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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의 2월이 광주의 5월에게

등록 2006-06-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상련의 정 느끼며 한국 찾은 릴리안 곤살베스 호강유 앰네스티 부위원장… 군사정권에 남편 잃은 뒤 정치적 망명… 망월동 국립묘지에 깊은 감동 받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릴리안 곤살베스 호강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국제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의 이름에는 그의 개인사가 고스란이 묻어나 있다.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 출신인 그의 결혼 전 이름은 ‘호강유’다. 중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동양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식민모국 네덜란드의 레이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가 됐으며, 1975년 수리남이 독립을 선포한 이후 귀국해 국무총리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체포된 지 이틀만에 형장의 이슬로

그가 지금 쓰고 있는 ‘곤살베스’라는 이름은 숨진 그의 남편의 성이다. 역시 변호사였던 남편 케네스 곤살베스는 당시 그와 함께 총리실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결혼해 예쁜 딸을 낳았다.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소박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한 독재자가 죽고, 다른 독재자가 새로운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을 무렵이던 1980년 2월25일 수리남에서도 쿠데타가 벌어진 것이다.

총칼로 집권한 군부는 모든 정당활동을 금지시키는 등 이제 막 싹을 틔우려는 수리남 민주의의를 뿌리까지 짓밟기 시작했다. 당시 변호사협회 간부였던 그의 남편은 군부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언론인과 노동운동가, 교회 지도자는 물론 경영계와 중소 상공인까지 군부 집권을 반대하고 나섰다. 위험한 나날이었다.

1982년 말 군사정권은 민주화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반군부 활동을 이끌어온 민주화 지도자 15명이 줄줄이 체포됐다. 그의 남편도 그해 12월7일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끌려나갔다. 포트 젤란디아 기지로 옮겨진 이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고, 체포된 지 이틀 만에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그는 남편이 숨진 뒤 1년여 만에 어린 딸과 함께 네덜란드로 정치적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지난 6월15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광주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국제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수리남에서도 그해 2월 똑같이 벌어졌지만, 아직까지 학살의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며 “광주에서 항쟁에 나섰던 이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5년 한 해 동안 지구촌에서 가장 힘있는 정부들이 (인권 문제로) 숱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들의 위선은 언론에 의해 폭로됐고, 그들의 주장은 법정에서 거부됐으며, 억압적인 정책수단은 인권운동가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5년여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으로 후퇴 일로로 치닫던 세계 인권 상황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지난 5월 말 내놓은 ‘2006년 세계 인권현황 보고서’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6월19일 오후 서울 종로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세계 인권의 현주소와 한반도의 인권 현실에 대해 물었다. 앰네스티는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197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세계 인권상황, 그래도 한걸음씩 나아진다

9·11 동시테러 뒤 세계 인권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안보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세상이 됐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했다. 재판이나 기소 절차 없이 장기간 불법 구금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는 이런 국제 인권 상황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앰네스티는 1970년대부터 고문 방지와 수감자 인권보장 활동을 벌여왔는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상황이 그 이전보다 나빠진 듯싶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같은 비중으로 국민의 인권을 고양하고 존중해야 할 의무도 있다. 둘 중 한 가지가 다른 것에 우선할 수 없다.

인권 현황 보고서에서 ‘변화의 조짐’을 언급했는데.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조차도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현장 접근조차 차단된 채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사례가 많지만 장기간에 걸친 활동을 통해 조금씩 세상은 바뀌는 법이다. 고문방지협약이나 사형제 폐지운동 같은 것도 아주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이던 일도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가면서 바뀌게 된다. 그 작은 변화를 기쁘게 받아안고 한 걸음씩 더 나아가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방법론을 두고 논쟁이 많다.

=개인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앰네스티의 공식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광주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북한과 접촉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참고로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한국에서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유럽에선 그리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송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에 있는 북한 난민, 특히 여성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 당국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깨어 비판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십수 년 동안 한국의 인권 상황은 크게 개선됐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고, 사형제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국민이 원하는 것만 만든다면 자동차를 발명하는 대신 더욱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을 개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 문제에선 정부가 국민 여론을 앞서나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국가보안법·사형제도 유지엔 유감

비정규직 문제나 양극화 현상 등으로 경제·사회권 분야에서 새로운 인권 현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민·정치적 권리가 높아진 뒤에는 경제·사회적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커졌다. 한국은 최근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이 됐다. 높은 수준의 인권 기준을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권장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적극 보호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계층에 대해선 따로 사회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에 끝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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