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김대중과 아웅산 수치] ‘대중’은 ‘수치’를 잊지 않는다

등록 2007-01-13 00:00 수정 2020-05-03 04:24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김대중 전 대통령은 1월5일 버마 방문을 위한 비자를 주한 버마대사관에 신청했다.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니셔티브’(NWI)가 추진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62)의 가택연금 해제와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한 버마대사관에서 내정간섭을 이유로 거부했다”고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이 전했다. 캠페인엔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해 10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아웅산 수치는 김 전 대통령에게 특별한 이름이다. 김 전 대통령 또한 아웅산 수치에게 특별한 이름이다. 둘의 이름은 함께 따라다녔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인 1999년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끝나자 예정에 없던 탄 슈웨 버마 총리와의 정상회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버마를 위해서도 버마 정부가 아웅산 수치 여사 등 모든 정치세력과 대화하고 정치에 참여시켜 안정된 정국을 이룸으로써 세계의 지지를 얻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치는 정치 활동을 제한받고 있었다. 같은 해 6월 김 전 대통령은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을 통해 방한 중인 우 윈 아웅 버마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례적으로 아웅산 수치의 문제를 제기했다.

광고

이듬해인 2000년 2월 수치 여사는 캄보디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통령이) 버마의 민주화운동에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걸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7개월 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 수치 여사가 수상했던 라프토 인권상을 받았다. 그리고 12월엔 아시아인으로선 일곱 번째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수치는 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비슷한 시기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도 일찍이 수치가 수상한 펄벅 인터내셔널의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수치 여사를 도운 것도 평가됐다. 노벨위원회의 베르게 위원장은 “아웅산 수치가 버마의 독재에 항거, 영웅적 투쟁을 벌이는 것을 적극 지원했다”고 수상 발표문에 기록했다. 이후에도 김 전 대통령은 아웅산 수치를 잊지 않았다. 수치가 2003년 6월 다시 구금되자, “경악과 함께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1주일에 세 번씩 혈액투석을 꼭 받아야만 하는 상태에서도 아웅산 수치를 돕겠다고 다시 나섰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