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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일은 ‘파업 해결사’인가

등록 2003-07-11 00:00 수정 2020-05-03 04:23

공인 아니면서 대형 파업마다 개입했다는 논란… 노정 중간에서 ‘중계방송’한 것은 분명

철도노조 파업 이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와 부산지하철노조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시끌시끌하다. 지난 7월2일 글 하나가 올라온 뒤부터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강한규 지도위원이 올린 ‘설동일 민주공원 관장께 드리는 공개서한’이란 제목의 글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여러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강씨에 따르면, 설 관장은 노무현 정부들어 터진 세 가지 대형 파업, 즉 화물연대·부산지하철노조·철도노조 파업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강씨는 “공인도 공식적인 지위를 위임받은 사람도 아니고 누가 인정해준 것도 아닌데 노정 양쪽을 오가며 해결사로 나선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냐”며 설씨 본인의 해명을 촉구했다.

파업 직전에 간부 이탈한 이유는?

‘일부 시민단체 거간꾼들’이란 글을 올린 이는 설 관장을 “파업의 파괴자”로 빗대면서 “파업에 개입하도록 누가 무슨 자격을 주었는가”라고 물었다. ‘민주노조2’란 이름을 쓴 사람은 “(설씨가) 노무현 정권의 사수를 위한 선봉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론’이란 글쓴이는 “(부산지하철노조) 승무지부의 이탈이 파업 실패의 결정적 이유였느냐?”며 “문제를 엉뚱한 곳에서 찾지 마라”고 반박했다.

과연 설씨는 누구인가? 서울대 농대 휴학 중이던 지난 1981년 부림사건에 연루돼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그는 94년에 ‘노동자를 위한 연대’(노동연대)를 결성해 사무처장을 맡았다. 노동연대를 이끌면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 등 부산·경남지역 변호사들과 연결해 노동상담 활동을 펴는 등 노동자 권익 향상에 나섰다. 특히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이 노동연대의 노동상담소장을 맡았을 정도로, 설씨는 현 정부와 깊숙이 인연을 맺어왔다. 2002년 5월부터는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주공원 관장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설씨는 노무현 정부 들어 터진 세 가지 파업 국면에 어떻게 얽혀 있고, 또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지난 6월23일 밤 부산지하철노조 파업 직전 상황부터 보자. 부산지하철노조는 다음날 새벽 4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하기로 하고 비상총회를 갖고 있었다. 이때 설 관장은 8명으로 구성된 시민중재단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시민중재단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 지하철노조 집행부와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새벽 4시가 가까워질 무렵 부산지하철노조 박아무개 승무지부장이 갑자기 파업 불참을 선언하고 대열을 이탈했다. 이에 따라 파업 돌입은 한순간에 무산됐다. 강씨는 “파업 선언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설씨가 ‘내가 별로 할 역할이 없네’라면서 비상총회장을 빠져나갔는데, 바로 이어 박 지부장이 이끄는 승무지부가 조직적으로 철수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설씨가 어느 누구로부터도 공식적인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개입해 정치적으로 입장이 같은 박 지부장을 퇴각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지부장은 “파업에 불참하기로 한 것은 어떤 다른 세력을 위한 것도, 누구의 사주를 받아서도 아니며 순수한 나의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진실은 무엇일까? 설 관장은 “당시 조합원들이 시민중재단의 출입을 막았다. 그때 박 지부장이 중간에 나서줘서 노조 총회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며 “그러나 박 지부장의 행동과 나를 결부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해명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파업 무산 이후 박 지부장과 설 관장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고 있다.

설 관장은 이에 앞서 지난 5월 터진 화물연대 파업 과정에서도 등장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당시 파업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에 설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화물연대가 속한 운송하역노조 김종인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운송하역노조쪽은 “분위기가 격앙돼 있어 어렵다”고 했으나, 설씨가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결국 부산에서 김 위원장과 설씨가 만났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쪽 사람 몇명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진다. 운송하역노조 관계자는 “서울에서 노정간 공식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설씨가) 특별한 것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고 (중앙협상에서와) 같은 내용을 얘기한 것으로 안다. (설씨가) 나름대로 역할을 해보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파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씨는 “화물연대 파업 때 설씨 같은 청와대 비선라인들이 움직이면서 중구난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와 사태수습에 방해만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 “협상 권한 맡긴 적 없다”

파업 국면에서 항상 나타난 설씨는 최근 철도파업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건 파업 지도부가 설씨를 중간채널로 삼고 청와대쪽과의 협상 시도에 나섰다는 점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청와대와의 통로가 막히자 노조쪽에서 설씨를 통해 청와대쪽 의사를 타진해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집행부쪽도 “(설씨를 통해) 정부가 제시한 ‘선 복귀, 후 대화’의 내용이 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교섭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 정부가 강경한지, 교섭의 전제조건은 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설씨를 청와대와 연결되는 끈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내비친 셈이다. 실제로 파업 철회 전날 밤, 파업 지도부와 설씨가 전화통화를 하고 파업철회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철도노조쪽은 “그러나 대세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설 관장이 개입한 것은 아니다. 더 이상은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노동문제 공식 조정라인에 있지 않은 설씨의 일정한(?) 개입을 청와대쪽은 알고 있었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설씨에게 노정 협상의 어떤 권한도 맡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파업 때마다 설씨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와대쪽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설씨의 막후 역할을 묵인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몇 가지 파업이 터졌을 때 설씨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적은 있다. 철도파업 철회 전날 밤 설씨가 ‘오늘 밤 안에 파업을 철회한다는 보도가 맞냐’고 우리쪽에 물어왔다”며 “그러나 청와대쪽 비공식 라인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설씨는 다양한 정보수집 채널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는 오히려 “노동계 일부에서 설씨를 (파업 패배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설씨가 파업 해결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오더를 받았다거나 정부쪽의 보따리를 들고서 파업 지도부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닌 듯하다. 설씨는 “청와대로부터 어떤 부탁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그가 중간에서 이른바 ‘중계방송’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강씨는 “파업 지도부에 접근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노조에 파고들 수 있는 설씨를 활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역시 설씨를 우회로로 삼아 해결을 도모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와 다리를 놓아달라고 파업 지도부가 요청했느냐는 물음에 설씨는 “그걸 꼭 말해야 하냐?”고 대답했다. 설씨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갑갑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파업상황을) 알아본 것뿐”이라며 “국가도 노사관계도 다 잘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세 파업 모두 부산지역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돼 있었고, 노동운동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파업 지도부에 많았다고 덧붙였다. 화물연대 조직은 부산지역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고, 부산지하철은 물론 철도노조 지도부에도 부산 출신이 많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맥 역시 부산지역과 깊이 관련돼 있다는 점도 설씨가 파업 국면에 나선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원해 ‘노무현 구하기’ 나서

물론 과거에도 파업이 터지면 강경대치 국면에서 제3자가 막후 해결사를 자처해 수습에 나서곤 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박아무개씨가 주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노정간 극한대립으로 대화조차 불가능할 때 막후 교섭채널은 필요하다. 그러나 강씨는 예전의 노정간 막후 중재자와 이번 설씨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조흥은행노조 파업 등 줄파업이 계속되는 와중에 부산지하철 파업까지 터지면 노무현 정부가 자칫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설씨가)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나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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