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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아르바이트’ 열전!

등록 2005-07-26 15:00 수정 2020-05-02 19:24

변호사·의사·회계사·기업체 임원 등 겸직하는 의원이 46%에 이르러
‘본업’에 충실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의정활동 공공성 해칠 위험 크다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박수진 인턴기자 lenne21@freechal.com

“양승조 변호사님과 직접 상담할 수 있나요?”
“네, 지금은 잠깐 나가셨는데요. 금방 들어오실 겁니다.”
“내일 사무실에 가면 변호사님 만나뵙고 상담이 가능하겠죠?” “그럼요. 내일 천안으로 오시겠습니까?”
“그럼, 어느 변호사님이 제 사건을 맡아주시나요?”
“양 변호사님이 직접 맡아주실 겁니다.”

변호사 겸직 의원들 2400건 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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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지난 7월18일 양승조 열린우리당 의원의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의원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은 의뢰인의 친족간 재산다툼 사건을 의원이 직접 맡아서 처리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취재진에게 굳이 감추지 않았다. 양 의원뿐 아니다. 다른 의원의 변호사 사무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의원이 사건을 직접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상 법정 출두는 다른 변호사가 하지만, 자료 준비나 조언 등 모든 과정에서 (의원이) 도와주실 겁니다.”(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 변호사 사무실)

“일단 내일 나오셔서 다른 변호사님과 상담하시고 나서 부족하다 싶으시면 의원님이 추가로 상담해드릴 겁니다. 합동변호사 사무실이기 때문에 사건을 맡기시면 두 분이 상의하셔서 사건을 해결하시거든요.”(한나라당 정종복 의원의 변호사 사무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변호사 겸직 의원들의 사건 수임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21>이 인터넷 법률 서비스업체인 ‘로마켓’(대표이사 최이교)이 대법원 소송 사건 정보 사이트에서 뽑아낸 변호사 겸직 의원 34명의 사건 수임 현황을 받아 분석했더니,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모두 24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한 사람이 70건의 사건을 맡은 셈이다. 지난해 4·15 총선 직후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 때부터 따지면 2993건으로 늘어난다. 의원 변호사의 사건 수임 내역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53명의 의원 변호사 가운데 동명이인의 변호사가 존재하거나 일부 사건을 맡지 않은 의원들은 대상에서 뺐다.

17대 임기를 시작한 뒤 지난 2월까지 제일 많은 사건을 수임한 의원 변호사는 조성래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조 의원은 자신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부산의 법무법인 동래가 맡은 769건의 사건에 담당변호사로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같은 당의 최용규 의원 672건, 최재천 의원 180건,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 165건, 자민련의 김학원 의원 78건 순이었다. 법무법인 미래의 구성원 변호사로 있는 최용규 의원이 맡은 사건은 대부분 한국자산관리공사나 한국주택관리공사를 변론하는 양수금 소송 사건이다. 최 의원은 총선을 치르고 나서도 한국자산관리공사 법률고문을 지냈다.

금배지 달고 법정에 나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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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법무장관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사건 수임에 담당변호사로 이름을 걸치는 방식으로 46건,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건을 수임했다. 이와 달리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을 지켜 한건의 소송도 맡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금배지 ‘후광효과’를 보며 사건 수임 건수를 늘린 의원들도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2003년 6월16일~2004년 4월15일 모두 64건의 소송에 담당변호사로 이름을 올렸으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2004년 4월16일~2005년 2월 말까지 9건이 늘어난 73건의 사건을 수임했다.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같은 기간 1건에서 4건으로 3건이 늘었다. 특히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총선 바로 전에 개업을 해서 그런지, 과거엔 한건도 없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야 9건의 소송을 맡았다.

초선은 아니지만 천정배 장관은 같은 기간 41건에서 51건으로 9건이 늘었으며, 강재섭 원내대표는 4건, 열린우리당의 조배숙·이종걸·송영길 의원, 한나라당의 김영선 의원은 각각 한건씩 증가했다.

의원들은 민·형사 사건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사건 내역을 보면 지역구 민원인에서부터 금융기관, 정부투자기관, 기업체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또 자신의 이름으로 재판부에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법정에 나가 변론을 하는 경우도 포착됐다.

