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의 핵심전력이자 독도 방위의 최일선, 울릉도 레이더 기지를 가다
바람 불어 케이블카 운행 중단되면 산정상에 고립되기도 하는 고된 일상
▣ 울릉도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봄기운이 완연한 2007년 5월 어느 날 울릉도 공군레이더 기지. 장거리 레이더(AN/FPS-117 E1)가 잡아낸 ‘항적’(비행기 발자취)을 3시간째 살펴보는 고역을 참지 못해 하품을 하던 김화중 중위가 화들짝 놀라 자세를 고쳐잡는다. 스코프(레이더 화면)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잡힌 것. 화면에 나타난 물체는 4대 정도로 비행 1개 편대다.
일본 전투기 출격 순간부터 감시
화면의 물체는 러시아 쪽도, 북한 쪽도 아니다. 일본 항공자위대 산하 서부항공관제사령부 가수가(春日) 기지 쪽이다. 가끔 독도 쪽을 향해 접근하는 ‘P-3 대잠 초계기’(잠수함 공격기)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대잠 초계기 4대가 동시에 뜨는 경우는 드물다. 레이더상 물체는 계속 서진해 독도 쪽으로 접근하면서 한국 공군이 설정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가까워지고 있다.
김 중위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가수가쪽 기지들에는 F-15J 이글과 F-4 팬텀이 배치돼 있다. F-15J는 방공 전용 전투기로 지상 타격용은 아니다. 그렇지만 F-4 팬텀은 지상 타격이 가능하다. 어느 쪽일까? F-4 팬텀이라면 ‘함’(HARM·레이더 파괴 공대지 미사일)도 운용할 수 있는데….’ 이 순간 경기도 오산에 있는 공군작전사령부도 동시에 부산해진다. 울릉도 기지가 잡아낸 정보는 광케이블로 연결된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통해 공군 오산기지의 제1중앙방공관제센터(MCRC)와 대구의 제2MCRC로 실시간 전달된다.
공군 작전사령부는 막 작전 운용에 돌입한 대구 공군기지의 F-15K를 비상 발진시켰다. 긴급 발진한 한국 공군 전투기가 북동 방향으로 급히 날아간다. F-15K가 독도로 접근하는 동안 오산 작전사령부는 조종사에게 시시각각 접근하는 일본 비행기의 정보를 전달한다. 작전사령부는 최근 배치한 F-15K의 위용을 일본 쪽에 보일 겸 최대한 가까이 일본 항공기에 접근해 무장 상황까지 살펴보라고 조종사에게 지시했다.
10분쯤 지나 대구 기지에서 이륙한 F-15K와 일본 자위대 항공기가 독도 동쪽 50km 지점 상공에서 만났다. 상대 기종은 F-4팬텀이다. 한국 조종사는 최대한 접근해 무장 파일런(날개 아래 미사일이나 폭탄을 장착할 수 있도록 매단 장치)을 살폈다. 레이더 공격 미사일이 달려 있다. 한국 조종사는 위협 비행을 통해 F-4팬텀을 KADIZ 바깥으로 멀리 몰아냈다. 한-일 공군의 조우는 이렇게 끝났고, 이날 확보된 정보는 신속하게 분석돼 예하 부대에 전파됐다.
가상 시나리오에서처럼 독도 문제가 군사적 갈등으로 번져 한-일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면, 최일선은 어디일까? 독도를 지키는 경찰경비 병력일까? 독도 경비병이 관찰할 수 있는 거리는 10여km에 지나지 않아 상징적인 의미만을 띤다. 이 때문에 대일본 전선의 실질적인 최일선은 울릉도 공군 레이더 기지가 첫손에 꼽힌다. 일본은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 울릉도 레이더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전폭기를 보내 미사일로 레이더 기지를 무력화해야 독도 점령 작전을 벌일 수 있다.
