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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성] ‘곤장 90대’의 투쟁

등록 2005-06-10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박준성씨는 올해 80살이다. 얼핏 보기에 조용하고 인자한 모습을 지닌 평범한 할아버지 같지만, 조금만 얘기해보면 내면에서 꿈틀대는 투사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성품은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걸까. 박씨는 “잘못된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부친을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1919년 4월4일 충남 서산군 정미면 장날을 이용해 면민 1천여명을 모아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 박성운(1892~1943) 선생이다.

국가보훈처가 1988년 펴낸 <공훈록>을 보면 “대호지면에서 출발한 이들(박성운 선생 등)은 정미면 천의리에 이르러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며 “이 일로 피체돼 1919년 4월24일 서산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태형은 쉬운 말로 바꿔 ‘곤장’을 뜻한다. 그는 “아버지께서 태형으로 몸이 으깨져 평생 불구로 살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박씨의 부친은 독립유공자들에게 주는 가장 낮은 훈격인 대통령표창(1995년)을 서훈받는 데 그쳤다. 부친과 같이 활동했던 이보국(1872~1954), 이규승(1883~1961) 선생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표창은 훈격이 낮아 독립유공자들 모두의 명예인 정식 건국훈장에 포함되지 못한다. 젊은 시절 고아와 부랑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했던 박씨는 “젊었을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아버지께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5년 동안 80통이 넘는 진정서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했지만 보훈처는 “‘조선태형령’에 따라 태형 1대를 징역 1일로 기준을 삼고 있어, 등급 상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태형은 야만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일본 본토에서는 폐지된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상 당한 분들 가운데 건국훈장의 가장 낮은 등급인 ‘애족장’을 받은 분들도 많아요. 공훈이 같으면 같은 대접을 받아야죠. 투쟁요? 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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