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부터 개펄을 누비는 시민생태조사단… 새만금 방조제가 열리는 날을 위한 ‘복원 처방전’이 될까
▣새만금=글·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전북 김제시 청하면 만경다리 인근에서 작은 식당 ‘청송회관’을 운영하는 김흥자씨는 매달 첫쨋주 일요일 저녁에 어김없이 예약 손님을 맞는다. 적게는 20여 명에서 많게는 60여 명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식당을 독차지해도 자리가 모자라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남편(고 권오군씨)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일행을 맞았는데 오랫동안 당뇨로 고생하던 남편이 지난달 중순 세상을 떠났다. 권씨는 일행에게 ‘화채 아저씨’로 불렸다. 매년 여름이면 일행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회원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새만금 지역 해안선을 따라 걷는 행사에 참여한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만경벌을 걷던 일행은 화채나 미숫가루를 한 양동이씩 만들어 달려오는 권씨를 만나곤 했다.
최소한 10년은 해보자고 다짐
“남편 상중에 한 분이 부근을 지나다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일행 가운데 몇 분이 문상을 다녀갔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몇 분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으며 부의금을 전달받기도 했다.” 김씨는 순간 감정이 복받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새만금 인근에 살면서도 지역의 생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행들이 식사를 한 뒤에 생태조사 결과를 토론하는 모습을 언뜻언뜻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한 환경단체에 회비를 꼬박꼬박 내던 남편은 일행의 활동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차츰 김씨도 일행을 통해 새만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행은 사람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새만금 일대를 누비고 있다. 지난 2003년 12월 첫째 주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일행 가운데는 지난 2003년 무려 65일 동안 부안 해창개펄에서 서울까지 이어진 종교인들의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행렬을 따랐던 이들도 있다. 그해 6월 새만금 4호 방조제 물막이 공사는 급작스럽게 완료됐다. 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포클레인을 온몸으로 막아도 보고 삽으로 방조제를 파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생태계 대량학살이 급격히 벌어질 것임을 알기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자연의 빈자리’를 기록하고자 생태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새만금을 사랑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지속적인 모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생태조사단 물새팀의 김경원(환경운동연합 습지해양팀장)씨는 “환경 문제가 ‘개발이냐 파괴냐’ 식의 흑백논쟁을 거친 뒤 아무런 깨달음도 없이 슬그머니 잊혀져버리곤 한다”며 “새만금 갯벌이 보전되길 바라는 많은 이들이 새만금을 잊지 않고 지속적인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최소한 10년간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회원은 현장에서 자연의 ‘울음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한 평범한 시민들이다. 물의 염도를 분석하고 필드스코프(철새 탐조용 망원경)를 살피는 것보다 머리띠를 두르고 깃발을 들어 시위를 하는 게 익숙했다. 하지만 대량학살의 전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생태환경 전문가들의 침묵도 깊어가고 있었다. 어쩌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학계의 공동조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더라도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차피 누구라도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개펄에 발을 내딛고, 개펄을 중간 기착지로 삼은 새들이 헤매는 모습을 관찰해야 했다. 생태조사단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개펄을 찾아왔다. 지난 3년 동안 시민생태조사단에 참가했던 사람은 800명을 웃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새만금 갯벌에 기대어 사는 생명체들과 지역 주민들의 변화를 기록하고 자료집을 만들어 새만금 갯벌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보다 성실하고 꾸준한 활동으로 새만금 갯벌을 ‘재발견’하는 셈이다.
