리 매니저는 채소연이 아니라 채치수”(만화 에는 이쁜 채소연과 그의 오빠로 우락부락하게 생긴 채치수가 등장한다)라는 놀림만 받은 채 제대로 된 연습 게임 한 번 못해봤다. 그러다가 ‘운동하는 언니들’을 만났다. 자기방어 훈련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여름, 그는 여자들끼리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 모여 축구를 하는 ‘짝토 축구회’에 가입했다. 지난 5월로 결성 1년이 된 ‘짝토 축구회’는 이제 매주 모여 훈련을 하거나 친목 경기를 한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날, 그는 “지난주부터는 ‘자신만만 농구단’ 활동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농구부 매니저를 할 때는 제 몸놀림 자체가 그저 희화화의 대상이었죠. 그땐 농구 실력을 키워서 농구단 남자들을 이기고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지금은 그들을 꼭 그런 식으로 이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지금 정말 즐기며 운동을 하고 있고 이게 진짜 그들을 이기는, 아니 나를 위한 방식이니까요.”

요즘 송이송씨를 가장 설레게 하는 이벤트는 10월21일에 있을 ‘가을 대운동회’다. ‘여자들이여, 가을을 달리자’란 슬로건으로 서울 금란여자중학교에서 펼쳐질 행사에서 송이송씨는 스트레칭 진행을 맡았다. “처음 하는 자발적 운동회이니만큼 땀 흘리며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 하지 말고 ‘으아!’ 합시다”

‘날자’고 모여 한 판 날아올랐다가 이제 두 번째 판을 벌이려는 그들. 그동안의 ‘무용담’도 쏟아진다. 운동을 마치고 간 뒤풀이 자리에서 옆자리 아저씨와 시비가 붙자 모두 함께 달려들어 승리(?)했던 일, 한 번도 휘둘러본 적 없던 주먹으로 송판 5장을 격파하고 감격했던 일…. “밤거리 치안이 불안한 것이 나쁜 것이고, 가해자가 아닌 여성 피해자를 내세워 ‘이거 봐, 밤길 무섭지? 그러니 싸돌아다니지 마’라고 겁주는 세상이 나쁜 것이죠. 왜 가해자는 잡아 가두지 못하면서 애꿎은 여성들만 방에 가두려고 하나요.” “우리 얘기가 알려지고 더 많은 여자들이 함께 운동해서 가해자들이 ‘아, 여자라고 쉽게 보다 큰일 나겠구나’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여성 스스로도 ‘어머!’ 하고 움츠러들지 말고 ‘으아!’ 하고 가슴을 두드렸으면 합니다.” 아이셔씨와 송이송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11월에 시작하는 ‘날자!’의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꿀꿀한 녀자들의 몸 훈련 프로젝트’(cafe.naver.com/2007mybody) 사이트를, 가을 대운동회 참가 신청은 언니네 살롱 ‘Feminist Sports & Spirit’(www.unninet.net/fess)를 참고하면 된다.



