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정부 지원 받아 ‘사장님’ 돼도 힘겨운 몸부림은 여전
빈곤층을 안정적 노동자로 독립시키지 않고 냉혹한 시장에 떠미는 자활 사업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창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가끔씩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이른바 ‘자활 성공’ 사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고 실제는 고단하다. 경제활동 인구 20~30명당 1명꼴로 점포를 가지고 있고, 한 해 50만 개 점포가 새로 문을 열고, 40만 개가 문을 닫는 ‘자영업 포화경제’에서 빈곤층 또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독립하면 직접적 지원 끊겨
지난 9월 수도권의 한 아파트촌에서 세탁소를 차린 김철수(가명·50)씨. 그는 15년간 다리미를 잡은 ‘세탁 베테랑’이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자활을 지원하는 이 지역 자활후견기관은 김씨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김씨와 세탁소 창업을 도운 기관 관계자 7명의 말이다.
“처음엔 영업 중인 세탁소 매장을 넘겨받아 개업하기로 했어요. 보증금 1천만원, 권리금 2천만원에 넘겨받기로 했는데, 관할 구청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죠. 권리금은 법률상 존재하지 않는 거래이기 때문에 줄 수 없대요.”
어쩔 수 없이 빈 점포를 찾았다. 그래서 찾은 게 전세금 3천만원의 아파트 단지 상가 자리였다. 그런데 이번에 주변 세탁소 상인들이 문제였다. 관할 동의 35개 세탁소 주인들이 “우리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무슨 또 신규 창업이냐”며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활사업 때문에 민간 세탁소들만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였다.
“그렇게까지 민원을 넣을 줄은 몰랐어요. 100m 떨어진 가장 가까운 세탁소의 일감은 우리가 받더라도 그대로 돌려준다고까지 했는데….”
김씨는 사흘 만에 다리미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립’의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동네 세탁소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11월 초 문을 다시 열었다. 동네 근처의 일감을 받으면 폐업하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나서였다.
자활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낯선 용어다. 사전 풀이 그대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국가가 빈곤층의 자립을 위해, 구체적으로는 최저생계비를 지원받는 빈곤층의 ‘탈수급’을 위해,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창업하도록 각종 지원을 해주는 행위다.
자활 사업은 지자체와 자활후견기관 두 군데서 이뤄진다. 지자체는 보통 거리 청소 등 ‘공공근로’라고 불리는 근로유지형 자활노동을 담당한다. 자활후견기관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해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는 자활지원기관이다. 자활후견기관은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최저생계비 120% 이하)들을 간병 등 공공서비스의 일자리에 투입(사회적 일자리형)하거나 그룹별로 사업단을 만들어 창업을 준비(시장진입형)토록 한다.
그런데 자영업 포화경제에서 문제는 바로 시장진입형 일자리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자활후견기관은 1년 안에 자활 노동자의 30%를 시장진입형 사업에 참가시켜야 한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시장진입형 사업은 창업을 위한 준비 사업단이다. 시장진입형 사업단에 속한 노동자들은 3년 안에 독립해 나가야 한다. 일단 독립하면 ‘자활공동체’로 인증됨과 동시에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끊긴다. 냉혹한 시장에서 홀로 서야 하는 것이다. 2001년부터 2005년 6월까지 580개의 업체가 시장으로 내몰렸다.
최준 자활후견기관협회 정책기획국장은 “정부가 빈곤층을 창업 열풍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 정책이 빈곤층을 전문적 지식이나 서비스를 연마시켜 ‘안정적 노동자’로 독립하게 만들기보다는 ‘사장님’을 만드는 손쉬운 방식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을 공부하려면 5~6년 걸리는데. 3년은 너무 짧아요. 전문 디자이너가 있는 다른 업체와 경쟁이 안 되죠. 그래서 지금은 애견의류는 그만두고 아동복 하청을 받아요.”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최정자(가명·53)와 6명의 주부는 근근이 미싱 사업단(시장진입형)을 이어가고 있다. 틈새시장이라던 ‘애견의류’의 전망을 보고 3년 전에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자본주의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경기로 동대문의 애견의류 상가가 망해가는 판에 아마추어들이 모인 업체가 살아날 리 없었다. 지금은 아동복에 덧붙이는 모자를 만드는데, 600개를 만들어야 30만원을 번다. 이 정도의 수량을 만들려면 이틀을 꼬박 새야 한다.
최씨는 “평일에 잔업하고 토요일 특근까지 해야 한달 급여 80만~90만원이 떨어진다”며 “임대료 등 한 달 운영비만 500만원이 드는데, 만약 자활공동체로 독립하면 운영비조차 지원받지 못해 수지 타산을 맞추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사업단은 법인명을 바꾸는 편법으로 ‘자활공동체 독립’을 피하고 있다.
580개 업체중 243개 문 닫아
최씨 같은 자활노동자들이 독립을 꺼리는 이유는 정작 시장에 나가도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활후견기관협회가 200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설립된 자활공동체 등 수급자들이 창업한 업체를 조사했더니, 총 580개 업체 가운데 243개가 사업을 접었다. 열 집 가운데 네 집이 문을 닫은 꼴이다. 일반 자영업체 폐업률과 비교해볼 때 낮은 수치지만, 운영자들이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사장들’임을 볼 때 그리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최준 국장은 자활노동자들이 창업으로 몰리는 데에 대해 “정부가 자활노동자들을 거시적인 노동정책 틀로 바라보지 않고 시혜적인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국가 예산이 들더라도 사회의 공공서비스를 확대해 이를 중심으로 자활노동자들을 숙련·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의견은 다르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은 국가 예산의 급격한 증액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신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활후견기관이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시장진입형 사업단의 독립 실적은 자활후견기관 종합평가 때 평가할 수 있으나, 실제 자활후견기관의 존폐에 위협을 가할 정도의 사항은 아니다”며 “이는 강제사항이라기보다는 권장사항”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근처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이미숙(가명·43)씨도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3년차 사장님’이다. 처음엔 4명이 함께 했지만 이젠 2명밖에 안 남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성공사례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해주는 ‘사회 정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내 가게가 있으니까 힘들어도 하는 거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셋도 있고…. 애들 보고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 ||||
2000년 10월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복지정책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국민이 ‘노동할 의지’만 있다면, 국가가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건부 급여’ 개념으로, 노동 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일해야 최저생계비를 지원받는다. 일하지 않고 생계비를 받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자활후견기관은 바로 노동할 수 있는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의 노동후견기관이다. 전국 242곳에서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된다. 자활후견기관은 산하에 몇 개의 사업단을 만들어 수급자들을 그 안에서 일하도록 하고, 3년 안에 자활공동체로 독립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현재 242개 자활후견기관 아래에서 1500여 개 사업단이 활동 중이다.
지난해 사회적 일자리형과 시장진입형 자활근로에 각각 1만4111명과 5480명이 참가했다. 간병·집수리·청소·폐자원·음식물 재활용 사업 등이 주요 업종이다. 자활사업 예산도 2000년 779억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2083억원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자활근로를 통해 ‘빈곤층’을 탈출한 비율은 매우 낮다. 2001년 7101명이 수급자에서 탈피해 10%대였던 탈수급률은 지난해 4131명이 수급자에서 탈피해 5%대로 낮아졌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내일부터 무거운 ‘습설’ 대설특보 수준…아침 기온 10도 뚝

