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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 이번엔 화교학교로?

등록 2003-10-29 00:00 수정 2020-05-02 04:23

중국 열풍 타고 사교육비 고충 더는 ‘대안학교’로 자리잡아… 입학하기 쉬운 지방으로 역이주도 늘어

“융사이즈쭤페이지!”(用色紙做飛机·색종이로 비행기를 접으세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 조잘대던 아이들이 종이를 접기 시작한다. 천장에는 중국의 각 도시 이름을 적은 종이등불이 걸려 있고, 벽에는 대만의 민담이 붙여져 있다. 모든 대화는 중국어로 이뤄지고, 한국말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간혹 들릴 뿐이다.

지난 10월23일 오후, 수도권의 한 화교학교 6학년 공작시간. 유창한 중국어로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몇살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스얼쑤이”(十二歲·열두살입니다)라는 대답이 자연스레 돌아올 만큼 중국어에 더 익숙해 보이지만 사실 이 반 학생 13명 가운데 8명은 ‘토종’ 한국인이다.

중국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중국어가 제2외국어의 ‘중심’이 되자, 화교학교가 한국 학생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부 초·중등교육법을 근거로 마련한 지침에 따르면, 화교학교는 다른 외국인학교와 마찬가지로 부모 중 한명이 화교이거나 외국 국적 소유자, 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 소지자, 외국에서 5년 이상 체류한 한국인 등이 입학 대상이고, 내국인은 입학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절반 이상… 유치원부터 시작

하지만 자녀가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일찌감치 익혀 ‘중국통’이 되었으면 하는 학부모들의 고집으로 화교학교는 한국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학교로 바뀌는 중이다.

현재 전국에는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 27곳과 4곳의 중·고등학교 등 모두 31개의 화교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중국어에 전혀 기초가 없는 어린이는 소학교의 유치부 과정을 먼저 거쳐야 소학교 입학이 가능하다.

화교학교의 새학기가 시작한 지난 8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기도 한 화교소학교의 유치부에는 20명 정원에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화교는 8명뿐, 나머지는 한국 어린이였다. 이 학교 관계자는 “우선 화교 어린이와 외국 국적을 가진 어린이를 받은 뒤 학교 자체적으로 마련한 규정에 의해 화교 사회에서 추천을 받은 한국 어린이 등도 입학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그 이외에 해당하는 학부모들에게 입학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뺐다”고 털어놨다.

새학기가 시작된 지 두달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입학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문의전화는 이어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서너살된 자녀를 유치부에 입학시킬 수 있느냐는 문의부터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편입 문제 등 상담전화가 1주일에 대여섯통은 걸려온다”며 “3~4년 전부터 한국 학생들의 문의가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또 다른 화교학교는 한 학년 3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 국적의 ‘토종’ 한국인이다. 특히 서울에 가까운 지리적 여건 덕에 서울에서 통학하는 한국학생들이 많다. 일부 학부모들은 서울 강남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마련해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손수 차를 몰고 자녀를 통학시키다 지친 학부모들은 아예 이 지역에 터를 잡기도 한다. 이 학교 2학년 ㅂ(7)양의 부모는 외동딸의 교육을 위해 지난해 학교 부근으로 이사했다. “서울에 있는 화교학교는 교육 당국의 감시가 심한데, 지방은 비교적 덜하더라고요. 지난해까지 2년 정도 직접 운전해서 통학을 시켰는데 너무 힘들어서 서울 집을 세놓고 학교 근처로 이사했어요.” ㅂ양의 어머니는 “남편이 서울로 직장을 다니느라 피곤해하지만, 딸 교육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털어놨다.

이처럼 한국 학부모들이 ‘불법’을 감행하면서, 두 시간 가까운 출근길을 참아내며 화교학교를 고집하는 이유는 저렴한 학비에 비해 교육효과가 뛰어나다는 데 있다.

화교학교는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한 학기에 100만원 안팎의 수업료를 받아 학교 재정을 충당한다.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전혀 없는 탓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외국어 하나 ‘제대로’ 가르치려면 한달에 30만원은 족히 드는 한국 부모의 입장에서는 중국어로 하루 5시간 가까이 수업을 하고 수영과 서예, 컴퓨터 등의 특별활동까지 꼬박꼬박 시켜주는 화교학교는 그야말로 ‘고마운’ 존재다.

한 학기 학비 100만원에 특별활동까지

딸을 7년째 화교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김아무개씨는 사교육비에 대한 고민 끝에 화교학교를 선택했다고 고백한다.

“큰아이는 일반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다른 애들처럼 피아노학원에 글짓기학원, 태권도학원 등에 보내다 보니 돈은 돈대로 들고 애도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렇다고 내 아이만 안 보낼 수도 없고…. 두살 터울인 작은아이는 외국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 근처에 있는 화교학교로 찾아갔죠.” 김씨는 “한 반에 10명 안팎이어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세심하게 돌봐주는 편”이라며 “딸아이도 꽤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화교학교는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이곳을 졸업하고 일반 한국 학교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일부 학부모들은 화교학교 입학 연령이 만 6살인 점을 이용한다. 5살 때 자녀를 유치부에 입학시켜 화교소학교에서 1학년이나 2학년까지 다니게 한 뒤, 한국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시키기도 한다.

아예 화교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이나 대만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드물지 않다. 학부모 ㅇ(37)씨는 화교소학교 5학년에 다니는 딸(11)이 졸업하면 중국으로 유학을 보낼 계획이다. 한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딸아이가 치러내야 할 ‘전쟁’ 같은 과정이 상상만 해도 안쓰럽고, 여기서 사교육비로 들어갈 비용이 유학 비용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ㅇ씨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엄마들의 고민도 커진다”며 “여유가 좀 있는 집들은 유학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학부모들은 화교학교에서도 특유의 열성적인 교육열을 발휘한다. 화교들은 부부가 같이 음식점을 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기 어렵다. 경제적인 문제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중국어를 모르면서도 일일이 사전을 찾아 아이 숙제를 다 점검해, 한국 아이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화교 학생들보다 오히려 더 빠른 편이라고 화교학교 관계자들은 귀띔해준다.

그러나 한국학생들이 많아지면서 화교학교에도 ‘치맛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경기도의 한 화교학교 관계자는 “매년 거액의 기부금을 내겠다는 학부모도 있고, 경쟁적으로 학원을 보내기도 한다”며 “화교 학생들과 위화감이 생길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우리말과 글을 배울 시기에 제2외국어를 먼저 배우는 데 따른 부작용도 존재한다. 화교학교에서 초등·중등·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친 정아무개(28)씨는 “한국어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웠다”고 털어놓는다. 집에서 한국어를 쓰기는 하지만, 한국어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진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외국어를 잘 배웠다는 장점은 있지만,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어는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정도만 배웠을 뿐이지, 논리적인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었어요. 대학에서 학과공부를 따라잡기가 너무 버겁더군요.”

정씨는 “화교학교에 같이 다닌 한국 친구들을 봐도 중국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진로 선택의 폭을 오히려 좁혀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교학교 열풍은, 공교육은 믿지 못하되 사교육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학부모들과 재정에 항상 쪼들리는 화교학교의 처지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어느 한쪽도 감히 비난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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