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때가 1988년이었나?” 장윤선(71)씨는 서울역 앞 만화방의 역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었다. 그는 1988년 서울역 앞에 ‘제일만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한 뒤 20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에어컨과 고급 소파 등의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던 그의 만화방(60평·110석)은 낡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퇴물로 변했다. 한때 20곳 가까이 되던 서울역 앞 만화방들은 오락실·PC방·커피 전문점 등에 차례로 자리를 내줬고, 장씨의 제일만화와 ‘서 사장’의 ‘대일만화’ 등 대여섯 집만이 “차마 간판을 내릴 수 없어” 오늘도 초라한 골목길을 지키고 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 앞을 지나는데, 옆에 ‘대일학원’에서 수업을 끝낸 학생들이 우루루 쏟아지더라고.” 앞으론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50대 남자는 여기서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 성공하겠다는 예감을 했다. 처음엔 독서실을 꾸며볼까 하다가 “만화가게가 좋겠다”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제일만화의 간판을 올렸다. 그는 “여기서 100원짜리 장사해, 자식 셋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게 아니냐”며 웃었다. “그래도 몸에 힘이 남아 있던” 90년대에는 용산경찰서가 위촉한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일하며 적잖은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그 덕에 차비와 전화 요금으로 돈도 많이 깨졌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만화방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대일학원 재수생들과 열차 시간 기다리는 여행객이 많았지.” 지금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 노동자들과 서울역 앞 노숙자들이 단골 손님이다.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때 3시간에 500원을 입장료로 받았고, 20년 동안 네 배가 올라 지금은 2천원을 내야 한다. 그는 2년 전에 PC방으로 업종을 바꿔보려다가 2억원이 넘는 리모델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꿈을 접었다고 했다.
“이 나이 먹어 이제 뭘 하겠소.” 그는 지난해 영업을 그만두려다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꾸려간다고 말했다. 서울역 앞 노숙자들에게 그의 가게는 하루에 4천원만 내면 하룻밤 편히 묵어갈 수 있는 ‘호텔’과 같다. 7월25일, 제일만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히로시마를 상대로 때려낸 이승엽의 30호 홈런을 지켜보며 열광했다. 요미우리는 2-4로 패했고, 두런거리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협지를 베개 삼아 소파 위에 고단해진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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