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교도소에 착륙한 성교육

등록 2006-04-12 00:00 수정 2020-05-02 04:24

성범죄 예방교육 받고 사회에 나서는 천안소년교도소 가석방 예정자들…“알 만큼 안다”던 아이들도 교육 뒤 성폭력 상황에 대한 인식 바뀌어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머쓱해하던 소년들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나의 성 역사’를 말하면서 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뻐기던’ 아이들도 자신의 상처를 생생히 느낀다. 방치된 상태에서 부모나 이웃의 성행위를 목격하면서, 아이가 있건 없건 포르노를 틀어놓고 자위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심지어 성폭력이 눈앞에서 벌어지던 때부터 ‘성을 안다’고 여겨왔던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이 ‘성을 알게 된 역사’가 아니라 ‘성적으로 학대받은 역사’였다.

전체의 20% 정도가 성폭력 범죄

지난 3월28일 천안소년교도소 교육실. 가석방 예정자 13명을 상대로 한 성범죄 예방교육 현장이다. 법무부 대전보호관찰심사위원회(위원장 박용석 검사장·이하 대전심사위)가 대전지방교정청, 대전보호관찰소, 천안소년교도소와 협력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그달 말에 출소하는 소년들 중에는 성범죄로 수형생활을 한 이들도 포함돼 있다.

전국 유일의 소년교도소인 천안소년교도소 수형자의 가석방·보호관찰 심사를 담당하는 대전심사위의 성정모 상임위원(변호사)은 지난 2월 소년교도소 수형자들이 과거에 겪었던 ‘성적 학대’는 곧바로 ‘성적 가해’로 이어질 위험이 높고, 본인의 인식과 의지가 확고하지 않을 경우 재범 위험에 노출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어느 집단보다 성교육과 성범죄 예방교육이 절실하나 사실상의 ‘사각지대’에 있던 아이들을 상대로 한 첫 교육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현재 천안소년교도소에는 400명 안팎의 수형자들이 있다. 그중 20%인 90명 정도가 성폭력 범죄로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한 번의 범죄로 소년교도소까지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보호관찰소와 소년원을 들락거리다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된다. 그전의 범죄까지 고려하면 성범죄 관련 비율은 더 높아진다. 수형자 중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경험을 했다는 아이도 있고 성경험 횟수를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아이도 있다. “최근 학교 현장 등에서 성교육이 활발해졌지만, 이런 사회적 노력이 이 아이들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대전심사위 양현규 사무관은 말했다. 대부분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했고 중학교 1, 2학년부터 가출해 학교 교육에서도 비켜난 ‘거리의 아이들’로 지내온 이들이 많은 탓이다. 성범죄 전력자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로 수형된 이들도 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양 사무관은 ”만기에 가까운 시기에 가석방되는 아이들 가운데 보호관찰과 함께 야간외출 제한명령을 받는 이들도 있으나 통제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다”면서 “근본적으로 교육을 통해 책임 있는 성의식을 갖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한 번도 못 느껴본 공포다”

다섯 시간에 걸쳐 이뤄진 이날 교육은 5단계로 이뤄졌다. ‘성 바로 알기’(동의에 대한 개념 및 나의 성인식 점검), ‘성에 대한 태도 탐색’(나의 성경험 개방하기), ‘성과 생명’(영아유기 살해·생명의 탄생 비디오 시청), ‘상처 공감하기’(피해자 되보기), ‘자기 행위에 책임지기’(성범죄 행위의 구체적 상황 직면하기) 등이다. 이날 교육을 담당한 대전성폭력상담소 정인숙 교육팀장은 “10대 후반인 아이들은 ‘성과 생명’ 및 ‘피해자 되보기’에 굉장한 집중력과 공감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강의는 집단상담 형식으로 이뤄졌다. 소년들은 영아 유기 살해 비디오를 보면서 여자친구와의 많게는 세 차례 이상 되는 낙태 경험도 털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소중한 과정을 겪어 태어났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한 아이들도 있었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피해자 되보기’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다섯 살 여자아이가 돼봤다. 여자 강사 앞에서 쭈뼛대던 소년들은 사라졌다. 이들은 “두렵다” “도망치고 싶다” “아무한테도 말 못해 답답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다”라며 자발적으로 느낌을 내놓았다.

교육 전후에 실시한 설문조사는 큰 차이를 보였다. 성폭력 상황에 대한 인지도 여부를 묻는 질문에 소년들은 교육 전 주로 “성폭행(강간)이 아니다”라고 건성으로 답했으나, 교육 뒤에는 “성폭력이다” “성폭력일 것이다”에 동그라미를 치며 진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 팀장은 “한 번의 교육으로 아이들이 변할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인 교육을 받는다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성장 환경에서 이들은 쉽게 성범죄 가해자가 되거나 자기가 피해를 당한 것조차 모르고 지내다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데, 다양한 성감수성 훈련과 교육이 이뤄져 가정과 사회에서 받지 못한 자극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심사위는 이날 교육을 시작으로 매달 가석방 예정자를 상대로 성범죄 예방교육을 할 예정이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