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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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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은 알바 포기 중!

등록 2005-08-19 00:00 수정 2020-05-03 04:24

570호 ‘의원님은 알바 중’ 에 자극받고 변호사·기업체 임원 사직하는 의원들
일부는 국회법의 ‘상임위 관련성’ 안걸리면 겸직 계속하겠다는 뜻 비치기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의원님은 알바중!’이란 <한겨레21> 표지 기사(제570호·발행일 8월2일) 의 반향은 꽤나 컸다. 많은 매체들이 <한겨레21>을 뒤따라 보도했다. 기사가 나가자 국회의원들의 갖가지 항의와 하소연도 이어졌다. 또 언론의 문제제기와 비판을 받아들여 겸직을 포기하는 의원들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변호사 의원들 “수임건수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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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이 의원겸직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도하자, <오마이뉴스>, MBC ,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조선일보> 등이 잇따라 <한겨레21>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겨레21>은 2006년 6월부터 국회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의원들의 겸직 실태가 어떤지를 추적하고, 개정 국회법의 빈틈이 뭔지를 따져보자는 취지에서 기사를 기획했다. 여기에 취재 과정에서 이제껏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변호사 겸직 의원들의 사건수임 건수와 내역을 밝혀낼 수 있었다. 아울러 단순한 겸직 현황 소개를 넘어서 의원들이 어떤 대가를 받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이 같은 보도 뒤 의원들의 거의 공통된 첫반응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변호사 의원들의 불만이 가장 컸다. 주로 법무법인(로펌) 대표를 맡고 있거나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 의원들의 사건 수임건수에 관한 항의였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로펌 소속 변호사라 법인이 맡은 사건에 자동으로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수임건수를 소속 변호사 수로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법사위 소속은 아니지만 다른 변호사 겸직 의원은 “내가 잘못해서 다 이렇게 됐지만, 법무법인 소속인 점을 감안할 때 2분의 1정도로 사건 수임건수를 나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건 수임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어차피 의뢰인들은 로펌에 소속된 의원 변호사의 이름을 보고 사건을 맡기기 마련이다. 변호인단에 의원 변호사의 이름이 들어간 이상 그 사건은 자신이 수임한 사건에 포함시키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의원 변호사들은 법인 소속 다른 변호사들과 다 함께 사건을 맡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이나 또는 두세명씩 짝을 지어 따로 사건을 맡은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아울러 의원들이 공동으로 맡은 사건은 수익을 공동으로 배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의원들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크다.
로펌에 소속돼 있기는 하지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는 의원들도 있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동료 의원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것 말고는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며 억울해 했다. 법사위 소속이 아닌 다른 변호사 의원은 “한 달에 한 번씩 로펌에 나가 겨우 한 두 시간씩 자리를 지켰던 것 말고는 법인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법정에 나가 변론한 적도 없는데 ….”라고 해명했다. 몇몇 의원들을 빼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사건 수임 건수와 수익이 오히려 줄었다는 사실이 기사에서 강조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삼정KPMG 고문·심로악기 회장직 내놔

하지만 이러한 불만과 하소연을 넘어서 결과적으로 겸직을 해소하겠다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법사위 소속 한 변호사 의원은 이번 기회에 아예 법무법인을 청산할지를 놓고 고민중이라고 의원실의 보좌관이 전했다.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실은 “하루 아침에 할 순 없겠지만, 개정 국회법 취지에 맞게 사무실을 정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의원겸직 실태를 취재하면서부터 나타났다. 부산에서 법무법인 대표를 맡은 조성래 의원은 “문제가 된다면 휴업하겠다”고 취재 중인 <한겨레21>에 밝힌 바 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을 금지한 개정 국회법의 시행에 맞춰 국회 법사위 소속 변호사 의원들이 휴·폐업을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의 상임위와 관련 없이 변호사 휴업을 하겠다는 의원들도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실은 “당선된 뒤 법무법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법인에서 사건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을 몰랐다. 법인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고 있지 않지만, 이 기회에 법무법인에서 이름을 아예 빼는 방안(휴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전문직 출신의 일부 의원들도 언론의 잇따른 의원겸직 비판에 겸직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 가운데 하나인 삼정KPMG의 고문을 맡았던 신국환 의원은 <한겨레21> 보도 뒤 고문직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소디프신소재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사쪽 입장도 있고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라 쉽게 그만둘 수 없다.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의 기준이 뭔지,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본 뒤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개정 국회법이 시행되기에 앞서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 개념을 명확히 가다듬고, 이를 어겼을 경우 어떻게 한다는 징계의 명시화 등 후속 작업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상임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보도가 나간 뒤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사를 밝힌 의원도 있다. ㈜심로악기 회장을 맡은 심재엽 한나라당 의원은 회장직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위 소속인 그는 “<한겨레21>이 지적한 것이 틀리지 않다. 법에 관계 없이 회사에서 맡은 직책을 그만두겠다. 국민의 세금을 녹으로 받는 입장에서 밤과 낮, 회기 비회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겸직 국회의원 140명(7월5일 현재) 가운데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한 겸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원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위 소속이면서 사학재단 이사장 등 9개직을 겸직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쪽은 “기본적으로 보수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개정된 국회법을 따르더라도 사학재단 이사장직 겸직은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재 교육위에서 내년에 다른 상임위로 바꾸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밝혀, 의원 겸직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겸직을 유지하겠다는 많은 의원들의 생각은 의원겸직을 금지해야 한다고 보는 다수 시민들의 생각과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의원들은 또 자신들이 지키면 된다는 ‘법’이 구멍이 많은 허술한 법이라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구멍많은 국회법, 손질 고민해야

앞으로 모호한 표현으로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의 개념을 좀 더 명확히 하는 등 개정된 국회법의 빈틈을 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의원 겸직 문제를 상임위를 넘어서 영리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할 것인지, 겸직의 허용 폭을 국무위원 등으로 확대할 것인지 등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겸직철회 신고를 할지는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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