김영덕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월20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5호 법정에 금배지를 달고 나타났다. 지난 2004년부터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의령의 의령농업협동조합(피고)쪽 변론을 하기 위해서였다. 손해배상 사건의 맞은편(원고) 소송 당사자는 김 의원이 국회 일정을 이유로 재판 일정을 바꿔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의원이 되고 나서 대리인 자격으로 법정에 답변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의령농협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맡았던 사건이라 변론을 해준 것이다. (법정에) 한번 나가고 그냥 끝났다. 더 변론하려고 하는데 상대편에서 (법원에) 로비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해명했다. 재판은 2월에 원고쪽 일부승소로 결론났다. 김 의원은 법무법인(로펌)에서 한푼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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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이름값’을 받고 있다

하지만 로펌에 소속된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름값을 받고 있다. 최용규 의원은 매달 500여만원의 급여를 받는다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밝혔다. 다른 의원 변호사들도 월급 형태로 매달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을 가져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형편이 낫거나 실적이 좋은 법인의 경우 의원 변호사에게 법인 차량과 수천만원 이상의 배당금이 돌아오기도 한다. 한 초선 의원 변호사는 자신의 소규모 로펌에서 “지난해 사업연도 배당금으로 1억원 이상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이아무개(33) 변호사는 “국회의원이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사건 관련자에게서 돈을 받고 영리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도덕성뿐 아니라 변호사 윤리에도 맞지 않다.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직·간접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압력”이라고 지적했다. 의원 변호사들이 한사코 법무법인에 이름을 걸어놓는 이유는 법인의 처지에서 봤을 때 의원이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의정활동도 하면서 가외 수입을 누릴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원 변호사의 광고효과는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법원의 처지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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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의원 변호사들이 자신의 신분을 활용해 사건 담당 부장판사에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건 때문에 국회의원의 전화를 두번 정도 받아봤다”고 말했다. 지원장에 나가 있는 다른 판사는 “일년에 한두번 정도 배지를 단 의원 변호사들을 법정에서 본다”고 말했다.

의·약사, 회계사, 법무사 등 전문직종 출신 의원들도 대부분 애초 본업을 포기하지 않고 영리활동을 계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월15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 독일치과의원. 일찍부터 네댓명의 손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흰 가운을 걸친 김춘진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음료수를 나눠준 뒤 접수대에서 신용카드 전표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선생님, 주말에는 진료받을 수 없나요?” “아, 나는 주중밖에 안 돼요.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일찍 해서 최대한 치료하지 뭐.” 김 의원은 환자들이 어디가 아픈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임시국회가 열린 지난 6월에도 병원에서 수시로 환자를 진료했다. 그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국회가 열릴 때는 점심 시간밖에 치료하지 못한다. 비회기 중에도 오전에 잠깐 진료를 하기 때문에 국회에 들어오면서 1억원이 넘는 적자가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약사 출신의 장복심 의원은 조제는 하지 않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압구정동 태양약국에 종종 들러 약품의 재고 상태 등을 파악한다. 회계사 출신의 한광원 의원은 인일회계법인으로부터 매달 500만원을 가져간다. 지난 3월에는 2400여만원의 배당소득을 받았다. 돈을 받는 만큼 일도 한다. 회기 중이든 아니든 거의 꼬박꼬박 1주일에 한두번씩 회계사무소에 들러 직접 결재를 한다고 사무실 관계자들은 밝혔다.

공무원인 국회의원들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영리활동 추구는 임기 동안 기업체을 운영하거나 사기업체의 임직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코스닥 등록업체인 (주)소디프신소재의 사외이사로 뛰고 있는 무소속의 신국환 의원은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참석해 안건을 심의하고 경영 자문을 해준다. 소디프신소재쪽에서는 그에게 다달이 300만~4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업체와 관련될 수 있는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국회 재정경제위 소속 의원이다. (주)금호생명보험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신중식 의원은 업체의 감사 업무를 하면서 매달 30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재정경제위 의원이 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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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한나라당 의원은 (주)심로악기 회장으로 있으면서 회사에서 법인차량과 운전기사를 제공받았다. 회사에서 매달 500여만원을 받으며, 간혹 회사에 들러 중요한 의사 결정은 본인이 직접 챙긴다. 회사 사장인 심 의원의 부인은 “(남편이) 회기가 아닐 때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한다”고 말했다. (주)영금기업에 공동 출자한 뒤 이 회사의 고문으로 있는 박기춘 열린우리당 의원도 회사에서 매달 300만원과 에쿠스를 지급받았다. (주)유림건설의 최대주주인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은 회사로부터 ‘고문료’를 받는다고 회사 관계자가 밝혔다. 하지만 김 의원실 보좌관은 “회사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가 소속된 국회 재정경제위는 기업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기관 및 관련기관을 피감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승용 열린우리당 의원은 (주)화성산업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으며, 500만원의 급여와 법인으로부터 체어맨을 지급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보통 2주에 한번씩 회사에 온다”고 말했다. 회사를 소유한 의원들은 경영 일선에서 한발 빠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에 맞는 대우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배당 등을 포함해 겸직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받는 월급여(평균 800여만원)와 비슷하거나 때론 웃도는 높은 수준이다.

