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스원 영업직 560여 명, ‘익명’의 제보로 갑작스레 계약 해직 통보받아…코미디 같은 해직에 귀기울여주기를 바라며 한겨울 한강 1.4km를 헤엄쳐 건너다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괜찮아! 기자들 많이 왔으니까.” 김오근 위원장이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쓴 김 위원장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스스로를 ‘삼성 에스원 세콤 노동자연대’라고 불렀다. “저희가 오죽했으면 이러겠습니까.” 그는 “처음 한강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아무도 저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잖아요. 삼성이라는 대자본과 싸우려면 목숨까지 걸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각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난 8월 삼성 에스원에서 갑작스레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영업전문직 노동자 11명이 마포대교 북단 둔치로 모여든 것은 11월28일 오전 11시께다. 그들은 “우리의 투쟁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한강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서울 기온은 올 들어 처음 영하로 떨어졌다. 매서운 강바람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포서 유재신 경감은 “날씨가 너무 추워 맨몸으로 강을 건널 수 없다”고 말했다. 의경 몇 명이 둔치로 내려서는 노동자들을 막아섰지만, 그들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잠깐 동안의 실랑이 끝에 노동자 11명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강물로 내려설 수 있었다. 그들은 너비 2m, 길이 20m짜리 펼침막을 넓게 펼쳤다. “Samsung, 세콤 부당해고 철회하라”고 쓰인 글씨가 선명했다. 그들은 “박살내자” 또는 “결사투쟁” 등의 구호를 끊임없이 외쳐댔지만 마포대교를 오가는 교통 소음과 강바람 소리에 막혀 기자들이 선 곳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마포대교 쪽 한강의 너비는 1.4km다.
보험 판매원의 보험 영업이 위법?
에스원 영업전문직 노동자들이 기나긴 투쟁의 길로 접어든 것은 올해 8월부터다. 그들은 에스원과 위탁계약을 맺고 무인경비 시스템인 ‘세콤’을 판매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로 그들의 고용 지위는 보험 판매원, 학습지 교사 등과 비슷하다. 모든 것은 7월께 경찰청 생활안전과로 ‘익명의 개인’이 보내왔다는 질의 의뢰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문제의 ‘익명의 개인’은 질의 의뢰서에서 “기계경비업자가 영업 딜러들에게 (고객을 만나) 기계경비 시스템을 설치하도록 주선 및 권유하는 행위가 경비업법상 위법한 행위인가”라고 물었다. 기계경비업자란 에스원, KT텔레캅같이 집·사무실 등의 경비 대상 시설에 경보장치 등을 설치해 위험 발생을 막는 사업자를 말한다. 기계경비업자가 되려면 관할 지방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질문을 다른 말로 풀어 말하자면, “보험업법상 허가를 받지 않은 보험 판매원이 고객을 만나 보험에 들도록 영업하는 행위가 위법인가”쯤이 된다.
코미디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익명의 개인’의 질문에 대해 경찰청 생활안전과는 에스원 등에 “그렇게 영업을 하면 3년 이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회신했다. 근거는 가입 권유, 상담, 계약 체결 등의 순수 영업적인 업무도 기계경비 업무에 포함된다고 경찰청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질의 내용의 딜러 업무는 기계경비 업무의 일부에 해당한다 할 것임.” 에스원은 이를 근거로 8월8일 560여 명의 영업전문직 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귀하나 본사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제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본 문건 도착 즉시 영업전문직 계약이 종료됨을 알려드립니다.” 이를 다시 쉬운 말로 바꿔 말하면, 금융감독원이 보험 판매원들이 고객과 만나 보험에 들도록 가입하고 계약을 맺는 행위까지 보험 업무에 포함된다고 판단하고, 삼성생명은 이를 근거로 하루아침에 보험 판매원들과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셈이다. 노동자들의 계약해지 취소소송을 준비했던 남송 법률사무소의 김용환 변호사는 에스원에 보낸 통고문에 “보험사나 통신사 등 다른 사업 분야에서도 신규 고객의 모집활동은 모집인 등을 통해 이뤄진다”며 “경찰청의 판단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적었다. 문제의 ‘익명의 개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쟁업체는 본사 계약직·정규직으로 흡수
늦가을 한강은 노동자들의 도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103·107·108호 등 세 척의 모터보트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빈틈없이 둘러쌌다. 펼침막의 무게 탓인지 노동자들은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자꾸만 하류 쪽으로 떠밀려갔다. 하류 쪽으로 저만치 떨어져 보이는 밤섬에 못 미쳐 첫 탈락자가 나타났다. 안타깝게 동료 노동자들을 지켜보던 원영기씨가 “갑자기 저체온증이 왔다 보다”며 마포대교 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모터보트 안에서 “부당해고 철회하라”는 구호를 그치지 않았는데, 그의 외침은 마포대교 위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물 속에 들어간 지 20분이 넘어서자 펼침막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노동자들은 기진한 듯 보였다.
노동자들은 에스원 쪽의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씨는 “회사 쪽이 원해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긴 했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조건에서 사원번호까지 부여받고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투쟁은 다섯 달 넘게 이어졌지만, 모든 종류의 노동 투쟁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관심은 멀었고 회사의 압박은 가까웠다. 에스원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10월12일 ‘강제해고’ ‘원직복직’ 등의 문구를 사용할 경우 1회당 100만원을 회사 쪽에 지급하라는 내용의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삼성 본사 앞 등에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한 시위를 하지 말라는 선에서 법원의 결정이 났다), 노동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으며, 한 사람당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냈다. 에스원 홍보실 관계자는 “위법한 계약을 유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계약 해지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경찰의 질의 회신문을 받은 경쟁업체 KT텔레캅과 캡스는 영업전문직들을 본사 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흡수하고 있다.
11시58분. 다시 한 명의 노동자가 탈락했다. 그들은 밤섬 언저리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마포대교 위에서 노동자들의 고투를 바라보던 동료들이 “힘내라”고 외쳤다. 물 속의 노동자들이 다시 구호로 답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차가운 강바람에 막혀 전달되지 않았다. 보다 못한 107호 경찰 보트가 노동자들의 펼침막을 연결해 앞으로 끌었다. 보트의 힘에 기대 끌려가던 김완길(36), 정상락(32)씨가 줄을 놓쳤다. 그들은 마포대교 남단 둔치에 도착해 갑작스런 저체온 증상을 보여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실려갔다.
“삼성에서 질의를 한 것 같다”
노동자 조낙현(36)씨는 “회사가 우리를 너무 무시했다”고 말했다. “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고, 자식들을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떳떳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모여든 기자들과 동료 노동자들 앞에서 김오근 위원장은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우리를 자르기 위해 질의를 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꼭 투쟁으로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울먹이다 겨우 한마디를 더 내뱉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실려간 동지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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