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인 세계신기록 세운 파병반대 노래방 ‘가수’들… 일주일에 한두번씩 서울시내서 ‘노래영업’ 계속키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파병 전야에 급조된 ‘널린우리당’이 불가능한 노래방 임무를 완수했다. 7월22일 낮 12시부터 25일 밤 10시까지, 82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소란 릴레이를 이어간 ‘쾌거’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들의 기록이 ‘비공인’으로 남게 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기네스북 협회가 인증 남발로 세계 기네스북 협회에서 제명되는 불행한 사태로 ‘공인’을 받을 길이 없었던 탓이다. 참고로 ‘공인’ 세계 기록은 42시간38분이다.
“이중창은 안 된다, 독창만 해라”
그들의 시작은 미약했다. 파병 반대 피스몹을 하면서 모인 10여명이 널린우리당의 ‘발기인’의 전부였다. 비록 소수지만 발기인의 면면은 어느 당 못지않게 화려했다. 전국 경향 각지, 각계각층의 ‘소외 인사’들이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만화책을 내지 못한 만화가, 석사학위를 따지 못한 지식백수, 녹색당을 건설하지 못한 환경운동가 등이 참여인사의 면면이다. 전국의 소외 제현들은 오직 ‘파병국 시민의 울분’으로 똘똘 뭉쳤다. 7월 중순 피스몹 뒤풀이에서 어느 가수가 울분을 토로하며 파병 반대 노래방을 열어보자는 ‘말실수’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말실수는 맞장구로 이어졌고, 결국 널린노래방(cafe.daum.net/endlesssong) 카페가 열렸다. 발기인들은 ‘생쇼’를 감수한 터였다. 하지만 뜻밖에 전국 경향 각지에서 울화병에 걸린 시민들이 자가 치료 차원에서 찾아왔다. 4일 동안 60여명의 당원, 비당원이 노래를 불렀다. 장소는 널린우리당이 최대의 정적으로 여기는 ‘열린우리당’ 당사 앞이었다. (참고로, 널린우리당의 당원은 60여명. 이 중 ‘노래 당비’를 납부한 진성당원은 40여명이다. 널린우리당 대변인실은 “암약하는 20여명의 귀차니스트 당원들의 행태에 경악했다”며 제명 조치를 운운하고 있다.)
‘노래는 무쇠를 녹이고 생명을 부른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골판지 상자로 세운 광고판에 거창한 슬로건을 휘갈기고 영업을 시작했으나 개업 당시 집결한 당원은 고작 대여섯명뿐이었다. 소수정예 발기인들마저 ‘배신’을 때린 것이다. 게다가 개업도 하기 전에 열린우리당 당사지기인 경찰 ‘나으리’가 다가왔다. 경찰은 집시법을 운운하며 “2중창, 3중창, 4중창은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독창만 해라”고 지침을 내렸다. 물론 확성기 사용도 금지였다. ‘비합법’을 지양하고 ‘합법’을 지향하는 널린우리당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원들은 각자가 준비한 소품과 악기를 사용한다는 ‘강령’을 자기합리화의 근거로 삼았다. 업친 데 덮친 격이었다. 당사 앞에는 ‘군복’을 입은 일군의 무리들이 엄청난 확성기로 ‘군가’를 ‘만빵으로’ 틀어놓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당원들은 직감적으로 이를 재향군인회 또는 해병대전우회의 탄압으로 오인하고 바짝 긴장했다. 다행히 ‘군복무 피해 미발령 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로 밝혀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장부터 간난고초를 겪고 파병 반대 널린노래방은 간신히 개업에 성공했다. 역시 노래방은 야간영업이었다. 해가 저물자 ‘가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노래방이 대장정을 마칠 때까지 낮무대 ‘땜방 가수’와 밤무대 ‘인기가수’ 시스템은 이어졌다. 널린노래방이 배출한 스타들을 소개한다.