겸직 의원 본회의 출석률 떨어져

학교법인 신흥학원 이사장인 강성종 열린우리당 의원은 요즈음 수시모집을 하고 있는 신흥대학에 나간다. 학교 안 이사장 관사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대학 관계자는 “이사장이 회의를 주관하는 경우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지만, 최근에 거의 매일같이 관사에 머문다”고 밝혔다. 그는 방학 때 학교에 나온 학생들이나 수시모집 응시생들과도 수시로 접촉한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강 의원은 동두천 관광호텔 대표로도 있으면서 매달 500만원의 급여와 법인 명의로 된 에쿠스를 몰고 다닌다.

의원들의 가장 많은 겸직으로 꼽히는 교수의 경우 정교수는 대부분 휴직을 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겸임·객원·초빙 교수 등으로 이름을 걸쳐놨지만 실제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두 9개로 가장 많은 겸직을 하는 정몽준 의원의 활동 중심은 대한축구협회다. 협회장인 정 의원은 거의 매일같이 협회로 출근한다. 이런 이유로 의원들의 겸직활동은 의정활동의 성실도를 낮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겸직활동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만큼 의정활동에서 시간과 정성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겸직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 출석률은 그렇지 않은 의원보다 낮게 나왔다. <한겨레21>이 참여연대로부터 받은 국회의원 299명의 17대 국회 본회의 출석률을 놓고 영리활동을 하는 의원 92명의 출석률을 봤더니 89.3%로 비겸직 의원들과 비영리 겸직 의원(국무위원 뺌)의 약 91%보다 다소 낮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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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겸직하게 되면 의정활동 시간을 뺏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겸직을 하는 의원들조차 인정하고 있다. 장복심 의원은 “약국에 가서 재고약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국민한테 국회의원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떠나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다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자원을 소수의 수중에"

의원들의 겸직은 자신의 이해와 입법활동에 반영돼야 할 이익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상존시킨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의원들의 영리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직종에 대한 겸직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 교수는 “국민들이 의원들에게 세비를 주고 각종 입법 보조활동을 지원하는 것만큼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종국적으로 모든 겸직이 금지돼야 보다 공정한 입법활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창 교수는 “돈 많은 사람이 권력과 명예를 한 몸에 지님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든 자원을 소수의 수중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유발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수임 건수 1위, 조성래 의원

769건의 소송 변호인단에 이름 올려…“아무런 대가 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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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국회의원 가운데 사건 수임 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 조성래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7월18일 <한겨레21> 전화 인터뷰에서 “(이름을 걸어놓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해서 대표로 붙어 있었던 것뿐인데… 이런 것이 무리를 빚어서 취재 대상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이날 자신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부산의 법무법인 ‘동래’에 휴직계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 의원은 2004년 6월~2005년 2월 모두 769건의 양수금·배당 이의·양도세 부과 취소·손해배상·채무부존재 확인 등 온갖 사건의 변호인단에 담당변호사 가운데 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사건 수임이 가장 많다는 것과 관련해 “우리 법인에서 받은 것을 내가 (수임)하는 것으로 하면 곤란하다. (내가 한 것은) 들어오기 전에 받은 10여건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다른 변호사 국회의원들과 달리 법인으로부터는 아무런 대가나 혜택도 받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변호인단에서 이름을 왜 빼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실상 사건을 안 하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한테 오는 사건은 부산에서 없다. 서울서 한두 사람이 상담을 오지만, 사건을 안 맡겠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조 의원은 자신의 이름값 효과를 부정하진 않았다. “구성원(변호사)으로 이름을 걸어달라고 해서 도움이 될까 했는데….”




법사위 포기냐 변호사 포기냐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 시행 앞두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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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가 좋긴 한데, 변호사 영업을 포기할 순 없고….’
변호사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내년 6월부터 시행될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다. 상임위 관련 영리활동을 금지하는 탓에 변호사 영업을 해온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법사위 아니면 변호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겨레21>이 지난 7월20~21일 이틀 동안 법사위 소속 의원 변호사들에게 겸직 여부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묻자, 상임위와 상관없이 ‘휴업’을 하겠다는 응답은 한나라당의 김재경 의원 단 한명뿐이었다. 김 의원은 “개정 법안에 깔려 있는 기본 뜻은 직무 관련 영리행위 금지를 떠나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라며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 휴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연희 법사위원장을 비롯해 주호영·양승조·정성호 의원 등 넷은 “상임위를 변경하거나 상임위 유지시 휴업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6월 이전에 상임위를 재배치할 때 법사위에 남아 있으면 휴업하겠지만, 변호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상임위를 옮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연희 위원장은 “다른 상임위로 가게 되면 (변호사업을) 그대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성영 의원은 “상임위 유지시 휴업하겠다”고 답했다.
그 밖에 장윤석·최재천·우윤근·이원영·최용규 의원 등 다섯명은 “고민 중”이라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우윤근 의원은 “폐업을 할지, 업무를 안 할지, 이름을 뺄지 등 모든 가능성을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5공이 겸직 의원 키웠다

