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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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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난자의 인권을 되찾겠다”

등록 2006-01-11 00:00 수정 2020-05-03 04:24

난자 기증 후유증을 고발한 위씨,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에 뛰어들 계획
“미혼여성 기증자들의 고통에 책임을 묻고 ‘여럿이 함께’ 풀어갈 것”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연구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라면서 “난치병 환자 체세포 복제기술 실용화의 관건은 난자 확보”라던 배아 줄기세포 전도사의 메시지는 ‘감언이설’이었을 뿐이다. ‘바이오 강국’이라는 장밋빛 미래도 속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에 관한 과학저널 <사이언스> 논문은 공식 철회되는 것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줄기세포에 새긴 희망의 흔적 지우기가 논문 철회로 마무리될 일은 아니다. 미혼여성으로 지난해 2월5일 난자 기증을 위해 미즈메디병원 수술대에 올랐던 위아무개(27)씨( <u><한겨레21> 591호 초점 ‘성스러운 여인이 신음한다’</u> )의 진짜 ‘희망찾기’는 첫걸음을 내디녔을 뿐이다.

국가 배상 주장하는 여성단체들

한동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황 교수팀의 ‘난자 의혹’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 32개 여성단체는 지난 1월4일 한국프레스센터에 있는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난자의 인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황 교수팀의 난자 의혹 진상 규명 △범법 행위자 엄정 처벌 △난자 기증 후유증 여성에 대한 국가 배상 등을 주장했다. 이날 여성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지금까지 논란의 핵심은 논문 조작과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 원천기술의 보유 여부에 집중됐을 뿐 난자의 사용과 관련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돼왔다”고 지적하며, “이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난자, 여성의 몸은 얼마든지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난자 기증 여성의 20%가량이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내가 미즈메디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쫓기듯 나올 수밖에 없었듯이 후유증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미혼으로서 불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실제로 위씨는 한의원과 산부인과 등지를 오가는 동안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동네 산부인과 의사의 권유로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받았다. 그때 심정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삶에 대한 체념”이었는데 결과는 괜찮았다. 바이오 강국도 좋고 난치병 치료도 중요하다 해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아무리 난자 확보가 관건이어도 산부인과 의료진이 거리낌 없이 미혼여성의 질을 통한 시술을 감행할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한겨레21>에 난자 기증 사실을 밝혔을 때만 해도 위씨는 후유증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책임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생명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이용의 중단을 명하거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38조가 발효된 뒤에 난자 기증에 나선 것을 생각하면 관계당국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법 발효 뒤에도 연구용 난자는 줄곧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더구나 난자 기증 여성들이 과배란 증후군으로 고통을 겪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증언을 하는데도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위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더 이상 뒷모습만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난자 기증을 하려고 수술대에 오른 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데서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지난 1월4일 여성단체의 기자회견 때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위씨는 기자회견장을 찾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부모님은 내가 난자를 기증한 사실을 모른다. 이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으셨는데 과배란 증후군을 말씀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젠 부모님께 난자 기증 사실을 털어놓으려고 한다. 그런 다음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는 여성이 나오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안 교수 안타깝지만 책임은 따져야”

아무리 위씨가 얼굴을 숨겨도 알아보는 사람은 있었다. 황 교수팀에 관련된 사람은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한 미혼여성을 ‘천사’라 칭했기에 위씨의 한마디를 예사롭게 여길 수 없었을 것이다. 위씨는 지난 1월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황 교수로부터 위씨를 소개받아 난자 기증 동의서를 작성할 때 옆에 있었고, 후유증으로 미즈메디병원에 입원하려다 ‘퇴짜’를 맞을 상황에서 도움을 주었던 서울대 안규리 교수였다. 위씨 관련 언론 보도에 안 교수가 등장한 때문이었다. “안 교수는 일부 대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자신이 나를 두 번이나 인터뷰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서류 처리를 위해 약식으로 이뤄진 임상 설명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말로 안 교수는 어떤 식으로든 위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무료 진료를 제안하면서 “이건 내가 잘못해서 도우려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진정성을 의심할 까닭은 없었다. 드물게 임상 전문의로 황 교수팀에 참여한 안 교수가 자발적 기증자를 만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난자 기증에 관련된 인터뷰나 서약서 등 프로토콜을 한양대 정규원 교수(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 겸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심의원회 위원)가 작성한 것을 생각하면 안 교수가 난자 기증 과정에서 맡은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교수가 위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혼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할 불임 같은 잠재적 위험을 ‘소홀히’ 여긴 것은 무슨 까닭에서였을까.

“안 교수가 언제든 병원으로 찾아오라는 말조차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 보면 안 교수는 논문 조작의 공모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책임은 정확히 따져야 한다. 이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난자 기증 문제를 풀어나갈 때가 아니다.” 위씨가 안 교수의 진료 제안을 거절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위씨는 난자를 기증한 미혼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여럿이 함께 풀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황 교수팀이 배아 줄기세포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1620여 개의 난자 가운데 미혼여성의 것이 얼마나 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국제기준보다 엄격했다는 연구용 난자 제공의 기준이 궁금할 뿐이다.

미련만 남은 접시 세트…

아주 소박한 마음에서 ‘정성’을 보태려 아무도 모르게 감행한 난자 기증. 아직도 0.01%의 치료 가능성을 기대하는 난치병 환자들을 생각하면 위씨의 마음이 편치 않다. 설령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를 포기할 수 없다 해도 이젠 여성의 희생을 담보로 이뤄지는 성과를 마냥 기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자 기증의 ABC를 마련한 상태에서 난치병 극복을 거론해야 한다는 게 위씨의 생각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토대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난자 기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엔 기증자를 선별하는 항목에서 기증 뒤 부작용 치료 대책까지 포함해야 한다. 임신이나 출산 경험이 없는 미혼여성의 기증은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위씨는 밥상을 차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퇴원 뒤에도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해 2월 하순 황 교수로부터 받은 접시 세트 때문이다. 당시는 동생들과 함께 살았던 터라 접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6월 ‘독립’ 생활에 들어가면서 식기가 필요해 선물로 받은 접시를 사용했다. 그땐 황 교수가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논문으로 ‘세계적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접시에 무엇인가를 담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황 교수의 거짓말에 실망할 대로 실망하다 보니 접시가 ‘계륵’ 같은 게 되고 말았다. 난자 29개와 건강을 ‘버린’ 대가로 여겨지는 탓이다. “가끔 딴 사람에게 줘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미련이 아직도 조금 남았는지… 일단 사용하지 않고 넣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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