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권태평] 강기훈 어머니, 캠퍼스에 뛰어들다

등록 2005-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IMAGE1%%]

“내 정신 좀 봐. 교재 사러 가야 하는데…. 첫날이어서 정신이 없네요.”

지난 1991년 이른바 ‘유서 대필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강기훈씨의 어머니 권태평(71·사진 왼쪽)씨가 지난 3월2일 늦깎이 여대생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권씨는 지난해 11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아 ‘NGO 활동 우수자 전형’ 대상으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 “기훈이가 대학 다닐 때 왜 데모만 하는지 궁금해서 유인물을 읽어봐도 통 알 수가 없더라고.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권씨의 첫 수업은 조효제 교수의 ‘사회학 개론’. “내가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야. 얼떨떨하기도 하고….” 이번 학기에 권씨가 신청한 과목은 이날 첫 수업이 시작된 사회학 개론을 비롯해 ‘시민과 인권’ ‘여성학’ 등 7과목에 19학점. 수강신청 가능 학점을 꽉 채웠다. “제가 좀 욕심이 많아서….” 칠순의 나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학교에 가야 한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시험 보고 공부만 하느라 바빠서 다른 활동은 못했는데 이제는 그동안 못 나갔던 인권운동사랑방에도 다시 나갈 생각이다.

권씨의 꿈은 노인·여성 컨설턴트다. “요즘 노인 문제도 심각하고, 저와 같은 세대잖아요.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킨 세대인데 자식만 가르쳤지 자기 노후생활은 대비를 못했어요. 자살하는 노인도 많고…. 여성이나 주부도 보면, 이혼율이 높은데 내가 70년 평생 살아온 경험도 있고, 그래서 상담해주고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권씨는 초등학교는 간신히 졸업했지만 한국전쟁통에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울었다고 한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권씨는 학생운동을 한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배움에 눈을 떴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꿈꾸긴 했지만, 옥고를 치른 아들 뒷바라지 때문에 짬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 5년 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학력인정 주부학교 일성여고에 들어갔고 내친김에 대학까지 왔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