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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박노해 시인과 닮지 않았나요?

등록 2004-12-17 00:00 수정 2020-05-03 04:23

▣ 남은주 / 전 기자 mifoco@hani.co.kr>mifoco@hani.co.kr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12월10일 박노해 시집 발간 20주년을 기리던 이화여대 대강당이 신들린 듯한 힙합 리듬과 기타 연주로 순식간에 들썩였다. 의 머리시 ‘하늘’이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27)와 그룹 넥스트에 의해 다시 세상에 헌정된 것이다.

엽기 발랄의 가수 싸이가 기념공연에 참여해 화제가 됐지만, 정작 자신은 기라성 같은 선배 음악인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이 영광이었을 뿐 박노해 시인에 대해서는 “이름 정도나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 만난 싸이는 검은 옷을 차려입은 ‘진지한’ 분위기다. 그는 출연 의뢰를 받고 시집을 처음 펼쳐본 순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을 느꼈다”고 말했다. “높은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을 하늘로 여기며 짓눌려 사는 힘없는 이들의 독백을 읽는 순간 가슴이 저렸습니다. 저는 80년대의 격동과 거리가 먼 세대지만 무방비 상태가 깨지는 아픔과 동시에 따뜻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는 정치와 연예의 함수 관계를 비꼬고, 립싱크 가수들을 비판하며, 미군 장갑차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회에 대해 가차 없는 발언들을 해왔다. 12월24∼25일 열리는 자신의 콘서트 포스터에도 “건전한 공연이 아니면 절대 (공연에) 손대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헛된 공약을 남발하는 국회의원들을 한껏 조롱하는 정치 패러디를 선보이기도 했다.

기념공연 소감을 묻자 능청스레 되묻는다. “은 지금 읽어봐도 진짜 ‘필’이 꽂히는 시들입니다. 저도 직설적으로 씹기 좋아하고, 또 살면서 북받치는 솔직한 경험을 노래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해 시인과 제가 닮지 않았나요?”

박노해 시인이 80년대를 상징하는 ‘노동 해방’의 전사였다면, 싸이는 오늘날 가식과 위선을 통박하는 ‘권위 해방’의 전사이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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