직업정치인 내쫓고 전문 직종 인사들 참여의 ‘미끼’로 사용

정치적 자유를 억누른 ‘5공화국’은 역설적으로 정치인들의 직업적 자유를 크게 신장시켰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정권을 탈환한 뒤 불판을 갈듯 정치판을 인위적으로 갈아치웠다. 그 결과 1981년 시작된 11대 국회는 초선 의원이 무려 78.9%를 차지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를 통해 전두환 정권은 입맛에 맞는 새로운 인물들을 국회에 심을 수 있었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의회개혁론>에서 “5공화국은 이른바 직업 정치인을 정치무대에서 추방하는 일에 주력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의원 겸직 제도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외부 교수 등 전문 직종 인사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원 겸직을 ‘미끼’로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의원 겸직 제도가 이렇게 정략적 동기에 따라 입안됐다고 보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 한재화씨도 <한국의 국회의원 겸직제도에 관한 연구>(경북대 대학원) 논문에서 “5공화국 들어서 의원 겸직이 전반적으로 강화됐다”고 지적한다.
실제 국회는 4공화국 때까지 “공무원, 공공기업체 임직원, 사적 영리단체 임직원에 대한 겸직을 제한”했던 규정을 5공화국 들어서면서 “공무원, 공공기업체 임직원에 대한 겸직 제한”으로 바꿨다. 국회의원이 사적 영리단체 임직원을 겸하는 것을 제한했던 규정을 삭제하면서 겸직 제한을 완화한 것이다.
박 교수는 전 정권이 겸직의 폭을 넓힌 이유가 “겸직을 허용함으로써 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당 운영 자금의 조달을 책임지는 정파의 보스들이 정치자금을 따로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덜고자 했다”며 “국회를 비상설화해서 일종의 아마추어 의회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엔 부업이 없다

아예 당규에서 영리를 목표로하는 의정활동 할 수 없도록 정해

140명의 겸직 국회의원 가운데 민주노동당 의원의 이름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민주노동당 의원들 가운데 보수를 받고 다른 직을 겸하고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돈을 받는 겸직을 하지 않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민중이 주인 되는 평등 세상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노동당에 선뜻 자리를 내미는 외부 영리 단체가 없기 때문이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민주노동당이 갖는 당의 정체성에 비춰 기업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와의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다”며 “원외(원내정당 진출 전) 정당 시절에도 (겸직) 제안이 없었다”고 밝혔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동당이 아예 당규에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의 이해 충돌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당규는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윤리를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원칙을 밝힌 뒤, “자신이나 친척 및 기타 친우의 재정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공적인 의사결정을 하거나,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영리를 목표로 하는 모든 의정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규범인 셈이다.
그렇다고 의원들이 외부단체에 아무런 직함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권영길·천영세·단병호 의원 등은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다른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한두개 이상의 외부단체 직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거마비’를 받지 않는 무보수 겸직이다.





[표지이야기] 국회의원 ‘아르바이트’ 열전!…24
우리나라 299명 국회의원 가운데 무려 46%에 이르는 의원들이 겸직을 하고 있다. 변호사·의사·회계사·기업체 임원 등 주로 고소득을 보장하는 전문직·관리직이나 자영업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름값’으로 수익을 쏠쏠히 챙기고 있다.

[도전인터뷰] “나는 요즘 ‘타협’ 하며 산다”…20
김선수(44)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의 사무처에 해당하는 기획추진단 단장도 겸하고 있다. 맡은 일의 민감성과 폭발성 때문에 그는 여태껏 언론 인터뷰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특집] “바이오디젤로 넣어주세요”…64
식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바이오디젤이 내년 일반 주유소에서도 시판된다. 가격도 싸고 무엇보다 환경을 적게 해친다. 바이오디젤의 기술적 문제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다른 신재생에너지 개발 현황도 살펴보았다.


[초점] 탈북자의 금강산 여행기…14
남한에 정착한 지 12년 된 새터민 김형덕씨가 금강산 여행길에 올랐다. 금강산 호텔 앞 술집에서 ‘민족반역자’란 말까지 들어야 했던 그, 2박3일 동안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는 금강산여행을 한 최초의 새터민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람과 사회] 반가워라 아쉬워라, 5.8km…78
청계천 복원사업이 마지막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년 전 “역사문화적인 청계천 복원”을 주장하며 서울시와 한판 전쟁을 벌였던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과 길윤형 기자, 그리고 류우종 사진기자가 청계천 현장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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