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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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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인권을 아십니까”

등록 2000-12-27 00:00 수정 2020-05-03 04:21

난생 처음 ‘데모’를 해봤다. 구호도 외치고 거리행진도 했다. 처음에는 조금 떨렸지만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본 것이 기뻤다. 서울 인창고 1년 황두영(16)군이 12월23일, 세밑 인파가 넘치는 명동거리에서 느낌 소감이다.

이날은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 중고등학생연합’의 출범식을 겸한 학교 민주화선언식이 열린 날이다. 오후 2시30분 밀리오레에서 시작되는 명동 중심길 한복판에 40여명의 청소년들이 플래카드와 깃발을 앞세운 채 모여앉았다. 황군은 사전행사로 열린 난타 공연에서부터 시선을 끌었다. 각기 다른 의자를 북채로 치면서 화음을 맞추는 동안 우렁찬 목소리를 더하는 게 그의 몫이었다. 게다가 180cm가 훨씬 넘는, 또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키 덕분에 대오에서도 가장 도드라졌다.

황군은 “강압적인 규정도 없고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중고등학생연합의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지품 검사, 두발·복장 제한 등의 사생활침해는 물론 체벌과 동아리활동 제한, 성적차별 등 인격침해가 다반사로 일상화된 학교문화를 개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동감해 그곳까지 나왔다고 한다. “한 40점? 어른들 이해하기 좋게 학교의 인권지수를 매기자면 그래요. 우리나라 인권지수를 평균 50∼60점이라고 친다면 거의 꼴등이죠, 꼴등.”

최근 두발제한 철폐를 외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뒤덮고 언론까지 많이 탔지만, 정작 나아진 게 별로 없는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고 황군은 말한다. “학생들이 토론해서 낸 결론이 학교쪽에 의해 무시되는 건 물론, 일부 학교에서는 인터넷에 글을 올린 아이들을 찾아내서 혼내거나 심지어 동아리 사이트를 폐쇄해버리는 일도 일어났어요.”

그는 학교 조직이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것도 문제이지만, 여전히 다수의 아이들이 자신에게 인권이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교육풍토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토론식 수업이 활성화되고 선택 교과목이 다양하게 생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고등학생연합에서 발간하는 계간지의 편집부원으로 활약할 황군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학생들 밖으로만 소리를 낼 게 아니라 안으로도 소리를 내어 침묵하는 다수를 일으켜세울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국어와 사회 과목을 좋아한다는 그는 학교신문의 기자로도 뛰고 있다.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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