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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영] 새만금 때문에 출산을 거부한다?

등록 2006-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안 낳을 거예요.”

장지영(33)씨는 주위에서 애를 왜 낳지 않냐고 하면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그가 말하는 ‘이것’은 새만금이다.
지난 3월16일 새만금 사업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는 순간 그는 새만금에 있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올라가 있던 친구가 전화로 소식을 알려왔다.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어요. 새만금 운동을 하면서 세 번 절망했는데, 이번엔 완전히 (방조제) 막히니까 가장 절망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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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가 2001년 5월25일 민관합동공동조사단의 조사 이후 논란 속에서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절망했고, 지난해 삼보일배 뒤 4공구의 물막이 공사를 몸으로 막아내는 과정에서 찬성하는 주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끌려나왔을 때 두 번째로 절망했다.

장씨는 새만금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묻자, “잘 몰랐는데 주위에서 제가 새만금을 제 아기처럼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요. 그래서 4공구 투쟁 뒤 심하게 몸앓이를 했나 봐요”라고 말했다.

새만금은 그의 10살짜리 아이다. 시화호 문제를 다루던 1997년 말에 새만금을 ‘낳았다’. 2001년 5월 서울 합정동 절두산 성지 절벽에 달라붙어 “새만금의 목숨을 끊지 마라”며 5시간 동안 자신의 목숨을 내건 적도 있었다.

그는 절망에서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지난해 말 환경운동연합에서 나와 ‘새만금 화해와 상생을 위한 국민회의’의 정책기획 부장을 맡으며 아예 부안으로 둥지를 옮겨 튼 것도 이 때문이다.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새만금 반대를 포함한 개발 문제를 지역 주민들이 찬성하는 이상 아무리 환경단체가 날고 뛴다고 해도 개발 계획을 막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핵폐기장 문제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1999년 환경운동연합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명호(37)씨를 포함해 뜻이 맞는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이라는 환경연구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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