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통 예정인 청계천 물길을 기자와 문화운동가가 함께 걸어보다
“복원사업은 우리 사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대장정”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길윤형 기자(이하 길)=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밥 먹듯 이곳을 들락거렸는데, 공사가 거의 끝났네요. 벌써 물도 흘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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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이하 황)=그렇죠. 7월6일에는 저기 있는 분수가 시험 가동했다는 기사도 나왔어요.
복원이라기보다는 인공수로 조성
류우종(이하 류)= 개천 시점부(동아일보사 앞)는 무지 화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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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밤이 되면 바닥에 설치된 분수에서 청색, 녹색, 백색의 세 가지 색깔 조명이 나오고, 높이 4m의 2단 폭포도 설치돼 있어요. 청계 광장에는 청계천 전체의 모습이 담긴 담긴 축소 모형도 있고. 밤에는 제법 볼 만하다는 얘기가 많더라구요.
길= 류 선배, 동아일보와 갑을빌딩 사이에 난 저 골목길 보여요?
류= 응.
길= 저 아스팔트 밑으로 청계천의 본류 가운데 하나인 삼청동천이 흘러와 개천에 합치죠. 또 다른 본류인 백운동천은 광화문 네거리 너머에서 이쪽으로 넘어오고. 둘 다 일제 때 복개됐는데, 일제시대 서울 지도를 10년 단위로 끊어 살펴보면, 두 개천의 복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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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울환경연합 등 환경시민단체들이 주장했던 상류 복원이 저걸 뜯어서 청계천과 연결하라는 거예요. 지금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자양취수장에서 펌프를 통해 상류로 보내오는 것이구요. 그 물을 모아 40cm로 수위를 맞추죠. 엄밀히 말하면 청계천은 ‘복원’이라기보다는 도심 중앙을 관통하는 인공 수로를 만드는 거라 할 수 있어요.
길= 모전교가 보이네요.
황= 모전교는 청계천 22개 다리 가운데 제일 상류에 있는 다리예요. 그동안 전하는 사진이 없어 모습을 알 수 없었는데, 지난해 11월 <한겨레>가 일본의 문화재 기술자 스기야마 노부조가 1937년 <사적과 미술>에 쓴 ‘서울의 돌다리’라는 글에서 사진을 찾아냈죠. 그런데 지금 다리는 그 사진 모양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어요.
류= 왜 그랬죠?
황= 이미 정해진 모양을 바꾸기 싫었나보죠. 역사 복원이라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길= 다음으로 광통교네요. 청계천 두 번째 다리.
류= 다리 위치가 원래 여기 맞나요?
황= 날카로우시네요. 지금 자리는 원래 위치에서 상류쪽으로 155m 옮긴 거예요. 보신각에서 청계천으로 쭉 걸어오다 보면 광교 약국이라고 작은 약국이 있는데, 원래 자리는 그 앞이에요. 역사학자들이 모여 “원형·원위치 복원”을 주장했는데, 남대문로의 교통 흐름에 영향을 준다고 해서 상류로 옮겼죠. 저거 봐라?
길= 뭐요?
황= 남쪽 둔치에 있는 조경석들요. 저게 왜식 조경이거든요. 우리 식대로 그냥 단출하게 석축 처리를 하지, 저렇게 요란하게 조경을 꼭 해야 하나 싶네요. 참, 류 기자님 광통교 밑을 한번 보세요. 조각된 돌들이 보이죠? 태종이 자기가 미워했던 새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의 묘지 신장석을 뽑아 박아놓은 거예요. 그 중에는 거꾸로 박혀 있는 것들도 있는데, 태종이 신덕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다, 아니다라는 말들이 많죠. 사료가 남아 있지 않으니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요.
길= 그래도 여기서 발굴된 호안석축은 다시 제 위치에 가져다 박았네요. 저기 물 속에 길게 한 줄로 박힌 돌들이 여기서 200m 길이로 나온 석축이고.
류= 여기가 수표교 터인가? 아무것도 없는데?
황= 수표교(시 지정문화재 19호)는 지금 장충단공원에 있거든요. 발굴 때 수표교 터에서 유구(건축물 등이 있던 흔적)가 많이 나왔는데, 다른 곳으로 옮겼죠.
“저렇게 요란하게 조경해야 됐나”
길= 선배, 저쪽 너머에 ‘수표다리길’이라는 표지판 보여요?
류= 음, 지나가다 본 것 같아.
길= 여기 수표교라는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수표다리길’이라는 저 골목길이 생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리가 없으니까 골목이 생긴 역사적 맥락이 완전히 사라졌죠.
