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인생’검찰의 묵묵한 70%, 형사부 검사들의 ‘도떼기 시장’ 생활… 야근은 계속돼도 월말마다 집계되는 ‘미제 사건’ 수 줄이기 어렵네
▣ 고나무 기자 한겨레 법조팀 dokko@hani.co.kr
‘판사들도 마감인생이었다’( 2006년 6월30일 616호 참조) 기사를 보고 한 검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조직폭력을 다루는 강력검사만 나와요. 왜냐? 드라마는 현장성을 원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일하는 검사의 70∼80%는 형사부 검사죠. 이들은 검사실에 앉아서 고소인·피고소인들을 만나는 게 대부분이죠. 경찰에서 올리는 수사지휘 사건기록 검토 등이 주 업무입니다. 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사부 검사를 한 번쯤 소개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8년차 ‘형님’과 신임 검사의 대화
아차 싶었다. 전화로 통성명한 사람 모두 처음엔 기자의 이름을 ‘고남우’라고 알아들었다. 심지어 대학교 과선배인 선배는 기자가 입사한 지 1년이 지나도록 ‘고남우’인 줄 알았더랬다.

“제 이름은 남우가 아니고요…”라는 해명을 10년쯤 하다 보니 지겨워졌다. 메일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는 ‘검사’를 ‘갬사’나 ‘검새’라고 불러왔던 것은 아닐까?” 형사부 검사들의 생생한 일상과 고민을 들여다보라는 검사의 제안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서울남부지검 형사부의 8년차 검사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8년차 검사와 올 2월 갓 임관한 후배 검사의 대화 형식으로 일상을 재구성했다. 기자는 이번에도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들의 칼은 펜만큼이나 때때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양날의 칼’이었다. 게다가! 검사들도 ‘마감인생’이었다, 월말 마감….
검검사(8년차) : 사검사! 오늘 벌써 하루 평균치인 고소인 조사 4명째니 담배 한 대 피우자. 한 사무실에 검사 두 명, 수사관 두 명이 동시에 당사자 조사를 하니 ‘도떼기시장’(검사·수사관들이 동시에 당사자 조사를 해서 사무실이 시끄러울 때 종종 이 단어를 쓴다) 같아서, 원.
사검사(후배 검사) : 예, 형님(남성 검사들은 선배 검사를 보통 이렇게 부른다). 근데 제가 지금 얇은 ‘아싸’밖에 없는데요?
검검사 : 그거라도 괜찮아. 이제 월말을 넉 달째 맞으니 그럭저럭 적응할 만하지? 처음엔 매일 사건과 담당자가 각 검사별 3개월 초과 미제사건 통보를 하는 것 때문에 힘들었을 거야. 3개월 내에 처리토록 한 형사소송법을 지키기가 쉬운 게 아니지. 사검사는 이번달 월말 미제가 몇 건이야?
사검사 : 며칠 야근해서 겨우 100건으로 틀어막았습니다.
다달이 120여건 신건, 형제간 재산 다툼 난감
검검사 : 형사2부의 ㄱ검사처럼 70건으로 유지하면 좋겠지만 우리 청 검사들 평균이 80∼100건이니까 나쁘진 않네. 음주운전 사건처럼 단순한 벌금사건 등 한 달 신건(새로운 사건)의 절반을 검찰 직무대리인 5급 직원들이 가져가는데도 신건이 검사마다 다달이 120여 건씩 쏟아지니 힘들지?
사검사 : 우리 청 관할이 양천구·강서구·영등포구 등 사람도 많고 부자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재산 관련 고소사건이 많은데 아직은 형님처럼 사건 처리를 빨리 못하겠어요.
검검사 : 말 마, 8년차인 나도 재산 관련 고소 사건은 힘들어. 남남끼리 고소는 차라리 조정이라도 되지. 형제들끼리 싸움은 어쩔 수가 없어. 최근엔 회사 운영권을 놓고 형이 동생을 고소한 사건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어. 형이 큰돈을 들여서 회사를 만들어 동생에게 대표이사를 시켜놨더니 동생이 돈을 살금살금 빼내가는 거야. 형이 “너 대표이사 그만해라” 그랬더니 동생이 큰돈을 들고 튀어버렸대. 게다가 민사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덮어놓고 형사고소한 사건까지 하면, 휴∼.