환경문제로 논란 겪은 기지 건설
오산 공군기지에서 물자를 수송하는 공군 헬기를 얻어타고 울릉도 레이더 기지를 관할하는 나리분지의 공군 부대에 도착한 건 3월9일 오전. 레이더 장비가 설치된 해발 968m의 천두산에는 곳곳에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안개가 자욱해 산꼭대기의 레이더 기지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산 아래 부대 본부와 산꼭대기 레이더 기지를 잇는 케이블카의 줄도 중간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 2002년) 울릉도에 이 최신형 레이더 장비가 설치되기 전 동해 쪽 방공 감시는 태백산 등 내륙 곳곳에 설치된 레이더 장치나 이동형 레이더에 맡겨져 있었다. 이 때문에 감시의 폭은 독도 인근에 설정된 KADIZ에 이르는 수준이었고, 일본 정찰기가 독도로 거의 접근한 뒤에야 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레이더 장치를 통한 감시망이 일본 서부 지역까지 미쳐 출발 때부터 줄곧 감시망에 놓인다.”(오연군 공군제30방공관제단장) 지난해 3월16일 일본 정찰기가 독도 인근 KADIZ 10마일 지점까지 접근했을 때 공군 당국이 즉각 대응에 나서 경고 방송을 통해 회항시킬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바탕이 깔려 있었다.
서해 쪽을 감시하는 백령도 레이더 기지와 함께 공군의 ‘두 눈’을 이루는 핵심 시설인 울릉도 레이더 기지가 설치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겪었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셌다. 레이더 기지 건설로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울릉도의 환경이 망가질 수밖에 없어 반발은 당연했다. 레이더 장비가 설치된 산꼭대기 ‘작전구역’과 대대본부인 나리분지의 ‘행정구역’ 사이에 삭도기(케이블카)를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삭도기 또한 산의 경관을 해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애초 구상했던 도로 개설이나 모노레일 설치보다는 나았다고 한다. 다른 부대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삭도기 출퇴근’이란 이채로운 풍경이 나타난 배경이다.
작전구역과 행정구역을 잇는 1.3km 구간에 설치된 삭도기의 운행 시간은 20분 정도. 삭도기 설치 구간에는 거대한 철탑 2개를 두어 케이블을 떠받치도록 했다. 삭도기는 보통 아침, 저녁 이렇게 하루 두 번씩 운행하면서 상번(출근자)과 하번(퇴근자)들을 실어나른다.
삭도기 운행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풍속이다. 풍속이 20노트를 넘어서면 운행이 금지된다. 바람이 거세게 불 경우 삭도기가 흔들려 철탑에 부딪혀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 기지를 찾은 날 오후 삭도기 운행을 시도했지만, 바람 때문에 1번 철탑에 못 미쳐 중도에 되돌아와야 했다. 이처럼 삭도기 운행이 자주 제한됨에 따라 산꼭대기 근무조는 고립되는 수가 왕왕 있다. 지난해에는 운행 제한이 모두 57일, 고립된 날짜를 모두 합하면 44일이었다. 한 번에 최장 7일 동안 고립된 적도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레이더 장비가 설치된 산꼭대기에는 열흘치 비상식량을 늘 비치해둔다. 20~30명에 이르는 근무자들이 교대로 잠을 잘 수 있는 내무반도 마련돼 있다.
가족 투표 거쳐 자원했다
울릉도 부대가 공군의 핵심 전력으로 꼽혀 근무를 자원하는 이들이 많지만, 가족이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게 바로 이런 악조건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고립되면 가족과 며칠씩 떨어져 있어야 한다. 오지인 울릉도에서 아이들 교육 문제도 늘 고민거리다. 울릉도 부대 근무를 자원했을 때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기는 부대 책임자인 한만희(42) 소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소령은 올 1월 대대장으로 취임하기 전 울릉도 근무를 자원했을 때 가족 투표를 거쳐야 했다며 웃었다.
울릉도 부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난관을 거쳤지만, 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나리마을 주민들과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 소령은 전했다. 그 상징적인 모습은 부대 목욕탕을 마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이용하고, 부대에서 확보한 미니버스 2대로 마을 아이들 21명(초등학생 14명, 유치원생 7명)의 등·하교를 돕는 일이다. 이 아이들 중에는 한 소령의 자녀 셋도 포함돼 있다. 마을에서 천부초등학교까지는 5km에 이르는데다 꼬불꼬불한 산길이어서 어른 걸음으로도 1시간은 족히 걸린다. 나리마을을 둘러싼 산마루를 넘어 초등학교가 있다는 천부리로 넘어가는 길은 대관령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길만큼이나 가파르고 험했다. 나리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서자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케이블카 길이 천두산의 경관을 가로막았다. 국토도 지켜야 하고, 환경도 지켜야 하는 고민스런 모습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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