이미 물끝선의 100m 지점까지 육지로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추적해 기록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배반의 참회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 끝물막이 공사를 막지 못한다 할지라도 ‘역간척’을 위한 자료로 삼을 만하다. 전남 보성에서 동생 조현두씨와 함께 새만금을 찾은 저서생물팀의 조성진씨는 조사활동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매달 생태조사단으로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개펄 조사를 하면서 개펄이 변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면 할수록 새만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새만금은 생명의 호흡기를 떼지 않았다. 지난해 끝물막이 공사 뒤 새만금은 사회적 이슈에도 끼지 못할 만큼 가냘프게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생태조사단원들도 생명을 기록하기보다는 죽음을 증언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초창기부터 조사활동을 벌인 회원은 생명체가 넘실대던 개펄을 ‘추억’으로나마 기억할 수 있다. 그들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른 생명체를 보여주는 개펄을 보았고, 시베리아길에 새만금을 중간 기착지로 삼은 도요새떼가 연출한 장관을 기억한다. 그때마다 생명체의 이름을 부르며 자연과의 합일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생태조사단은 새만금의 미래를 무엇으로 개척하려는 것일까. 물새팀에 속한 김동철(광고디자인)씨의 연간 다이어리 매달 첫쨋주 주말 칸은 모두 ‘새만금행’이라는 글씨로 채워져 있다. 1월6일도 부인 이혜민씨와 함께 영등포역에서 장항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 1년가량은 새만금에 다녀온 월요일이면 몸이 찌뿌드드했다. 하지만 요즘은 새만금의 힘으로 한 달을 버틸 정도로 ‘내공’을 튼실히 다졌다. 오후 6시 무렵에 충남 서천군 금강 하굿둑 인근에 있는 서천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에 들어서자 ‘환경지기’들이 부부를 반겼다. 이미 서울과 대구, 전남 보성 등지에서 거센 눈보라를 뚫고 달려온 이들이었다.
“우리 부부는 열차를 이용해 오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승용차를 이용한 몇몇 회원은 눈보라를 뚫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궂은 날씨 때문에 모인 사람이 평소보다 적기는 하지만 생태조사를 포기할 순 없다.” 김동철씨와 함께 20여 명의 회원이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새만금으로 내달린 저력 덕분에 생태조사 워크숍을 열 수 있었다. 토요일은 지난달 조사 결과를 정리해 발표하고 일요일은 팀별로 현장을 누빈다. ‘정예 회원’들이다 보니 경험담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밤늦도록 조사단 활동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다음날(7일) 이른 아침 물새·저서생물·문화 등 세 팀으로 나뉘어 생태조사를 떠났다. 겨울철이라 식물팀은 별도로 구성하지 않았고, 조사 내용도 바꿔야 했다.
실뱀장어잡이를 포기한 어민들
금강 하구 군산 앞바다에서 고군산군도의 신시도 등 섬과 변산반도를 잇는 총연장 33km의 방조제를 구축해 4만ha(1억2천만 평)를 매립하는 새만금 간척사업. 그것이 파괴와 멸종의 전조라는 사실은 공구가 시작되는 비응도 일대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이미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물끝선의 100m 지점까지 육지로 바뀌었다. 저서생물팀의 조현두씨는 “바닷물의 염도가 평균 35퍼밀인데 새만금은 10퍼밀 아래로 떨어졌고 0퍼밀로 민물화된 곳도 있다. 한 번 빠지면 옴짝달싹 못하던 개펄이 이제는 뛰어다닐 정도로 마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저서생물팀은 개펄 생태계에서 이뤄지는 죽음을 기록하는 대신 비응도에서 심포항까지 이동하며 선박 수를 헤아리고 형태를 살폈다. 군산시 회현면 월연리 포구에 정박한 어선에서도 변화 양상을 읽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일본 방식의 소형기선 저인망(일명 고대구리) 새우잡이 트롤어선 수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필리핀 앞바다에서 출발해 2년여에 걸쳐 새만금 개펄에 찾아오는 실뱀장어를 잡으려고 배와 그물을 손질했다. 하지만 개펄이 마르면서 실뱀장어들이 심해에 갇혀 있기에 어민들로선 다른 생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런 양상은 동진강 유역인 부안군 문포 앞바다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민들은 실뱀장어잡이 준비로 겨울을 보내지 않는다. 15년째 문포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최은영씨네도 올해는 실뱀장어를 잡는 그물을 손질하지 않았다. 겨우 망둥이를 건져올려 건조하거나 신시도·야미도 일대까지 나가 주꾸미나 갑오징어·소라 등을 잡는 데 만족해야 한다. “실뱀장어를 잡는 그물을 손질하는 데 200만~300만원이 들어간다. 그 돈을 투자하면 봄철에 수천만원씩 벌 수 있었다. 