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으로 돌아온 서세원…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꿈꾸며 고구려 영화도 찍을 계획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서세원(48)이 돌아왔다. 뇌물 사건과 저질방송 논란으로 연예계를 떠났던 그가 영화 의 제작자 겸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영화를 찍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로 대박을 터뜨린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흥행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역사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의 제작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가 ‘저질 방송인’과 ‘뇌물사범’이라는 비난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번 작품으로 이미지 쇄신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많은 것이다.
‘개그계의 황제’에서 ‘파렴치범’으로
서세원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지난 8월12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뇌물 사건에 대한 해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에서 단순히 (나를) 띄워주려고 하는 인터뷰는 아닐 테고…. (웃음) 이왕 만난 김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할게요.” 그는 의 흥행과 인기 토크쇼 진행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지난 2002년 7월 검찰 수사를 받았다. 홍보비로 방송사 PD들에게 돈을 준 사실이 검찰 수사망에 걸린 것이다. 당시 검찰은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검찰 조사가 진행될 때 영화 제작 때문에 홍콩으로 출장갈 일이 생겼어요. 담당 검사한테 얘기하고 홍콩으로 출발했는데 한 일간지에 내가 도피했다고 기사가 나간 거예요. 그때 얼마나 화가 나든지 지금 생각해도 분이 안 풀려요.” 이 기사가 나간 뒤부터 그는 ‘개그계의 황제’가 아닌 ‘파렴치범’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홍콩에서 일을 마친 뒤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천주교 신자인 제게 신부님들은 ‘마녀사냥이 진행될 때는 침묵하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래서 당분간 머리를 식히면서 영화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한달 동안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봤습니다. 조선족 출신으로 선양에서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의 안내를 받아 여행을 했는데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서세원은 이때 안중근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내가 검찰 수사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안중근 의사를 만난 것도 신의 계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상하이 등지에서 촬영할 곳을 물색한 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에 대해 안 좋은 얘기가 돌았다. 그가 검찰에 구속될 것을 두려워해서 해외로 도망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준비 때문에 귀국하지 않았을 뿐인데, 국내 언론에서는 나에 대해 고약한 기사를 써댔죠. 국내 방송과 신문들의 악의적인 기사 때문에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 애를 먹었어요. 특히 나 때문에 가족들까지 인신공격을 당하는 게 참을 수 없었죠.” 그는 결국 ‘화병’에 걸리고 말았다. 고혈압에 허리 통증까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고통이었다. 서세원은 귀국하기로 했다. 어차피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귀국해서 검찰 수사 문제를 마무리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9월 귀국했다. “귀국 당시 몸이 워낙 안 좋아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이걸 또 꾀병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참 비참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원망도 들고….” 그는 영화 홍보비 등으로 방송사 PD 등에게 800만원을 주고 회사 부가세와 법인세 1억95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그는 2003년 11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세원은 항소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검찰의 처분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었어요. 내가 했던 일은 당시 연예계에 만연된 관행입니다. 검찰 처분을 결코 승복할 수 없어요. 내가 공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보다 더 ‘공인’인 사람들은 몇백억씩 차떼기도 하는 세상 아닌가요?”
함세웅 신부를 만난 뒤 용기를 얻다
그는 보석으로 풀려나기 전까지 구치소에서 20일을 살았고, 풀려나자마자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 자기 자신과 약속한 안중근 영화를 찍기 위해서였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자료는 안중근기념사업회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도움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함세웅 신부를 만나 큰 용기를 얻었다. “함 신부님은 저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막기 위해 애쓰셨어요. 제 인생의 빛을 다시 밝혀주신 분입니다.”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영화에 전념할 수 있었다. “100년 전 32살의 젊은이가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대륙으로 건너가 활약한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찬 일이었어요.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중국은 물론 아시아의 민중을 놀라게 한 큰 뉴스였습니다.” 2004년 1월부터 시작한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1년7개월여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덕분에 현지 촬영은 두달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서세원은 중국과 한국을 드나들며 촬영해야 했다. 재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은 지난 7월 말 최종 완성됐다. 그는 이번 작품이 결코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 의존해 해결하지 말라는 안중근 의사의 가르침을 (관객들이) 되새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그래서 그는 이 영화의 북한 상영도 추진 중이다. 남과 북이 함께 보고 미국이나 중국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오는 8월23일에는 금강산 온정각에서 시사회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온정리 주민들도 일부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평양 상영을 성사시키기 위해 9월에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미 두 차례 사제단의 도움을 얻어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지난 5월 평양 상영이 거의 성사되는 단계였는데 김일성 조문 파동으로 무기한 연기돼버렸어요.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가 고위층의 감정 싸움에 영향을 받는 현실이 원망스럽더군요. 과거 냉전 시대에 반북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켜 북한에 대해 이유 없는 적개심을 갖도록 유도했는데, 아직도 남북한 당국이 그런 수준을 못 넘어서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통일도 그만큼 쉽고 충격도 덜할 텐데….”
너무 진지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그의 동료가 “을 의식한 멘트 아니냐”고 한마디했다. 그가 쑥스럽게 웃다가 대꾸했다. “왜 서세원은 통일이나 역사관 갖고 있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냐?” (웃음) 그는 내년 3월부터 고구려의 중국 투쟁 역사를 다룬 을 찍는다. 이 영화에는 북한의 인민배우를 출연시킬 계획이다. “이 영화를 찍겠다고 했더니 ‘서세원 머리 잘 돌아간다’고 비꼬는 얘기들이 들리더군요. 고구려사 논쟁이 일고 있는 시점을 잘 택했다는 거죠.” (웃음)
“방송 수준 많이 높아졌나요?”
서세원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처럼 코미디언 출신의 명감독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제 나이가 50인데 저도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야죠. 내 손자가 ‘우리 할아버지가 이런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가 다시 팔을 잡았다. “이 한마디는 꼭 써주세요. 내가 방송할 때 저질이라고 비난했던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거든요. 내가 퇴출된 이후 우리 방송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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