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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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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권 인정받고 싶은 만큼 소비자 불만도 인정해야”

등록 2017-05-23 15:54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21>은 제1152호부터 대선 특집을 시작했다. 제1161호까지 표지 사진(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표지이야기로 다룬 제1162호의 표지 사진과 표지이야기 기사.

<한겨레21>은 제1152호부터 대선 특집을 시작했다. 제1161호까지 표지 사진(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표지이야기로 다룬 제1162호의 표지 사진과 표지이야기 기사.

처음 표지 사진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선 내가 보기엔 특별히 문제없어 보이는 사진이었다. ‘먼 곳을 응시하는 새 지도자의 복합적인 표정을 담고 싶었던 것 아닌가’ 짐작해보는 정도였다. 마음에 쏙 드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은, 딱 그 수준이었다.

그렇다보니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표지 사진이 마음에 매우 들지 않았거나, 그 반대였다면 논란에 어떤 형식으로든 관심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그냥 건성건성 봤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라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반응을 SNS에서 몇 차례 접했지만 썩 공감이 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반응을 두고 ‘유사 파시즘’이니 하며 정색하는 것 역시 과민하게 여기는 정도였다.

그 와중인 지난 수요일(5월17일), 퇴근하고 와보니 논란의 이 배달돼 있었다. 집어들고 천천히 봤다. 표지 사진은 인터넷으로도 여러 번 본 것이었으니 넘어갔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는데, 표지이야기 기사에서 딱 멈췄다. 오른쪽 사진이다. 갑자기, 뭔가 딱 ‘아, 이거였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진을 쓰면 되지 않았을까?

이 사진을 배경으로 ‘새 시대의 문’이라는 카피를 입혔으면 어땠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확실히, 왼쪽 표지 사진보다 더 밝고 역동적이면서 미래지향적 이미지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현시점, 나라 안팎이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꼭 심각한 표정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새 지도자의 모습을 보며 기대감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이번 논란을 둘러싼 여러 쟁점에 대해 이해의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보도사진을 고르고 편집하는 건 언론의 권한이요, 그 언론에서도 편집자의 권한임은 분명하다. 편집자는 나름의 고심과 의미를 담아 사진을 골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요즘 시대에는, ‘공급자 논리’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편집자의 권한을 ‘공급자 논리’로 받아들이는 지금의 소비자, 수요자들은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다. “공급자들의 입장이 그렇다면 오케이. 하지만 소비자로서 내 느낌과 생각은 전혀 다르다. 공급자의 입장을 존중받고 싶다면, 소비자의 입장도 동등하게 존중하라. 공급자의 논리가 소비자의 불만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니 우리를 누르려 하지 말라.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구독자로서 그동안 이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표지에 단독으로 쓰지 못한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대선 후보 관련 기획은 군소 후보부터 시작해 유력 후보로 역순으로 올라오는데, 마침 대선 직전에 이 특종을 했다. ‘국가정보원 알파팀’ 관련 특종이었다. 그래서 한 차례는 표지 사진을 알파팀과 관련한 것으로 했고, 또 세월호 3주기가 있어 한 번은 세월호 관련 표지로 디자인했다. 그 때문인지 문재인 후보는 물론이고 안철수 후보, 홍준표 후보의 사진도 단독으로 실린 적이 없다.

또 대선 주간에 발간된 지난호(제1161호) 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아닌 ‘촛불소녀’ 사진이 실린 것을 놓고도 논란이 있었다는데, 그 회차의 ‘만리재에서’를 보면 알 수 있듯 가판이 대선 하루 전날인 5월8일에 깔렸다. 당연히 그 전에 잡지 제작을 마쳐야 했을 테니 당선인의 사진을 실으려야 실을 수 없는 시점이었다.

이 논란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이렇게 내가 짐작하는 내부의 사정은 공급자 논리에 가깝다는 점이다. ‘국정원 알파팀 특종이, 세월호 3주기가 중요한 쟁점인 만큼 표지에 문재인 후보의 사진을 넣지 못하고 해당 이슈를 디자인했다’는 것이 공급자의 논리라면, 그것을 인정할 테니 ‘본선에 출마조차 못한 후보들의 사진도 표지에 단독으로 실었으면서 정작 가장 유력한 주자의 사진을 표지에 싣지 않은 것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도 공급자 논리와 동일 선상에서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면 이 사건은 언론, 그리고 언론이 생산하는 뉴스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품’과 별다르게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어졌음을 상징한다. 보통 소비자가 어디든 가서 상품을 구매할 때, ‘하자’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품에 대해 항의할 경우 일반적인 공급자는 소비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설령 공급자 처지에선 ‘하자’가 없는 상품이라 믿더라도 일단은 소비자의 항의를 들은 뒤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며 설명하려 한다. 그것이 요즘 시대의 상품 거래 방식이다. 뉴스/기사라는 ‘지식정보 상품’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것을 소비자의 ‘갑질’로 보기는 어렵다. 소비자들끼리도 상호 견제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항의와 반발의 정도가 지나쳤다면, 소비자들 스스로 ‘갑질 그만두라’며 비판할 것이다. 그런 사례가 이미 우리 주변에 많았다. 그래서다. 이제 언론계에서 숭고하게 여겨왔던 ‘편집권’이란 것은, 대다수 독자에게는 ‘공급자 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급자 논리가 소비자의 수요와 일치한다면 별 파열음이 없겠지만, 불일치와 불균형이 발생해 파열음이 일 경우 기자는 자신의 편집권을 인정받고 싶은 만큼 소비자의 불만 역시 ‘동등하게’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다.

임명현 서울 동작구 상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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