그런데 끝물막이 공사 뒤 실뱀장어를 잡을 수 있는 지역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제야 새만금 일대의 식당에 망둥이 조림이 밑반찬으로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개펄이 마르고 수온과 염도·퇴적층 등의 변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바뀐 어종이 식탁에 오른 것이다. 그나마 어선을 활용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미 일부 지역은 아예 어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범한 어민으로 살다가 마흔 넘어 환경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저서생물팀의 여길욱(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씨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산 지식들을 조사단원들에게 제공해준다. 그는 “군산시 하제포구 일대는 수위가 낮아져 고기잡이를 할 수 없고, 내초도 부근은 물 높이가 20cm 아래로 떨어졌다. 개펄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있지만 어업을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저서생물팀이 바다 생태계의 변화를 살피는 동안 김동철·이혜민씨 부부가 속한 물새팀은 내초도에서 동진강 유역에 있는 새들의 수를 세고 동영상으로 흔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물새팀은 생태조사 초기에 20여 지점에서 도요·물떼새 등의 행로를 파악했는데 지금은 10여 곳에서 수를 헤아리고 있다. 해질 무렵 수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연출하는 황홀한 군무를 보는 것은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됐다. 새들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새만금 개펄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천혜의 도요새 안식처였던 옥구염전이 사라진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곳이 2004년 봄에 새우양식장으로 바뀌면서 도요새는 새만금을 잊어야만 했다.
그래도 도요·물떼새들은 새만금의 ‘추억’을 유전적으로 제거하지 못했다. 적당히 쉴 만한 자리를 찾아 분주히 이동해 휴식을 취한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쯤 될 것으로 짐작되는 날씨에도 물새팀원들은 필드스코프를 들여다보고 계수기를 누른다. 필드스코프의 방향을 옮겨가며 혹부리오리·청둥오리 등 오리류와 기러기·갈매기 등의 수를 불러주면 한 조를 이룬 팀원이 수첩에 받아 적는다. 눈짐작으로도 개체 수를 오차 없이 파악하는 오동필(군산대 환경학과 대학원생)씨는 “지형의 변화에 따라 새들의 분포가 달라지고 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도요새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남아 있는 새들도 무엇을 먹고 살지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주민들 공동체 문화도 흔들려
어쩌면 개펄을 안식처로 삼은 생물종보다 위태로운 게 사람들의 처지일지 모른다. 평생 개펄에 의지해 1년 내내 일감을 놓지 않던 주민들은 오갈 데가 없어졌다. 문화팀으로 주민들의 삶을 추적하는 김경완(목포대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생)씨는 “요즘 주민들이 일당 3만원짜리 ‘공공근로’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등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흔들리고 있다”고 귀띔한다. 개펄의 환경·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동안 사회문화적 토대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개펄에서 건강하게 지내던 많은 어른들은 갑자기 일이 없어지자 몸과 마음의 건강도 함께 잃었다. 그래서 군산시 내초도 온누리교회 임춘희 목사는 노인복지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방조제 공사는 개펄의 생물종과 함께 주민의 행복추구권도 삼킨 셈이다.
갈수록 새만금은 외로움에 떨어야 한다. 아무리 개발에 짓밟히며 신음을 내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누구도 생명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도요새는 영원히 새만금을 찾지 않을 것이다. 생태조사단이 죽음의 기록뿐만 아니라 생존의 기록도 남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년 동안의 기록은 새만금 방조제가 열리는 날을 위한 ‘복원 처방전’으로 쓰일 수 있다. 지난해 한국환경기자클럽이 뽑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받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이들의 기록은 환경과 생명의 가치를 확산시키며 새만금을 진행형의 사안으로 만들 것이다. 김동철씨는 “방조제가 열리는 그날까지 새만금을 찾는 발길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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