사검사 : 저도 오늘 피고소인으로 오신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높여서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검검사 : 말 마. 예전엔 검사가 고함도 치고 욕도 했지만 어디 요새 그런가. 그저께는 사업 문제로 분쟁이 있는 고소인을 조사하는데 내 질문이 맘에 안 들었는지 “당신이 사법시험 합격했다고 세상을 알아?”라며 손으로 책상을 마구 치는 거야.
사검사 : 설마 반말로요?
검검사 : 반말로. 물론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부수석검사인 내게 말이야.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옆자리에 앉은 자네와 수사관들 눈도 있어서 화를 참고 점잖게 “왜 흥분하시냐”고 달랬지. 그러니 누그러지더라고. 그날 저녁 땐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줄담배를 피웠어.
사검사 : 정말 그러셨겠어요.
검검사 : ‘감정노동’보다 차라리 ‘깡치 사건’(판사들처럼 검사들도 해결하기 어렵고 복잡한 사건을 이렇게 부른다) 기록 보는 게 편할 때가 있어. 나는 수사지휘 전담검사니 9시 출근해 ㅇ경찰서 수사지휘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오전은 후딱 가는데 오후에 고소인·피고소인 조사를 하루 평균 2∼3시간씩 하는 건 정말 힘들어.
사검사 : 형님 저녁 땐 결정문 쓰셔야 되잖아요. 오늘 야근하시면 이번주 4일째네요? 주말에 형수님께 봉사는 제대로 하십니까?
검검사 : 총각인 거 자랑하냐, 사검사? 사검사 동기 중엔 ‘김장김치 합동법률사무소’ 간 친구들 있어?
사검사 : 몇 명 있어요.
검검사 : 나보다 성적 낮았던 연수원 동기들 가운데 변호사 하며 돈 잘 버는 친구들 있지. 공부 못했던 고교 동창들이 사회생활 얼추 10년 지나 나보다 세상 물정 더 많이 아는 경우도 많고. 그럴 땐 ‘내가 법률 지식 말고 아는 게 뭔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 나만의 분야를 개발할 기회가 적으니까.
사검사 : 사실 아직 전 어려서 강력부나 특수부 등 인지 부서가 화려해 보여요. 솔직히 이 부서 출신들이 인사에서 혜택도 받는 것 같고요.
기소·불기소 결정,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검검사 : 당연히 그렇게 보일 거야. 그런데 사검사, 그거 알아? 국민 실생활에 가닿는 건 전국 1400명 검사 중에 간부를 뺀 검사 900여 명의 70%를 차지하는 형사부 검사란 거 말야. 인지 수사가 화려하고 언론도 많이 타지만 검찰이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 권력’이라고 비판받는 것도 인지 수사에서 기인해. 그래서 난 최종 판단을 내리는 법원이 검찰권 행사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 나쁘게 보지 않아. 또 예전에는 특수·강력부가 우대됐지만 요새 법무부 방침은 형사부에서 실력 있는 검사를 키우자는 거야. 형사부 나갈 생각 마.
사검사 : 감동적이에요, 형님. 그런데 형님은 처음 기소·불기소 결정할 때 어떠셨어요? 전 못된 피의자들만 보면 피가 끓어서 구속 생각이 앞서요.
검검사 : 당연한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새파란 4년차 때 ㅊ지청에서 수백억원이 넘는 공사 수주와 관련된 고소 사건을 맡았어. 수백억원의 돈과 한 기업체의 운명이 왔다갔다 했던 사건을 처리하면서 ‘내가 힘을 가졌고 함부로 써선 안 되는구나’라고 처음 느꼈어. 그 뒤 기소·불기소 결정할 때마다 ‘나에겐 사건 하나에 불과하지만 당사자에겐 인생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지더라고. 참! 사검사 오늘 부장검사님 ‘멘토링’(남부지검은 매달 1∼2회 부장검사가 소속 검사별로 직접 기록을 검토하고 사건 처리 방향을 결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시는 날 아냐? 준비했어?
사검사 : 맞다! 검검사님도 며칠 뒤에 경찰서 유치장 순시죠? 한 달 중 유일하게 경찰서 가는 날이니 준비 좀 하셔야겠네요.
검검사 : 그래, 그럼 다시 ‘도떼기시장’으로 들어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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