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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연] 큰 선배를 위한 조촐한 시상식

등록 2006-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민족문학작가회의에는 ‘젊은작가포럼’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매년 한 작가를 선정해 ‘아름다운 작가상’을 시상한다. 시상자나 수상자나 양복을 차려입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거창한 상금도 없다. 그런데 이 상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하거나, 맹랑하다. 첫째, 후배들이 선배에게 주는 상이다. 둘째, 상의 기준은 작품이 아니라 ‘문학적 성품’이다. 당신이 문인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후배 문인들이 자신의 ‘성품’을 높이 보고 상을 준다면.

올해의 아름다운 작가상은 소설가 오수연씨가 받았다. 시인 정양(2002), 소설가 김남일(2003), 시인 정희성(2004), 소설가 이경자(2005)씨가 이 상을 거쳐갔다. 오수연씨는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라크 파견작가 신분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동료 문인·평화활동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후배들이 작가님의 문학적 성품을 보고 상을 준답니다.” 그에게 가장 궁금한 수상 소감을 물었다.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근데 문학적 성품이 뭐예요?” 기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문학적 실천이니 열정이니 하며 주최 쪽의 의도를 ‘추측’하는 동안 그는 소감을 밝힐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활동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모름지기 상이란 이런 사람들이 받아야 한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는 시인 김정환·이용주, 소설가 윤정모씨 등과 함께 한다. “팔레스타인 상황이 뉴스에 많이 나오긴 하죠. 우린 뉴스를 보고 골치 아픈 땅이라는 생각만 할 뿐이에요. 두 나라 간의 심리적·정서적인 거리를 줄이려고 문화를 서로 소개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에요.” 소설가로서 힘든 점은 ‘무지’였다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오간 짧은 기간은 그곳에 압축적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수연씨는 자신이 그곳의 현실을 너무 몰라서 체험을 문학화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문학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체험들이 그를 더 짓눌렀다고. 그가 단체를 결성해 문화 소개에 진땀을 쏟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2월15일 숨쉴 시간도 아까운 오씨를 모시고 후배들은 시상식을 열었다. 조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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