황= 그나저나 수표교 복원은 어찌돼가요?
길= 서울시에 물어보니까 수표교 복원을 위한 기본 구상이 7월 말에 완성될 거라네요. 서울시 계획은 2010년까지 다리를 가져오겠다는 것인데, 거쳐야 할 단계가 많대요. 가장 큰 문제는 수표교(27.1m)가 하천 너비(23~24m)보다 길어서, 주변 땅을 수용해야 한다는 거고. 그 돈이 만만치 않다고 하네요. 땅 주인들이 순순히 땅을 판다고 하겠어요?
황= 수표교를 원형·원위치 복원하려면 여기 지하에 묻은 통수관을 뜯는 공사를 새로 해야 돼요. 그 예산도 만만치 않을 텐데. 나는 서울시가 애초부터 복원을 할 생각이 있었는가 싶어요. 얼마 전에는 수표교 터, 광통교 터 등 사적 주변의 층고 제한도 풀어줬잖아요.
길= 나는 수표교 같은 데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광통교와 수표교가 어찌되든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냥 참으면서 살거든요. 그건 한 사회의 문화적 감수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문제의식은 있지만 그런 것을 도무지 못 참아하는 단계는 아닌 듯해요. 토지 수용하려면 수백억원대의 돈을 작은 다리 하나에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성숙했나 싶기도 하고. 광통교에는 60억원이 들었는데, 그렇게 보면 수십억원을 들일 준비는 된 건가? (웃음)
류= 벌써 청계6가네요.
길= 여기서 잠깐 둔치 밖으로 나가볼래요? 여기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인 곳이거든요.
황= 이쯤인가요?
길= 원래 저기 평화시장 횡단보도 앞에 ‘전태일 열사 분신 동판’이 서 있었어요. 그런데 2003년 12월1일 서울시가 공사를 진행하면서 동판을 함부로 뜯어냈죠. 2시간 정도 동판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민주노총 사람들이 발견해서 전태일 기념사업회쪽에 전했어요. 그때 사진 찍으려고 종로3가에서 여기까지 뛰어오느라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리가 조잡하다고 소문났어요
류= 요새 신문 보니까, 전태일 복원에 서울시가 신경 좀 쓰기 시작했다던데. 어떻게 되는 거죠?
길= 청계6가와 7가 사이에 전태일 거리를 만들고, 옛날 동판 있던 자리에 ‘꽃을 든 소녀상’을 만든대요. 서울시 입장에서는 큰돈 들이는 것 아니니까 싫다고 할 이유가 없죠.
황= 여기는 저한테도 의미가 있는 곳이예요. 우리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다음 서울에 올라왔는데, 여기 평화상가 2층에서 이모가 옷가게를 했거든요. 어머니는 이모를 도우면서 돈을 벌었고. 어느 날인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웬 젊은 애가 시장에서 분신자살을 했다”고 수근거렸는데, 그게 전태일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대학에 가서 알았죠.
길= 청계천 다리를 전부 합치면 몇개죠?
황= 22개. 그런데 다리 모양이 조잡하다고 벌써 다 소문났어요. 통일성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어떤 것은 버스정류장처럼 생겼고, 어떤 것은 너무 화려하고. 가장 단순한 모양이 좋은 건데, 그걸 잘 모르나 봐요.
길= 어느새 오간수교네요.
황= 오간수문은 한마디로 수문이에요. 청계천이 한양 성곽 밖으로 흘러나가려면 수문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성문에 5개의 홍예문을 만들었어요. 그 수문을 오간수문이라고 불렀죠. 수문 앞에 기다란 널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오간수 다리’였고.
류= 그래서 저기 보이는 다리에 성벽 모양이 조각된 거네요.
황= 그렇죠. 청계천 발굴조사 할 때 오간수문 다리받침이 너무 잘 나와서 우리 모두 감동했었죠. 길 기자, 그 부재들 지금 어디 있어요?
길= 중랑하수처리장요. 저는 그때 나온 것 가운데 돌 거북이(석수) 두 마리가 제일 기억에 남던데요. 1900년에 찍은 오간수문 사진에 또렷이 남아 있는 거북이 말이예요. 작은 거북이가 100년 동안 콘크리트 밑에 잠들어 있다가 깜찍하게 튀어나오니까 참 눈물겨웠죠. 그거 보니까 광화문 앞 ‘해태’가 떠올랐어요. 조선시대 광화문 사진 보면 해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지금은 없어졌잖아요. 지금 있는 것은 모조품이거든요.
