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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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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월드컵을 아십니까

등록 2006-08-03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신지체장애인 월드컵에 참가한 조기호 코치와 신아재활원 선수들…대회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조국의 유니폼을 입고 태극 전사들이 뛴다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누가 뭐래도 신아재활원은 전국 1위의 축구팀이다. 1997년부터 전국장애인체전에 나가 딱 두 번 우승을 놓쳤다. 지난해에도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전국 정신지체인 축구대회와 서울시 정신지체인 축구대회에서는 같은 기간 우승을 모두 휩쓸었다. 예전에도 강팀이었지만 2001년 3월부터는 다른 팀들이 넘볼 수 없는 강팀 이상의 팀으로 성장했다. 조기호(30)씨가 신아재활원에 오면서다.

재활원에서 찾은 제2의 축구인생

조씨가 선수는 아니다. 그는 경기장 밖의 선수다. 재활원생들은 그를 ‘조 코치님’이라고 부른다. 조 코치도 한때 선수였다. 전북 익산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그의 학교는 ‘적토마’ 고정운을 배출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면서 제2의 고정운이 되고 싶은 그의 꿈도 끊어졌다. 연골판이 상해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진로가 틀어졌다. 대학에서 식품가공업을 전공했다.

그는 우연치 않게 신아재활원에서 일하면서부터 다시 전공을 되찾았다. 사무국장으로 일했지만 언제나 축구코치로 통했다. 올해부터는 아예 재활원에 스포츠재활부를 만들어 이곳을 맡고 있다. 모든 축구 선수와 감독, 팬들에게 마찬가지이듯 그도 월드컵을 앞두고 조금 들떠 보였다. 월드컵이 끝나지 않았냐고?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들 지난 7월10일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월드컵이 끝났다고 하지만 정신지체인들의 독일 월드컵은 8월26일부터 시작이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코치다.

그가 대표팀 코치에 앉는 것에 토를 다는 이는 없다.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팀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전체 대표팀 가운데 신아재활원팀 선수가 4명이나 된다. 팀의 주장이자 나이가 가장 많은 이일협(36)씨는 ‘트래핑’이 뛰어나다. ‘일반인’들도 그의 볼을 뺏긴 어렵다. 어릴 적 소년의 집에서부터 항상 공만 갖고 놀면서 발재간이 몸에 붙었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으로도 통한다. 전술 이해가 빠른 이승조(26)씨는 종합적인 기량이 가장 뛰어난 선수다. 조 코치가 가장 아끼는 눈치다. 팀내에서 홍명보와 비교되는 수비수 박기남(24)씨와 미드필더 김성원(26)씨도 신아재활원팀의 주축이다. 조 코치는 이들과 함께 8월1일부터 22일까지 대표팀 합숙훈련에 참가한다.

머릿속으로 선수들이 들떠 있을 줄 알았다. 축구선수들이 월드컵 출정식을 할라치면 기자들에 둘러싸여 얼굴에 잔뜩 힘을 준 채 비장한 각오를 뱉어내는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신지체인 대표들은 그렇지도 않았다. 이승조씨는 “좋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회 기간) 한 달이 너무 길어요”라고 짧게 말했다. 음식이 입에 안 맞고 익숙한 재활원이란 공간에서 벗어나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머리로 이들을 이해하려 들면 곤란하다. 처음엔 조 코치도 그랬다. 그는 “처음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고, 그래도 안 되면 기합을 줬어요. 저도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특수체육학과를 나왔다면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등만 돌렸죠. 하면서 이건 아니구나 싶었죠.” 그래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제야 재활원 선수들은 6개월은 걸려야 소화할 수 있는 훈련을 1~2개월 만에 해냈다. 조 코치는 “친구들을 빨리 파악하고 친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축구는 머리로만 보거나 해선 안 된다.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도 마음이 따라주어야 한다.

“잘 사는 나라가 장애인 실력도 좋아”

대표팀 선수들은 주로 정신지체 3급이다. IQ 55~75까지다. 몸은 일반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똑같이 90분 경기를 소화한다. 이들이 전술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조 코치는 “2 대 1 패스가 있는데 못해도 10번은 반복하고 100번까지 할 때도 있다. 대표팀의 경우 3급인 친구들이어서 대체로 전술을 한 번에 인지한다”고 말했다. 사실 전술은 코치와 감독의 몫이다. 그래서 조 코치는 “가르치고 요구한 전술이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제대로 될 때 우승하는 것보다 더 기쁩니다. 장애인 체육하시는 분들도 다 그런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지체인팀의 축구 실력은 중학교 축구선수의 수준이라고 한다. 일반인 축구나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실력은 축구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일본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16개국 가운데 11위를 차지했다. 조 코치는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준우승한 네덜란드팀에 대패(점수차를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할 정도)한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희한하더라고요. 잘사는 나라일수록 장애인들의 (축구) 실력도 좋아요. 고등학교, 대학교 대표선수 이상의 실력들이에요.” 정신지체인 월드컵의 4강 안에 드는 팀들은 독일·영국·네덜란드 등 유럽의 선진국들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가는데도 앞으로 20년, 그것도 열심히 달려야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부족한 우리의 관심과 지원에 대한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2002년 우리가 일본한테 6 대 0으로 졌을 때 에서 경기를 생방송으로 중계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람들이 그런 대회가 있는지조차 몰라요. 어떻게 얘기하면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죠.”
축구는 게임 이상이다. 정신지체인들의 재활을 돕는다. 선진국 정신지체인들이 축구를 잘하는 이유도, 일찍부터 재활의 한 방법으로 축구를 접했기 때문이다. 축구공을 끼고 살아온 이승조씨는 2년 전 정신과의사로부터 재판정을 받았지만, 정신지체 3급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생활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조 코치는 “축구를 하면서 주 연습상대가 조기축구회 분들입니다. 대부분 동네에서 개인사업을 합니다. 이분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덕택”이라고 말했다. 정신지체인들이 축구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축구가 공동체와의 사회통합 통로인 셈이다. 조 코치는 “한번은 친구들이 제주도에서 경기를 했어요. 거기서 관광도 하고 돌하르방 앞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들의 싸이에 올리기도 하더라고요. 장애인들이라고 무조건 못한다고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회에 융화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축구는 사회통합의 통로

신아재활원뿐만 아니라 서울 장애인들의 자랑거리인 축구팀은 곧 내리막길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원생들의 입출입이 잦지 않은 재활원의 특성상 선수들의 세대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장의 나이가 서른여섯이나 된다. 3~4년 안에 다른 팀에 절대지존의 자리를 내줘야 할 형편이다. 이번처럼 월드컵에 대표선수를 4명이나 보내는 영광도 다시 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 국제정신지체인경기연맹이 주최하는 월드컵은 이번이 네 번째다. 선수들은 지난 6월 광화문을 뜨겁게 달궜던 대표팀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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