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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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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양] 여∼름은 구∼조의 계절

등록 2004-06-23 00:00 수정 2020-05-02 04:23

대천해수욕장의 ‘수호천사’ 전달양씨…“수난구조 시스템 개발로 더 많은 인명 살리겠다”

보령= 글 · 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충남 보령시의 어업인후계자 전달양(46)씨에게 바다는 생존의 터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의 나이 스물둘에 바다에 뛰어든 뒤로 바다를 벗어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바다처럼 살맛 나는 공간은 없어 보였다. 바다는 고기 잡는 그의 모습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건져올리는 생활만 했다면 24년 동안 바다에서 지내는 것에 지겨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의 바다인생 24년은 수난구조 대원으로 지낸 세월이기도 하다. 이제 그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바다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비법을 전파하고 있다. 오랜 경험을 ‘획기적인’ 수난구조 시스템 개발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가 된 부인 김복남(44)씨는 결혼을 앞두고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업인으로 바다를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가족들은 부담스러워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믿음직한 모습에 끌려 결혼을 결심했는데, 신랑될 사람은 대뜸 “여름에는 홀로 지내는 것을 감수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수산자원을 보호하려고 해산물을 잡거나 채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름철 ‘금어기’(禁漁期)에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다른 일을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신랑 될 사람의 ‘딴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여름철엔 해수욕장에서 수난인명 구조를 위한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컨테이너 막사 생활을 하고 싶다.”

여름에 부인은 독수공방?

실제로 전달양씨는 컨테이너에서 여름을 났다. 수난구조나 자원봉사라는 단어조차 널리 쓰이지 않던 1980년, 그는 이때부터 대천해수욕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였다. 동양에서 유일하다는 특유의 패각으로 유명한 대천은 3.5km에 이르는 모래 해변이 일품이다. 부산 해운대, 강릉 경포대 등과 함께 국내 3대 피서지로 손꼽히는 대천에서는 1980년대에 해마다 10여명 이상이 익사사고로 숨졌다. 그의 구조활동은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됐다. 적어도 대천에 피서를 왔다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도록 하고 싶었다. 지난 1992년 대한적십자사 대천 해양구조대로 정식 출범하기 전까지 그를 비롯한 대원들은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 대기상태에 있었다.

아무리 부인이라 해도 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수난구조 활동을 차마 말릴 수는 없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1년 내내 쉴 새 없이 일해도 먹고살기 버거운 형편에, 여름철엔 자원봉사에 남편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근의 장항에서 식당을 운영할 때도 여름철에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고사리손의 아들이 심부름을 다녔고 친정 식구들이 일손을 보탰다. 부인의 타박에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청춘을 바친 일을 어찌 여름철 장사를 위해 그만둘 수 있냐”는 것. 한달에 보름이라도 식당 일을 거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수난구조 자원봉사는 1년을 사는 힘을 준다”고 말하며 “복 받을 일이기에 우리 가족에게 행복은 찾아올 것”이라며 부인을 설득했다.

대천에서 피서객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그에게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수난구조만큼은 국내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취득한 것은 스킨스쿠버 자격증이었다. 해산물을 채취하려고 취득한 것인데, 그것이 인명구조 활동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여기에 인명구조원·응급처치강사·소형선박조종사·심폐소생술·무선조종사·수상레저기구조정 등 수난인명 구조에 관련된 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구조활동이기에 무엇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준비한 것들이다. 그는 유·청소년들의 물놀이 사고가 전체의 70%를 웃돌기에 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생각에 라는 책자를 자비로 펴내기도 했다.

정부가 식비조차 소홀히 하다보니…

이렇게 ‘준비된’ 해양구조 대원으로서 바다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300여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준비된 대원이라 해도 촌음을 다투는 상황에서 몇초를 늦게 도착한 대가로 그동안 주검 120여구를 인양해야 했다는 것이다. 순간의 부주의에서 비롯되는 익사사고를 원천봉쇄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구조대원들이 사고 때마다 느끼는 자괴감의 원인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해양구조대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이 사고만 발생하면 “인명구조대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힐난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24년 동안 아무런 대가도 없이 대천 해변을 누비는 까닭은 조난자를 구해냈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자원봉사는 육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식비를 지원하는 것조차 소홀히 하다 보니 모두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올해 들어서야 행정자치부는 해수욕장의 시민 수상구조대에게 교통비와 식비를 지급하고 레저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숙식은 불편을 감수하면 그만이었지만 인명구조용 보트를 운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3만원어치 휘발유로 해안을 서너번 오가면 금세 바닥나고 말았다. 바다를 아는 그이기에 해법도 바다에서 찾았다.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방향만 잡아주면 저절로 배가 이동하도록 해서 기름을 아꼈다. 아무리 아껴도 한달에 300만원 안팎씩 드는 비용은 여럿이 함께 운영하는 모터보트 한대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정말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렇게 시간과 돈을 내놓을 수 있을까. 국가의 녹을 받는 사람이라면 국민의 인명을 보호하는 것에 매진하는 게 당연하다. 이에 비해 생업을 유보하면서 한철에 수백만원의 자원봉사 경비를 스스로 조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의 활동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모략도 있었다. 불편한 심기야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지만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수난구조 전문가로 자리잡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렇게 몇년을 보낸 지금, 그에게 이권 개입 운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젊음을 묻은 대천 해변이 그를 대신해 답변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3년 전 해양구조대장 자리를 내놓은 뒤 해난인명구조연구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수난구조 시스템 개발에 뛰어들었다. 귓가에 맴도는 오열하는 가족들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널리 알리려는 수난구조 시스템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래서 관계기관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제안은 한마디로 해수욕장의 위험선 경계를 알리는 깃발에 ‘번호’를 표시하자는 것이다. 현재 위험선에 100m 간격으로 설치된 40여개의 깃발은 위험 신호 구실만 할 뿐, 구호활동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일렬번호를 표기하면 정확한 위치 정보를 이용해 긴급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은 당연하다. 이미 설치돼 있는 깃발에 번호 표시만 추가하면 되기에 예산도 그리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부표에 번호를 답시다!

만일 깃발에 번호를 표기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안전요원을 효과적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대천해수욕장만 해도 연간 1천여만명의 피서객이 찾는데, 하루에 활동하는 수난구조 전문요원은 고작 20여명이다. 이들이 좌표도 없는 사고 지점을 찾아가는 동안 사고자는 속수무책의 상황에 내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만한 그의 제안에 대해 경찰청과 해안경찰청 등은 실용화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당 기관의 소관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수난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실이다. 그럼에도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을 어디에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생명은 모든 기관이 해당 업무로 여겨야 하지 않은가.”

대천해수욕장의 수호천사가 되고 싶은 전달양씨.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수난구조 시스템에 적용되길 바란다. 그에겐 해변에 설치된 가로등도 수난구조 장비로 보인다. 예컨대 가로등에 긴급 비상벨이나 인터폰을 설치해 구조본부에 연결하면 빠른 출동을 돕고, 해상의 일기 상태가 불순할 때는 수영금지 홍보기를 걸어놓아 경각심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무 튜브가 뒤집혀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끈으로 손목에 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충분히 준비운동을 하고 얼굴에서 허벅지까지 물을 묻힌 뒤 바다에 들어가, 신체적으로 무리가 없도록 한 시간가량만 있는 게 좋다. 어린이 구명조끼는 반드시 허벅지 사이로 안전고리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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