낮무대의 땜방 가수로는 단연 ‘오구작작’이 손꼽힌다. ‘오구로’라는 ‘예명’도 쓰는 이 30대 사나이는 노래방에서 노래 대신 라틴시를 낭송해 객석을 아연케 했다. 무려 30분이었다. 라틴시에 참요가 이어졌다. “거북아, 거북아 파병을 치워라. 치우지 않으면 잡아먹으리.” 오구작작의 패러디로 고대의 ‘구지가’는 현대의 반전시로 다시 태어났다. 오구작작은 아직도 “시가 곧 노래”라고 우기고 있다. 그의 무대 의상 또한 허를 찔렀다. 그는 골판지 상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무대에 섰다. 상자의 사면에는 반전 메시지를 새겼다. 심지어 오구작작은 상자를 쓴 채 서울 시내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밤새 밤무대 뛰고 날 밝으면 회사로
낮무대의 진정한 다크호스는 ‘하늘아이’라는 대학생 가수였다. 하늘아이는 발기인이 아니다. 피스몹을 하려고 목요일의 시간을 비워두었다가 마침 노래방 개장 소식을 접하고 놀러온 시민이었다. ‘그랬던 그가’ 82시간 중 무려 40여시간을 ‘죽때리면서’ 10시간 넘게 노래를 불러젖혔다. 최장시간 노래를 한 신화. 그는 졸면서 노래를 부르는 ‘신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어 노래를 부를 때는 항상 눈을 감았다”고 주장하지만, 다들 고수의 겸손한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낮의 땜방 가수들은 땡볕이라는 ‘자연조명’을 받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설움을 당해야 했다. ‘조세피나’는 땡볕 아래서 4시간 ‘연짱’으로 노래를 불러 주변을 우려케 했다. 지켜보던 당원들은 모자를 영등포시장에서 긴급 공수하는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끄떡없이 공연을 마친 조세피나는 “김선일씨가 죽고 나서 집에서 혼자 답답했는데 노래를 부르니까 울분이 풀린다”며 표표히 사라졌다.
밤무대는 직장인들이 주인공이었다. 밤의 황제는 자칭 B급 가수인 ‘이 대리’였다. 그는 회사에서 퇴근만 하면 노래방으로 출근했다. 기타를 퉁기면서 개사곡을 부르는 것이 장기. “이라크 땅으로 떠나~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 그가 만든 의 개사곡은 널린노래방의 ‘주옥같은’ 명곡으로 남아 있다. 이 대리는 지난 6월에 기타를 산 초보 기타리스트. 그는 날이 갈수록 널린노래방을 기타 연습실로 활용하는 데 맛을 들여 무대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벤처회사 부대표인 최재훈씨는 아예 퍼질러 앉아서 모든 노래를 타령조로 바꿔 부르는 독특한 ‘창법’을 선보였다. 두 사람은 밤새 밤무대를 뛰고 날이 밝으면 회사로 향했다.
10대 가수의 깜짝 공연도 벌어졌다. 첫날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일가족이 차를 몰고 나타났다. 간디학교에 다니는 중딩 ‘유탱이’네 식구들. 홀연히 나타난 가족은 을 불렀다. 유탱이는 장구를 치고, 초딩 현영이는 피리를 불고, 엄마·아빠는 노래를 했다. 경찰이 불법 4중창 제지에 나섰지만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서 단 한곡을 부르기 위해 올라온 가족은 인삼차가 담긴 페트병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참, 두고 간 페트병을 찾아가라고 당원들은 당부했다). 지나가던 노동자 황씨가 무대에 오르고, 동네에 사는 고봉임 할머니도 더위를 피해 들르셨다. 숱한 ‘비화’도 남았다. 전경 소속 부대 중대장과 담당형사 1, 2, 3도 야음을 틈타 노래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낮에는 ‘생까던’ 열린우리당의 당직자들 중 일부도 새벽에 맥주를 들고 찾아왔다.
그래도 참전국 시민의 우울함은 덜 풀렸네
당원 ‘아라리’는 피를 토하는 절창을 선보였다. 아라리는 민요를 부르면서 “파병 반대 의원 힘내라”는 색다른 추임새를 넣었다. 수상히 여긴 당원들의 조사 결과, 그는 이중 당적자임이 밝혀졌다. 그의 노래에 맺힌 ‘한’은 파병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의 당원이라는 ‘사연’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널린우리당 당원들은 그를 제명 처분하는 대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 밖에도 널린 노래방은 숨은 인재를 여럿 배출했다. 끝없는 자장가 메들리로 좌중을 숙연케 한 아빠 가수 ‘박쏭’, 386 ‘관료’ 가수 서형원씨도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 엄청난 폐활량 하나로 동네를 압도한 ‘김박’은 기차화통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망사그물을 머리에 쓰고 나온 ‘크나비나’는 포토제닉상감이다. 그의 망사그물은 피스몹에서 썼던 실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어서 더욱 빛났다. 대항지구화행동 회원들은 노래책을 펴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시간 때우기’ 비법을 개발해 과업 달성에 기여했다. 당원들의 열의로 대장정은 완성됐다. 오구작작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생각보다 성공적”이라며 “몸으로 하는 행위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각자의 몫이 모여서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것에서 공동의 성취감을 느낀 것 같다”고 비결을 분석했다.
82시간의 성업은 끝났지만, 노래방은 폐업한 것이 아니다. 널린 노래방은 일주일에 한두번씩 서울 시내 모처에서 계속된다. 지난 7월29일에는 영화 을 상영하고 있는 서울 광화문의 씨네큐브 앞에서 널린 노래방을 열었다. 82시간을 울부짖어도, 군수물자를 싣고 이라크로 떠나는 배가 부산항에 정박해 있는 한, 참전국 시민의 우울함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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