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미국에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있다면, 한국에는 백두대간이 있다. 산꾼들이 몇 달을 투자해 몸과 산을 섞는 고독하고도 긴 길이다. 그런 백두대간의 지도가 나왔다. 는 한반도의 속살을 뚫는 790km의 산길을 24장으로 나눠 그린 지도첩이다. 수십 년 동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하이커들이 지식을 쌓아 애팔래치아 트레일 지도를 만들었듯이, 도 한국의 산꾼들이 만들었다.
지도 제작자 이재곤(60)씨. 그는 아내인 김홍국(56)씨와 전문산악인 윤인표씨와 함께 백두대간 지도를 만들었다.
“1965년부터 지도를 그렸지요. 대학 시절 삼중당에서 지리부도를 아르바이트로 그린 게 처음이에요. 1970년대에는 출판사에서 일본 지도를 그렸고…. 그때만 해도 한국은 일본 지도 생산의 하청기지였어요. 거기서 선진 제작 기법을 배울 수 있었지요.”
이씨는 1980년 한 업체의 의뢰로 등산지도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나침반과 고도계를 가지고 산을 탔고, 그 산을 가장 잘 아는 산꾼을 취재해 지도를 그렸다. 당시 거의 유일한 등산지도였던 ‘코오롱스포츠’ 시리즈를 그가 만들었고, 의 부록 지도도 1984년부터 그가 만들고 있다. 1992년엔 ‘고산자의 후예들’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리고, 지자체나 업체에서 요청한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고산자는 김정호의 호. 둘 중에 누가 사장이냐는 물음에 그는 “우리는 그런 거 없어요. 직원들 모두 지도 제작자들이에요. 고산자의 후예들이지요”라며 웃었다. 과연 그의 명함에는 ‘대표’라는 직함도 없다.
백두대간 지도는 처음으로 직접 기획한 자신만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고 그는 말했다. 아내인 김홍국씨는 백두대간을 완주하며 꼼꼼히 메모한 것들을 가져왔고, 윤인표씨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정확성을 높였다. 그렇게 3년 이상 산을 탄 끝에 탄생한 지도에는 꼼꼼함이 묻어난다. 갈림길마다 좌우 방향이 표시돼 있고, 무덤 개수, 돌탑, 이정표까지 기록돼 있다. 종이는 물에 젖지 않는 재질을 사용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백두대간은 군대 얘기보다 더한 안줏거리라고 한다. 길은 지리산 종주를 하다가 산골 마을로 내려가고 고속도로를 건넌다. 이씨는 “백두대간 지도가 가기 전에는 정확한 길잡이가, 갔다 온 뒤에는 추억의 동반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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