장애인과 노숙자는 접근 금지
황= 그나저나 오간수문은 한양 성곽 복원할 때 맞춰 복원한다고 해요.
길= 그런데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공무원 입장에서 못한다고 할 수 없으니까, 적당한 말로 뒤로 미루는 것 같아요.
류= 내가 여기 처음 와서 잘은 모르겠는데, 화장실이 없네요? 둔치가 너무 깊어서(6m) 장애인 접근도 어려울 것 같구요.
황= 화장실 문제는 옛날부터 많이 지적됐어요. 노숙자 때문에 안 만든 것 같아요.
길= 장애인 문제는 생각 못해봤다. (서울시쪽에 확인해보니, 장애인 이동통로 8곳이 개천 중간중간에 마련됐다고 함)
류= 또 바깥 인도 폭이 너무 좁은데, 이게 몇m죠?
길= 1.5m.
류= 휠체어는 절대 못 지나겠네요.
황= 거기다 애초 계획에는 없던 가로수를 심어서, 두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불편해요. 개천 안쪽으로 떨어지는 안전사고도 많을 것 같구요.
길= 서울시가 그런 부분은 고치는 게 좋겠네요. 저기 신답철교 보이네요. 얘기하다 보니까 벌써 끝이네요. 아쉬운 마음에 너무 트집만 잡은 것 같아요.
황= 그래도 청계천 복원 사업 자체가 잘한 거니까, 서울시가 애정어린 비판을 달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길= 새로 돌아온 개천이니까 반갑게 맞아주는 게 옳은 자세인 것 같아요.
류= 매일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쳐왔는데, 언제 한 번 다시 나와봐야겠네요.
황= 모든 문화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살잖아요. 청계천을 보면 그런 것을 느껴요. 문화를 품는 우리 사회의 역량이 조금 더 컸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청계천이 됐겠죠. 그런 의미에서 청계천은 우리 사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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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돌아오는 노점상들 |
지난 7월19일 찾은 서울 동대문시장 안의 ‘풍물시장’은 제법 자리가 잡힌 듯 활기찬 모습이었다. 1년 전인 지난해 6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던 상인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최인기 전국노점상연합 사무국장은 “지금처럼 자리 잡는 데까지 노점상들의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비와 햇볕을 막기 위한 차양막 공사가 깔끔하게 마무리된 점이다. 상인들은 공사에 필요한 비용 7억원을 직접 마련해 올 4월에 공사를 끝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비가 많이 오면 상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최 사무국장은 “6월 말 큰비가 왔을 때 운동장 끝에 물이 발목까지 들어차 상인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물품은 여전히 다양하다. 골동품·옷·시계·전자제품·먹을거리…. 성인용품과 추억의 ‘빨간책’도 있다.
서울시의 강력한 단속으로 청계천에서 자취를 감췄던 노점상들도 하나둘씩 주변 동묘앞역 부근, 황학동, 동대문 운동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거의 와해된 것으로 알려졌던 황학동 풍물시장도 예전만큼의 명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권이 회복된 상태다. 황학동에서 잡동사니를 파는 김아무개(44)씨는 “사람들이 모여 저절로 형성된 시장이 하루아침에 문 닫을 리가 있겠냐”고 말했다.


![]() | ||||
![]() | 꽃을 든 소녀, 전태일을 기린다 |
청계천에 놓인 12번째 다리인 버들다리를 건너 청계6가 평화시장으로 접어드는 들머리에서 22살이던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1970년 11월13일. 고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은 명동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뒤 고통 속에 ‘물을 달라’고 외치며 밤 10시까지 신음하다 죽었다”고 당시 광경을 적었다. 당시 청계천에서 ‘한달 월급 1500원’을 받고 청계천에서 일했던 노동자는 2만여명이었지만 몸을 살라 역사를 바꾼 것은 전태일이 유일했다.
전태일이 35년 만에 청계천으로 다시 돌아온다.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와 전태일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는 청계5가 창선방교부터 오간수교(훈련원로~흥인문로)까지를 전태일 거리로 정하고, 전태일이 목숨을 끊은 청계6가 평화시장 들머리에 꽃을 든 소녀상(높이 180㎝)을 세우기로 했다. 황민호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시민 6천여명이 전태일 거리에 전태일에 대한 추모 글귀나 자신의 소망을 담은 글을 써 붙일 수 있도록 모금을 시작했다”며 “서울시와 협의가 끝나 시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벽돌 하나당 모금액은 10만원이다.
국민은행(500301-01-031625), 예금주 전태일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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