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 년 만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논과 밭이 있던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북동쪽 약 15만㎡ 규모의 묵논(오래 내버려둬 거칠어진 논)이 습지 생태계로 바뀌었다. 이곳은 멸종위기종 독미나리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확인됐다. 이 사실은 2008년 한겨레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현장을 찾은 기자는 “골풀과 방울고랭이, 물꼬챙이가 빽빽이 돋아 있는 곳에 한 걸음을 내딛자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고 기록했다.

2025년 11월 생명다양성재단의 유해생물 명예회복 캠페인을 위해 성민규 연구원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복원 사업도, 이식도, 관리도 없었다. 농촌 인구 감소 등으로 경작이 중단되면서 사람의 손길이 끊긴 것이 전부였다. 이후 금개구리·맹꽁이 등 보호종 양서류와 다양한 습지 조류가 확인됐고, 지금도 습지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특별하지도 않다. 환경영향평가 허위 작성 논란 속에서도 2016년 골프장 공사가 강행되며 사라진 김포공항 주변 습지도 묵논이었다. 한국공항공사가 예비부지로 사들인 뒤 그대로 두었고, 그 결과 금개구리·펄조개·대모잠자리 등을 품는 수도권 최대 습지로 자리 잡았다.
자연이 스스로 풍성해지는 힘을 경험하고 이를 지지하는 흐름을 재야생화(리와일딩)라고 한다. 유럽 등에서는 이미 강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순수한 자연과 훼손된 자연, 토종과 외래종을 가르는 사고가 강하고, 환경운동 역시 보전과 복원을 중심에 두고 있어 이런 접근은 아직 낯설다. 최근 ‘새야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환경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한겨레21은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생명다양성재단(이하 재단)의 성민규 연구원을 2026년 3월24일 만났다.
—그간 재단이 전면에 내세운 ‘재야생화’ 기조가 ‘새야생’으로 좀더 선명해진 것 같다.
“여전히 외국에서 들어왔거나 대발생한 동식물은 ‘외래종’ ‘생태교란종’으로 악마화하며 ‘박멸해서 원래 것을 지키자’는 서사가 일반적이다.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된 환삼덩굴만 해도 인간에 의해 교란된 토양을 덮어 토양 침식을 막고 많은 생물의 서식처가 된다. 새들이 그 씨앗을 먹고, 네발나비는 환삼덩굴을 숙주로 삼는다. 사람이 지구환경을 바꿔놓은 인류세에 우리는 새롭게 들어온 동식물들을 적대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리와일딩에서 ‘리’(re)라는 말이 특정 과거 시점이나 지켜야 할 특정 생태계가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자연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과거의 자연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이미 폐허가 된 공장지대나 개발지역에도 더 많은 자연이 돌아올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 조건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게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 11월 생명다양성재단의 유해생물 명예회복 캠페인을 위해 김산하 대표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년 11월 재단에서 제1회 ‘유해생물 명예회복 포럼’을 열었다. ‘나는 해충의 명예 회복을 바란다’는 구호가 인상 깊었다. 기존 보전 운동과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른 것 같다.
“기존 보전 운동은 일정한 경계 안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요새화한다. 하지만 재야생화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운동이다. 보호종을 지정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가 스스로 작동해 풍성해지고 생물다양성이 높아지도록 사람은 한발 물러서서 지지하고 개입을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경우 멧돼지·고라니·두더지처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을 법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유해조수로 정하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최대 수십만원의 포상금까지 걸어 포획을 장려하고 있다. 재야생화가 활발한 유럽에서는 농촌 인구 감소로 인간이 후퇴하자 늑대가 자연스럽게 되돌아왔다. 농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사냥으로 개체수를 줄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동시에 환경단체·정부·목축업자·지역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를 훈련하거나 늑대가 싫어하는 냄새를 활용하는 등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공존할지를 논의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처럼 자생종까지 포함해 유해동물을 분류하고 목록화해 관리하는 사례는 국제적으로 드문 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호랑이·표범·멧돼지 등 ‘해수’ 구제 사업에서 시작됐다. 이후 산림이 회복되자 개체수가 늘어난 고라니·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농민들과 갈등을 빚자 유해동물로 지정해 사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조 중 하나가 새마을운동의 ‘망령’을 떨치자는 것인데.
“농촌 근대화 운동인 새마을운동은 길을 새로 내고, 계곡에는 사방댐을 만들고, 하천은 직선으로 펴는 방식으로 생물다양성이 높은 자연경관을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여겨 깔끔하게 ‘정비’하는 사업이었다. 그런 방향성이 지금처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한국의 자연환경을 옭아매고 있다. 그래서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 정신을 비틀어 해방·공존·연결을 목표로 잡았다.
근면한 개발을 대신할 해방 사업은 ‘현천리 묵논습지’를 비롯해 전북 새만금 화산습지처럼 바다를 막은 뒤 그대로 두었더니 저절로 풍성한 서식처가 된 사례들을 조명하는 일이다. 재단은 2024년 11월 ‘야생신탁’이라는 이름으로 1492명의 모금을 통해 경기도 파주 408평의 땅을 사들였다. 재야생화 원칙에 따라 인간의 개입 없이 방치해 자연이 풍성해지도록 하는 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2025년 꾸려진 유해동물외교단 활동처럼 ‘유해동식물’로 불리는 대상의 생태적 가치를 재조명해, 낙인과 박멸 대신 공존을 모색하는 사업도 이어간다. 또 새마을운동 기간 전통적인 마을 숲과 당산나무 등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대의 약 80%가 파괴됐다. 연결 프로젝트는 이러한 정신문화적 유산을 발굴하고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2026년 3월 시작된 생명다양성재단의 새야생운동 포스터. 생명다양성재단 제공
—미국·유럽 등에서는 포식자나 대형 초식동물을 도입하는, 더 적극적인 재야생화도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초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토종을 복원·증식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재야생화 운동과는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 재야생화는 특정 종이 아니라 사라진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1995년 미국 옐로스톤에서 늑대를 재도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후 사슴들이 물가에서 풀을 뜯지 못하게 되면서 물가 식생이 회복되고 비버가 돌아왔다. 비버가 만든 댐으로 습지가 넓어지고 물고기가 풍부해지는 연속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이렇게 최상위 포식자의 도입이 먹이사슬 전반에 영향을 미쳐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현상을 생태학에서는 ‘먹이 폭포 효과’라고 한다.
유럽 재야생화의 시초로 꼽히는 네덜란드 오스트파르더르스플라선(OVP) 사례도 있다. 간척지 위에 자연스럽게 습지와 초지가 형성됐고, 1980년대 여기에 대형 초식동물이 도입됐다. 소(헤크 소), 말(코니크 말), 사슴(붉은사슴) 등이 풀려났다. 전통적인 종 보전 관점에서 보면 낯선 도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기능은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초본을 먹고 배설물을 남기면서 토양이 비옥해지고 식생이 회복되며 생물다양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는 분류군을 도입해 자연이 완전히 작동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능동적 재야생화’라 한다. 새야생운동은 방치를 통해 생태계 잠재성이 살아나도록 하는 ‘수동적 재야생화’를 중심으로 하지만, 앞으로는 능동적 재야생화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2024년 11월 생명다양성재단의 야생신탁 운동 포스터. 생명다양성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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