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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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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점을 찾아내라

등록 2007-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독일의 분열적 현상들을 분리해내는 동독 출신 심리학자 한스 요하임 마츠 인터뷰

▣ 글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1990년 10월3일, 독일은 정치적·제도적으로 통일됐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적으로는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아직도 ‘분리’ 상태다. 정치적·제도적으로 여전히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선 통일된 독일을 부러워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통합 과정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독일 정신분석 치료 및 심층 심리학회 회장인 한스 요하임 마츠가 말하는 것도 새겨들어야 할 교훈들 중 하나다. 동독 출신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심리학자여서 그럴까, 그는 외과의사가 암세포를 정상 조직에서 떼어내듯 예리하게 독일의 분열적 현상들을 분리해낸다. 마츠 회장은 분열적 현상의 원인을 통일 과정에서 나타난 정신적·사회적 적응의 문제점에서 파악한다. 그는 ‘동독인’들의 부적응의 원인에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다른 체제(Regime)에서 동·서독인들이 서로 다른 사회화 과정을 겪은 것에 주목한다. 그는 4월19일 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식 통일은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통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적인 문제에만 천착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통일을 꿈꾸며 준비하는 우리에게 그의 견해는 큰 시사점을 준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후원을 받아 연세대 통일연구원이 개최한 한-독 통일 심포지엄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열정과 기쁨 뒤 실망이 정착되었다

독일이 통일된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다.

=통일 이후를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통일이 가져다준 열정과 기쁨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들어 실망의 2단계가 찾아왔다. 특히 동독인들한테 (열악한) 노동시장이나 사회적 지위가 문제였다. 대략 2000년부터 시작된 3단계는 실망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되는 과정이다.

당신이 말하는 옛 동독인들의 불안은 ‘사회주의 인간형’에서 ‘자본주의 인간형’으로 전환을 요구받으면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순 없다. 폴란드나 헝가리와는 다르다. 동독(지역)엔 (통일 뒤) 엘리트의 교체가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와 헝가리엔 엘리트가 자생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동독은 엘리트를 키우지 못한 채, 서독의 엘리트들이 들어와 완전히 대체했다. 동독엔 서독의 시스템이 그대로 들어왔다. 동독의 자생적 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동독이 서독화된 것처럼, 동독인들은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뭘 이룬 게 아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갑작스럽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사회심리학적으로 바라본다. 사회주의에서 동독인들은 복종·예속과 같은 ‘지배당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쳤다. 반면 서독인들은 경쟁과 시장의 논리에 따르는 ‘지배하는 능력’을 키웠다.

통합 과정에서 당신이 주목하는 갈등의 원인은?

=동독인들은 기다리는 것, 지도받는 것, 의존하는 것, 복종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서독인들은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것, 적극적으로 지배하는 일반성을 갖고 있다. 통합은 사회심리학에서는 하나의 공모적 과정이다. 열쇠를 구멍에 꽂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쪽에선 지배할 수밖에 없고, 다른 한쪽은 복종할 수밖에 없다.

통합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불안을 이전 체제의 ‘인간형’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결정론적인 시각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통합 과정에서 심리학적인 요소들을 고려했어야 한다. 그랬으면 문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늘 재정적 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집착했다.

당신은 1991년부터 사회심리적 차원에서 통합의 중요성을 얘기해왔다. 그런데도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그런 조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서독은 ‘우리는 승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가 맞았다’는 일정한 착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약점을 인식하고 수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한테 투영하게 된다. 그게 쌍방향으로 작용했다.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을 ‘잘난 체하는 자’로 비난하고,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왜 만족하지 못하냐’고 비난했다. 서로 비난하면서 자기 약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지구 온난화 문제 같은 경우, 서독식의 소비 문화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독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우리 서독인들이 옳았다’는 게 맞지 않는다는 증거가 그외에도 많다. 서독식 소비문화가 유토피아라는 것은 매우 상대적이다. 하지만 서독 사회는 수긍하기 싫어했다. 개인 단위에서처럼 심적 방어기제를 작동해 단점을 방어했다. 서독 사회의 한계도 소비문화나 환경에서 잘 나타난다.

옛 동독인이 자본주의 대안을 제시할 수도

지금의 독일은 통일에 대한 실망감이 정착되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언제쯤 해소될 수 있다고 보나?

=이질성은 해소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물론 세대를 거쳐 완화될지 모르지만,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년 10만여 명의 동독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한다. 동독 지역은 완전히 사람이 없어진 실패한 지역이다. 일자리는 없고 실업률은 높다. 동·서독의 차이는 북독일과 남독일의 차이처럼, 지역에 사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처럼 ‘옛 동독’과 ‘옛 서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지역의 차이처럼 이질성이 있다.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통일의 승리자와 실패자, 더 나아가 돈 많은 자와 가난한 자, 그런 사회적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현지의 동독과 서독 차이를 독일 남부와 북부의 차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런 얘기는 아니다. 동독인들은 서독식으로 사는 것에 적응하려 많이 노력했다. 일부는 성공할 수 있었다. 돈도 벌고 사회적 지위도 갖게 됐다. 실패한 사람도 있다. 지금 실패했다고 얘기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역으로 하나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 우린 다르다. 우린 우리대로 장점이 있다. (동독인이란 과거가) 약점이 아니다’라고. 동독인들은 인간적 관계를 서독보다 더 중시했다. 옛 동독인들이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였다고 한 것을 대안으로 바꾸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패자들이 다르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젠가 올 통일 한국의 사회적 통합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

=한국의 경우엔 (독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특히 북한이 너무 폐쇄적이다. 문제를 예방하려면 인간적 존엄성,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등하게 살면서, 자신을 계발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독일에서도 봤듯이 동독인들을 마치 ‘2등 인간’처럼 취급한 건 큰 문제였다.

각각의 사회(체제)의 장점을 알아내고 결합해내야 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그게 빠졌다. 예를 들어 옛 동·서독의 공통적인 새 헌법을 만들자는 논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매우 중요한 논쟁이었다. 계속해서 서독은 동독인을 저평가했다. 동독은 다 나빴다는 것이다. 동독의 장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옛 동독에서 훨씬 잘 갖춰졌던 탁아소를 다시 설립하려는 운동이 일고 있다. 병원과 탁아소는 서독보다 동독이 훨씬 나았다.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은 것은 통일 과정에서 양쪽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원탁에 앉아서 상대방의 장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야 한다.

동독 탁아소를 다시 설립하려는 운동

남북한 통일의 과정은 불투명하다. 당장 우리가 뭘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다. 즉, 북쪽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게 살았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경험했던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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