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사실 대부분 확인됐으나 전직 노조 간부 3명과 업자들만 기소… 핵심 조직인 노민투 의장 빠지고 수사범위는 언론 보도 내용에 머물러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역시 예상대로였다. ‘칼잡이’ 검찰이 휘두른 것은 분명 솜방망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서슬 퍼런 진검도 아니었다. 검찰이 휘두른 것은 목검이었다.
“자판기나 후생관 비리가 더 클 것”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운영위원회 핵심 간부들의 비리 의혹을 기사로 옮기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의 반발이나 회사 쪽의 방해 공작은 두렵지 않았다. 그들의 비리 의혹은 너무나 분명했다. 이번 사건을 <한겨레21>에 제보한 양승민(38)씨는 “구속도 각오했다”며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을 세상에 꼭 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4월 노조가 관리하는 오토바이 수리점 경영권을 따내기 위해 친구 강아무개(38)씨와 함께 2002년부터 노조운영위 간부 김아무개(42)씨와 백아무개씨 등에게 억대의 뇌물을 건넸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씨, 백씨 등과의 금전 관계를 보여주는 통장 원본과 무통장 입금표, 노조 간부들의 도움을 받아 조작한 서류 뭉치와 조작에 참고한 경쟁업체들의 입찰 서류들을 <한겨레21>에 제공했다. 증거는 명백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인 이갑용 울산 동구청장은 “문제는 검찰”이라고 말했다. “증거가 명백한 만큼 검찰이 사건을 유야무야하지는 못할 겁니다. 문제는 검찰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느냐인데, 글쎄요.”
결국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울산지검은 3월24일 전직 노조 간부 김씨 등 3명과 이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양씨를 포함한 업자 3명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현대중공업 어용 노조의 핵심 조직인 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이하 노민투) 의장 백아무개씨는 기소되지 않았다. 이 구청장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확인하는 수준에서 수사가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주변에서는 “노조가 관리하는 자판기나 후생관 쪽의 비리가 더 클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검찰 수사는 그 이상 한 뼘도 나가지 않았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한겨레21>의 보도 내용은 검찰 수사에서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노민투 회원인 김씨는 “2003년경 실시되는 현대중공업 노조 위탁운영 사업체 입찰에서 강씨로부터는 ‘중앙오토바이 수리점’, 양씨로부터는 ‘플랜트 오토바이 수리점’의 운영권을 낙찰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아오던 중, 강씨로부터는 1억1천만원, 양씨로부터는 9466만원을 취득했다”고 적었다.
이갑용 구청장 “결과적으로 노조 비호”
검찰은 또 “노조 핵심 간부들이 강씨와 양씨가 오토바이 수리점 낙찰을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업체들의 입찰 서류를 미리 빼내 제공했다”는 양씨의 증언도 채택했다. 서류를 빼낸 사람은 당시 노조 후생복지부장을 지냈던 최아무개(48)씨였다. 검찰은 “최씨가 노조에서 보관 중인 ‘2003년 위탁업체 입찰심사 내용’ ‘배점 기준표’ 등을 빼내 (중략) 강씨와 양씨가 최저가 또는 최적의 입찰 조건에 부합될 수 있도록 입찰심사 기준 등을 설명하면서 입찰가격 조견표 등의 가액을 수정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갑용 구청장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과 함께 “검찰이 이번 수사를 최소한의 범위로 축소해 결과적으로 어용인 현대중공업 노조를 비호하고 있다”며 4월10일 울산시청 기자실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검찰이 전·현직 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해 구조화된 노조 비리를 뿌리 뽑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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