롯데백화점 “손님 그런 복장 출입 안 됩니다, ‘노조 조끼’ 벗으세요”

‘대장동 항소 포기 반발’ 검사장들 좌천…김창진·박현철 사표
![[영상] “지지대 없었다”…광주도서관 공사장 붕괴 1명 사망, 3명 매몰 [영상] “지지대 없었다”…광주도서관 공사장 붕괴 1명 사망, 3명 매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11/53_17654395228832_4017654395036325.jpg)
[영상] “지지대 없었다”…광주도서관 공사장 붕괴 1명 사망, 3명 매몰
![그래, 다 까자! [그림판] 그래, 다 까자!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10/20251210503747.jpg)
그래, 다 까자! [그림판]

뜨끈한 온천욕 뒤 막국수 한 그릇, 인생은 아름다워

서울교육청 “2033학년도 내신·수능 절대평가…2040 수능 폐지”

코스트코 ‘조립 PC’ 완판…배경엔 가성비 더해 AI 있었네

“갑자기 5초 만에 무너졌다” 광주서 또 붕괴사고…2명 사망·2명 매몰

국방부, ‘윤석열 옹호’ 채일 국방홍보원장 해임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 [단독] ‘세운4구역 설계 수의계약’ 희림 “시간 아끼려고”… 법 절차 생략 시인](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02/2025120250367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