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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민중’ 화폭에 ‘부활’

등록 2004-02-27 00:00 수정 2020-05-03 04:23

잇따라 열리는 민중화가들 전시회

백지숙/ 미술평론 · 전시기획가

2000년 작가 주재환의 개인전, ‘이 유쾌한 씨를 보라’(아트선재센터)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1980년대 ‘현장’을 주도했던 민중미술의 역사에서 보자면 충분히 그렇다. 그러니까 그의 전시는 민중미술이 한국 제도미술의 변방에서 전혀 따로 놀거나 혹은 제도 안으로 무장해제하고 일거에 투항하는 경로 이외에도, 새로운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주재환은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견해 혹은 삶의 지혜와 미술의 유머가 결합된 특유의 어법으로 우리의 빈약한 현대미술을 자극했고, 나아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돼 국제미술의 현장에서 그 효과를 시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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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신학철의 개인전, ‘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은 또 다른 각도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학철의 개인사와 한국현대사가 함께 녹아 흐르는 20여m가량의 대작 가 웅변하듯, 그의 작업은 새로움이 아니라 어떤 오래됨이 힘을 받을 때 생겨나는 큰 울림을 들려준다. 신학철은 민중미술의 시각과 어법을 견지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허방함을 방증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이를 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긴 암중모색의 시기를 거쳐서 나온 이 두 작가의 개인전은 공교롭게도 환갑이라는 작가 생애의 결절점과 맞물려 있다. 환갑의 오랜 의미대로 이들의 작업은 민중미술의 역사를 회고하게 해주는 한편, 요즈음의 환갑이 그렇듯이 민중미술이 제기했던 어젠다가 앞으로 어떤 결실을 얻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자생적인 문화 활동으로서 예술과 사회 사이에서 싹튼 민중미술의 나이는 이제 사람으로 치자면, 서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변화와 성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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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을 포함해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민중미술의 범주 안에서 성장해온 작가들의 개인전이 연달아 열리고 있는 현상은 그런 각도에서 바라볼 만하다. 간단히 추려보아도 손장섭·강요배·이종구·최민화·김정헌이 이미 전시를 열었고, 민정기는 전시를 앞두고 있다. 물론 이들의 개인전이 잇달아 열리는 것은 ‘전업’ 작가들의 관례적인 행위가 겹쳐서 생긴 하나의 우연일 수 있다. 또 이들 작가 사이의 서로 다른 차이를 살피는 것이 단일한 공통점을 찾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목’ 현상을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유의미한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담론이 갖는 현재적이고 미래적인 무게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을 제대로 해석하는 작가론과 작품론의 출발점은, 이들 작업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풍경과 역사라는 키워드를 ‘마인드맵’ 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다. 이들의 작업을 넓게 포획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역사적 풍경화로서 풍경의 잠재적 의미, 다른 한편으로는 풍경이 있는 역사화로서 역사의 현존을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이들의 작업이 결국은 풍경을 명사에서 동사로 바꾸게 하고 역사를 텍스트(text)에서 프랙티스(practice)로 다시 보게 한다면, 나아가 그러한 무게중심의 이동은 한국 현대미술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경우 이들 작가의 성찰적 시야가 갖는 폭과 깊이는 비로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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