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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미] 부르릉! 작가와 함께 출퇴근 버스를

등록 2006-06-09 00:00 수정 2020-05-02 04:24

▣ 파주= 글 ·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버스는 사각형의 공간이다. 높은 문턱을 딛고 오르면 직사각형 의자들이 차갑게 배열돼 있고, 의자에 앉으면 B급 영화 같은 철학관 광고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미술집단 공공미술프리즘에서 일하는 최승미(24)씨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버스와 예술을 한 몸으로 부활시킨 젊은 예술가다. 요즈음 최씨는 버스야말로 문화적인 공간이라며 ‘부르릉! 작가와 함께 출퇴근 버스를!’이라는 주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하철보다 좌석버스를 좋아해요.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다가 상념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면 좋잖아요? 버스는 감성적인 장소예요. 바쁜 일상에서 여유를 즐기는 유일한 공간이지요.”

그래서 좌석버스는 일렬횡대로 앉아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봐야 하는 지하철과 다르다. 앞뒤 좌석으로 구획된 공간 배치는 개인을 발견케 해주고, 측면의 창밖으론 세상과 연결된다. 사실 도시 풍경을 감상하는 커피전문점의 1인용 창가 자리의 원조가 아니던가.

최씨가 도맡은 버스 프로젝트는 그런 공간에 예술적 향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예술적 간택을 받은 버스는 파주와 고양, 서울 등을 오가는 신성교통 좌석버스 200번과 2200번 10대. 5월부터 전시를 시작한 1차 프로젝트에서는 천편일률적인 광고가 들어가는 시트 커버를 걷고 신진작가들이 작업한 ‘예술 커버’를 씌웠다. 의자 옆에는 작가·작품 설명이 담긴 방명록을 매달아 놓았다. 승객들은 방명록의 빈터에 그림과 문장, 낙서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도시 풍경과 미술 작품에 한껏 고무된 버스 승객들이 예술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미술대학 졸업을 앞두고 방황했어요. 미술치료도 배우고 미술학원 강사도 해보고…. 그러다가 서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공미술을 발견한 거예요. 공공미술프리즘에 들어온 게 지난해 10월인데, 벌써 큰일을 맡아서 걱정이에요.”

버스 프로젝트는 네 차례 작가와 작품을 바꿔가며 10월까지 이어진다. 빈 수첩을 채운 승객들의 작품으로 특별 전시회도 열고, 최씨 등 예술가들이 안내양으로도 나선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버스도 늘어날 예정이다. 신성교통 차고지의 버스 운전사들은 최씨에게 “내 버스에는 언제 설치해줄 거냐”며 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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