정말 변하기 힘들구나, 언론은

문화방송 ‘밤길이 무섭다’, 기자·PD 잘못된 성인식 좀 바꿔주시길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 밤길이 무섭다’는 문화방송 9월29일 토요일 방영분의 제목이었다. 여기서 부녀자란 ‘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연쇄실종 사건’은 최근에 있던 홍익대 앞·강남 납치 사건과 2004년 납치 사건 등 시공간이 다른 사건을 하나로 묶은 표현이다. ‘밤길이 무섭다’고 했지만 정작 방송이 46분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도급 택시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택시가 무섭다’였다. 택시만 빌려 영업을 하는 형태인 ‘도급 택시’는 ‘낮길’과 ‘밤길’ 구분 없이 달린다. 대책 역시 가지각색의 이동통신사 서비스를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밤거리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밤길’ ‘여성’ ‘공포’ 등의 키워드에 집착했다. 기자가 한 20대 남자에게 대뜸 “여자친구가 밤늦게 들어갈 때 걱정되지 않아요?”라고 묻는 장면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씨는 “유영철 사건 당시 남성 중심적인 언론의 태도에 문제를 느껴 ‘밤길을 되찾자’는 취지의 ‘달빛시위’를 4년이나 해왔는데도 이런 식의 보도가 나오니 정말 언론도 세상도 변하지를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홍익대 앞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 2명이 택시로 납치돼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뒤 한동안 그 밤거리는 경찰로 붐볐다. 택시와 승객을 줄 세우는가 하면 빈번히 음주 단속과 검문을 펼쳤다. “지구대 병력 20명에 마포경찰서에서도 60여 명이 지원을 나온 상태”라는 그 상황은 한 신문이 보도한 대로 ‘지금 홍익대 앞엔 경찰 반 클럽족 반’일 정도였다. ‘보여주기식’ 치안 관리의 현주소이다. 지난여름 경찰청은 야간 외출 삼가기, 지나친 노출 의상 피하기 등 여성을 ‘단속’하는 내용을 ‘성범죄 예방 10대 요령’으로 제시해 여성계의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정작 납치살인 사건의 핵심이던 ‘도급 택시’ 문제는 이후에도 별 진전이 없다.
밤거리 치안 문제를 두고 언론이 ‘여성 걱정’만 늘어놓는 것도 이런 ‘실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여성단체들은 지적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지난해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내며 “언론 보도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그것을 제작하는 기자·PD의 성 인식이 잘못됐을 때 악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여성 전용 콜택시’냐 ‘브랜드 택시’냐

10월 말에 사업자 선정되면 운행한다는 서울시의 ‘콜택시 서비스’

10월5일, 서울시청 앞 마당은 분홍 물결이었다. 여성주의 문화집단 ‘이프’가 기획한 2007 여성 전용 파티 ‘시청 앞 밤 마실’의 드레스 코드가 ‘분홍’과 ‘꽃’이었던 것이다. 왜 하필 ‘분홍’이었을까. 이프는 “영국·러시아에서 ‘핑크택시’라 부르는 ‘여성 전용 콜택시’가 이번달부터 서울시에 도입된다고 해 이를 환영하면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분홍 꽃으로 장식한 택시와 여성 운전자들의 퍼레이드도 볼 수 있었다. ‘이프’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여성전용택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여성 전용 콜택시’ 서비스를 언제,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서울시는 현재 6개의 콜택시 업체를 최종 후보로 놓고 사업자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콜택시 영업을 하고 있는 업체들이기에 10월 말에 사업자를 발표하면 바로 운영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선정된 한 업체의 전화번호가 ‘여성 전용 콜택시’의 전화번호가 된다. 서울시는 선정된 업체에는 지원금을 주고 관리·감독을 할 계획이지만, ‘여성 전용’이란 표현에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서울시청 운수물류담당관은 “이 사업은 서울시의 ‘여성 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이긴 하지만 ‘시민이 안심하고 탈 수 있는 브랜드 택시 서비스’ 정도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여성을 포함한 시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콜택시 브랜드를 만든다는 개념이다.
‘브랜드 콜택시’는 교통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어 출발지와 도착지가 기록되고 콜택시를 부르면 곧 차량과 운전자 정보가 도착 예정 시간과 함께 휴대전화로 문자서비스 된다. 택시를 부르는 사람이 여성 운전자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아직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에는 여성 운전자가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파악한 여성 기사는 전체 8만9천여 명의 택시 기사 중 800여 명. 현재 경쟁 중인 6개 업체에 소속된 여성 운전자는 130여 명에 불과하다. ‘이프’의 강수정 기획팀장은 “여성 전용 콜택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브랜드 택시’라는 이름으로 한 업체만 선정할 게 아니라 기존의 여성 운전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그들을 모아 운영을 한다든지, 회사별 여성 운전자 쿼터제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식의 실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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